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으로 만든 공달’… 윤달에 이사 하는 이유는?[안영배의 웰빙풍수]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2023. 3. 18. 1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달에는 무얼 해도 동티 없나?
신의 입김 강한 북동쪽은 비우거나 정결해야
윤달에는 아무 떼, 아무 방위로 이사해도 동티가 나지 않는다는 속설에 따라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 ‘인공의 달’ 윤달

올해는 3월과 4월 사이에 윤달이 들었다. 3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윤달은 음력과 양력의 계절적 시차를 보정하기 위해 만든 달이다.

음력은 지구 둘레를 도는 달의 12개월 주기(354일)를 계산한 역법이고, 양력은 태양을 한바퀴 도는 지구의 1년 주기(365.25일)를 계산한 역법이다. 두 역법은 매년 11일씩 오차가 생긴다. 3년 차가 되면 약 1달 정도 차이가 발생하므로 음력에서 ‘가상의 1달’인 윤달을 만들어 양력과 맞출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윤달을 각별히 생각했다. 이 때가 되면 조상 묘를 손질 혹은 이장하거나, 수의를 준비하거나, 주거지를 옮기는 일이 잦았다. 윤달에는 무슨 일을 해도 뒤탈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이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윤달이 든 해에 묘를 개장(改葬)한 건수가 윤달이 없는 해보다 무려 76.7% 높게 나타났다.

굳이 윤달을 기다려 집안 대사를 치르려 한 것은 자칫 때와 장소를 잘못 선택해 신의 노여움을 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달만큼은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공달’이기에, 신들도 인간사에 개입하는 일을 멈추고 쉰다고 해석했다. 윤달에는 아무 때든, 아무 방위든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신이 까탈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 윤달은 풍수학과는 별 관련이 없다. 윤달에 관한 이야기는 민간 풍속에서 나온 속설일 뿐이다. 풍수에도 이사하거나 이장할 때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따지긴 한다. 그러나 이는 윤달과 같은 믿음 체계가 아니라 장소와 사람과 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동양철학에서 나온 계산법이다.

윤달에 수의를 장만하면 당사자가 무병장수하고 자손들도 번창한다는 믿음에 따라 전통적으로 수의를 장만하는 풍속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일본인이 더 무서워한 귀문 방위

윤달이 지금도 유행하는 이유는 시간이나 공간에는 신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동양인들의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간의 영역을 상징하는 방위(方位)에서 이같은 믿음이 강했다.

방위를 중심으로 길흉을 따지는 이기(理氣) 풍수학에서는 8방위(동·서·남·북·북동·동남·남서·서북) 중 북동(北東)과 남서(南西)를 경계의 대상으로 꼽는다. 두 방위는 귀신이 들락거리는 방위라고 하여 귀문방(鬼門方)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산 사람들이 이 방위에서 자칫 잡신으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 두 방위는 서로 극성(極性)이 반대되는 기운이 부딪쳐 교란되는 곳이다. 이를 시간으로 치환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과 해가 가장 높이 뜨는 남쪽은 양(陽,+)의 시간대 영역이다. 반대로 해가 지는 서쪽과 완전히 해가 저문 북쪽은 음(陰,-)의 시간대 영역이다.

8방위

북동

동남

남서

서북
음양(陰陽)
극성 세기
- - -
- +
+
++
+++
+-
-
- -
시간대
한밤
새벽
동틀녘
오전
한낮
오후
해질녘
저녘
4계절
겨울
환절기

환절기
여름
환절기
가을
환절기


따라서 북동 방위는 음(북)의 강력한 기운이 양(동)의 기운으로 전환하는 영역이고, 남서 방위는 양(남)의 강력한 기운이 음(서)의 기운으로 바뀌는 시간대다. 이처럼 서로 극성이 다른 기운이 충돌하기 때문에 변화가 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동남과 서북 방위는 음양이 바뀌는 충돌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

풍수에서는 양기와 음기가 서로 부딪치고 기의 교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흉하게 본다. 당연히 북동과 남서의 귀문방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북동 방위를 대표적인 귀문방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양택 풍수의 대표적 고전서 ‘황제택경’에서는 귀문방에 대해 무시무시하게 설명한다.

“귀문 방위는 집 안의 기운을 막는 곳이다. 이곳을 침범해 치우치게 되면 반신불구가 되거나 종기가 나는 등의 재앙이 생긴다.”

실제로 옛 사람들은 집의 중심을 기준으로 북동 방위 쪽으로는 불결한 시설물을 두는 것을 경계했다. 화장실·하수구·쓰레기통 등이 이 방위에 놓일 경우 집안에 액운이 미치기 쉽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 북동 방위의 건물 구조가 방정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것도 좋지 않게 여겼다.

일본은 귀문방에 대해 우리보다 더 큰 경계심을 가졌다. 11세기 헤이안 시대에 등장한 ‘작정기(作庭記)’는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금기사항 등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는데, 귀문 방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오척(五尺) 이상의 돌을 북동쪽에 세우지 말라. 귀문에서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높이가 4~5척 되는 돌도 귀문에 세우지 말라. 이는 유령돌(靈石)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악귀들이 들어오는 것을 재촉해 사람들이 오래 거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 풍수는 귀문 방위에 절이나 신사 등을 설치하는 등으로 귀신의 작동을 진압하려고 했다.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서도 귀문 방향을 고려한 흔적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칠성각(七星閣)의 경우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나타나는 북동방을 뒷배경으로 하고, 새벽녘 북두칠성이 사라지는 남서방을 바라보도록 배치한 것이다. 즉 귀문방에 북두칠성의 신들을 모셔서 그 신령한 기운을 중생에게 베풀도록 적극적으로 귀문 방위를 활용한 구조다.

귀문 방위는 현대인들도 주의해서 나쁠 게 없다. 서울 우면동의 한 아파트를 보자. 이 아파트 단지의 어느 동은 모두 현관이 남서 방향으로 있고, 마주 보이는 북동 방위로는 화장실이 배치된 구조다. 화장실 문을 열면 역한 악취가 풍겨올 정도다. 집 주인은 화장실을 늘 깨끗이 하려 하지만, 냄새가 유난히 심하고 환기도 잘 안돼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면대에 설치된 배수구 등도 툭하면 막힌다고 했다. 이 집으로 이사한 후 꾸준하던 사업도 예전에 비해 못하다고까지 말했다. 귀문방의 해로움을 겪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북동 귀문방이 화장실로 설계된 이상 최대한 위생적으로, 그리고 정결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북동쪽은 집안에서도 가장 온도가 낮아 냉기가 심한 곳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대부분 창과 문을 닫고 생활하므로 공기가 잘 순환되지 못해 악취 등이 더 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서 귀문 방위로는 현관이 있으므로 현관 역시 신발장을 정리하는 등 깨끗하게 해야 한다. 정갈하고 방정한 상태가 신이 출입하는 귀문방의 해로움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귀문방은 외식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일수록 경험적으로 느끼는 방위이기도 하다. 귀문방으로 사람을 들이면 삿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귀문방을 피해 출입구를 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북동이나 남서의 귀문방은 기의 교란 현상이 심한 곳이므로 주의를 하는 것이 좋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