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에 미 나파밸리가 떨고 있는 이유 [실밸 레이더]

엄경은 실리콘밸리 와인 전문 컨설턴트 2023. 3. 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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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밸리. /AP 연합뉴스

미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와인 산업에도 먹구름을 몰고 왔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자 400여개의 프리미엄 와이너리 고객을 보유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SVB는 스타트업 외에도 실리콘밸리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나파밸리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SVB가 흔들리면서 미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과 와인 소비자에게 악영향이 우려된다.

SVB는 1994년부터 와인 사업부를 운영했다. 와인 산업이 기존 은행에서 전문화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점을 노려, 대출을 포함해 전문적인 시장 조사와 중장기 사업 계획을 제시하는 토탈케어 부서를 만든 것이다. 그 중심에는 부서장인 롭 맥밀런(Rob McMillan)이 있다. 그는 고객들의 와인을 시음하고 포도밭 부지를 살펴보는 등 여러 와이너리의 사업 고문 역할을 담당했다.

SVB의 전방위적인 지원과 협력에 와이너리들은 SVB로 몰려들었다. SVB와 거래하는 와이너리는 약 400여곳이고 이들이 SVB에 대출한 금액은 40억달러(5조2000억원)가 넘는다. 1976년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을 비교한 시음회 ‘파리의 심판’에서 화이트 와인 부분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부터 케이드 에스테이트, 허쉬 빈야드, 램스게이트까지 나파와 소노마 밸리의 유수의 와이너리들이 SVB의 고객이다.

와이너리들은 SVB의 붕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와이너리는 설립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현금흐름, 이른바 캐쉬플로우가 생기는데 인고의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다. 포도밭의 구매와 포도식재, 양조장 설립 및 장비 등에 거대한 자본이 투자되지만 포도가 제대로 자라는데 약 3~5년이, 또 와인이 출시되기까지 약 1~2년의 양조기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이 기간을 SVB만큼 기다려주고 지원해줄 은행은 사실 많지 않아 보인다.

13일(현지시각) 미 샌타클라라에 있는 SVB 본사 앞에 고객과 취재진들이 파산한 SVB의 인출 업무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김성민 기자

현재 SVB는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 와이너리들의 대출, 신용 한도 및 기타 금융 계좌에 미치는 영향은 향후 SVB가 누구에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일각에선 SVB에서 많은 자금을 빌린 와이너리들이 이를 갚기 위해 토지나 포도를 팔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경우 단기간 와인 공급이 과잉돼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수요 대비 공급이 줄어 결국 와인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와인 업계가 사실 더 우려하는 점은 SVB가 보유한 와인 관련 지적 재산의 손실이다. SVB 와인 사업부는 지난 23년간 ‘와인 산업 현황’ 보고서를 출간해왔다. 와인 시장 분석과 전망, 경쟁과 소비자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이 방대한 보고서는, 매년 약 100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출간돼 와인 업계의 수많은 그룹에서 주된 사업 계획 자료로 활용해왔다. 지난 1월 출간된 ‘2023년 와인 산업 현황 보고서’를 보더라도 포도의 수확량과 작황 분석, 와인 생산량, 와이너리의 수익구조와 매출, 와이너리 방문객 분석, 연령별 와인 소비 패턴, 광고와 프로모션, 세일즈 트렌드 심지어 와인을 담는 유리병과 배송비의 원가상승 요인까지 와인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예측을 담았다. 나파밸리 와인 검색 사이트 ‘픽스(Pix)’의 폴 마브레이(Paul Mabray) 대표는 “이 보고서가 중단된다면 대체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SVB 와인 사업부의 롭 맥밀런 부서장은 와인 사업부의 별도 분리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보고서 작성에 드는 비용과 지적 재산권에 대한 법적 문제를 고려할 때 향후 보고서 출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SVB의 차기 소유자가 누구일지, 와인 사업부의 미래가 어떨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는 이 와인 보고서가 와인 시장에 주는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파트너가 나타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엄경은 실리콘밸리 와인 전문 컨설턴트·강사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와인 선생님’으로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와인 자격증 WSET 레벨4(디플로마) 과정을 취득했고, 현재 미 캘리포니아에서 와인 관련 다양한 행사와 강의,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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