[문화는 나의 것] '나는 신이다'가 보여준 OTT 저널리즘의 가능성과 한계

김윤정 칼럼니스트 2023. 3. 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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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윤정 칼럼니스트]

스스로 예언자라고 주장한 네 명의 메시아,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명석, 오대양 사건의 박순자, 아가동산의 김기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열풍이 거세다.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넷플릭스 한국 TV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했고, 홍콩을 비롯한 해외 반응도 뜨겁다.

공개 후 대중의 공분을 사며 이례적인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사실 <나는 신이다>가 다룬 사건 중 상당수는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여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바 있다. 새로운 것 없는 이야기가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까닭은 뭘까.

▲ 넷플릭스 신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종교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축소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교주의 주장에 세뇌되어 착취당하는 사이비 종교는 그저 오래된 뉴스 속 황당한 이야기 정도로 여겨지기 쉽다. 무엇보다 문제가 제기된 후 긴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이들이 해당 사건들을 '이미 종료된 과거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거나, 20대 이하 세대의 경우 사건 자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는 교주가 구속됐음에도 굳건한 교세, 여전히 교주의 무죄를 주장하며 절대적 믿음을 보내고 있는 신도들, 최근까지도 등장한 새로운 피해자 등을 통해 여전한 '자칭 메시아'들의 영향력과 언제든 새로운 피해자가 등장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뒤늦게 신나라레코드와 아가동산의 연관 관계를 알게 된 K팝 팬들은,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사이비 종교 교주의 재산 증식에 기여하고 있었음을 알고 깜짝 놀라 불매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OTT 플랫폼과 만나면서 일으킨 시너지 효과가 크다. <나는 신이다>의 제작 기간은 2년으로 알려졌다. MBC 시사교양 PD이기도 한 <나는 신이다> 조성현 PD는 이 기간 동안 200명이 넘는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심층취재하고, 특히 40일을 기다려 JMS 피해자인 메이플을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상 6주에서 길어야 10주 텀으로 취재해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내보내야 하는 위클리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취재다.

각종 규제나 제약에서 자유로운 OTT 플랫폼이기에 가능했던 표현과 수위의 연출이 시청자에게 전달한 충격파도 무시할 수 없다. 1부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JMS 교주 정명석의 적나라한 발언부터, 성폭력 현장 음성, 여성 신도들의 나체 영상, 정명석의 민낯을 고발하기 위해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메이플의 증언 등은 '불편한 진실'을 넘어 참담함 그 자체다. 특히 미성년자 시절 당한 성범죄를 증언하는 피해자들의 모습과 어린 시절 사진이 교차되는 장면은 보고 있기가 괴로울 정도다. 그리고 그 참담함과 괴로움은 이내 정명석에 대한 분노로 전이된다.

물론 프로그램의 사회적 파장이나 성과와는 무관하게, 성 착취 피해 장면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전시하고 묘사한 <나는 신이다>의 연출 방식이 윤리적이었느냐는 지적은 남는다.

하지만 메이플은 2022년 7월 JTBC 뉴스룸에 'JMS 성폭력 피해자 A씨'로 등장해 인터뷰한 바 있다. 얼굴은 모자이크되고 발언은 음성변조 되었으며, 구체적인 성폭력 피해 증언도 없었다. 어렵게 JMS 성폭력 피해자가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지만, 그 파급력은 크게 차이 났다. 메이플의 과거 증언은커녕 인터뷰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

▲ 2022년 3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신도 성폭행 등의 혐의로 10년간 복역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교주에게 출소 후 성폭력 피해를 입은 입 메이플 잉 퉁 후엔 씨가 기자회견을 열고 괴로운 표정으로 피해 관련 증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나는 신이다>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면서 이원석 검찰총장까지 나서 대전지검에 “정명석 사건에 엄정한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판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여러 유명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뤄졌고, 이따금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전에 없던 상황이다. 오랜 시간 여러 방송이 다룬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새삼스레 쏠린 국민적 관심을, 'OTT라서 가능했던 표현의 자유'를 배제한 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쉬운 점은,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만든 다큐멘터리가, 지난 시간 여러 시사프로그램이 다뤄 온 사이비 종교 에피소드를 총정리하고 방송심의기준 때문에 낱낱이 공개하지 못했던 발언이나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감독편, 정리편 정도에 그쳤다는 점이다. 8부작 392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한국에서 유독 활개를 치는 '자칭 메시아'들과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이들의 심리, 그들의 죄가 드러난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굳건한 교세의 이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도 분석도 없다. 그저 얼마나 끔찍하고 다양한 피해 사례가 존재하는지, 얼마나 처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반복해 알려주며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과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은 교주들을 비난할 뿐이다.

프로그램의 방향이 이렇다 보니 아직 탈교하지 못한 이들을 잠재적 가해자, 가해 공모자, 묵시적 가해자 등으로 몰아세우며 '사이비 신자 찾기'라는 곁가지에 매몰되고 있다. 교주와 교주의 악행을 덮은 자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고, 절대 다수의 일반 신자들은 잠재적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말이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와 JMS 신자들의 맹목적 믿음 흔들기가 다큐의 목적이었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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