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언론이 쟁점을 단순화하면 생기는 일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세상 일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파악한 세상은 납작하다. 언론에서 만들어진 선악 이분법 세상을 입체적으로 판단해보도록 하자.
# 장면 1. 반도체 세액공제는 지난 연말에 여야 협의를 통해 확대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추가 세액공제를 국회에 요구한 이후 반도체 세액공제를 추가할지 여부가 논란이다.
언론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위해 추가 세액공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특정 기업의 특혜로 국가 재정에 부담 발생에 대한 의견을 전한다. 둘 중에 어느 의견이 맞을까? 정답은 이 둘 사이가 아니라 바깥에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단순히 세액공제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재생에너지 사용 규제(RE100)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있다. 반도체 전쟁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싸움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대만은 TS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생산) 업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중소, 중견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는 중소, 중견 팹리스 업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즉, 삼성전자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팹리스 업체를 양산할 수 있는 산업구조 재편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의 근본 문제다. 즉,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세액공제에 쓰일 돈을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쓰는 것이 좋을 수 있다.
# 장면 2.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조합이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회계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계 투명성은 중요한 가치다. 반면 사적 자치도 필요한 가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렇게 단순화하면 안 된다. 보조금 회계와 조합원 회계는 다른 차원에서 달리 접근해야 한다.
첫째, 보조금 회계. 보조금 사업을 수행하고 이를 보고하지 않으면 정당하지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만약 보조금 회계보고를 하지 않으면 이미 보조금은 환수되기 때문이다. 보조금 사용내역과 지출 증빙서류는 이미 제출한다. 해당 부처는 검증하고 기재부는 이를 또다시 검토한다. 노동조합이 보조금 회계를 제출하지 않는 것처럼 표현하는 대통령 말은 잘못되었다.
둘째, 노동조합 조합비 회계. 노동조합 조합비 회계는 해당 조합원에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정부는 조합원에게 잘 공개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노조법에 따른 11개 서류가 조합원에게 공개되고 있는지 확인차 11개 서류 표지를 정부에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가능한 요구다. 노동조합도 정부가 요구한 대로 표지는 제출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내지 11장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은 반발하고 있다. 조합원 명부 등 민감 자료가 정부에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 회계와 조합원 회계를 섞어놓고 회계의 투명성을 거론하면 안 된다. 한 마디로 보조금 회계는 모든 국민에 투명해야 하지만 조합원 회계는 조합원에게 투명해야 한다.
# 장면 3. 재정준칙을 법제화 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 한쪽은 재정건전성을 위해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재정준칙을 만들면 안 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재정준칙과 실질적 재정건전성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준칙은 수입과 지출의 차이(재정수지)를 일정하게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수입과 지출의 차이만 좋아 보이도록 숫자를 조절하는 것은 예산기술자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2차 추경에서 자산관리공사에 현금 1천억 원 출자금을 줄였다. 대신 현물(주식)을 5천억 원 출자했다. 경제적 실질측면에서는 4천억 원의 국가 자산이 사라지면서 그만큼 재정건전성은 악화하였으나 현금 입출입만 따지는 재정준칙으로는 마치 1천억 원만큼 재정이 건전해졌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거의 모든 선진국은 재정준칙을 도입했기에 우리나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경제적 실질(발생주의)을 반영할 수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했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는 방식의 재정준칙이 아니다. 예산기술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정수지를 좋게 보일 수 있는 방식이다. 대금 지급 시기만 조절하면 재정수지는 얼마든지 좋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만 굳이 경제적 실질을 반영할 수 없는 재정수지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언론은 쟁점을 단순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양쪽의 주장을 형식적으로 소개만 하면 진실은 두 개의 상반된 주장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이 든다. 그러나 언론에서 제기한 쟁점 바깥에 진실이 존재할 수도 있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검정고무신 계기로 떠오른 공정위 불공정 관행 근절 시켜야 - 미디어오늘
- 독도‧위안부 정상회담 언급논란… 한겨레 “능멸 당하고도 몰라” - 미디어오늘
- 대통령실 “국제질서 변화 못 읽는 野에 국민 우려” - 미디어오늘
- 정보인권 단체들 “국회, AI법 입장 명확히 밝히라” - 미디어오늘
- ‘양념’ 발언 文도…“좌표찍기·문자폭탄 우려” - 미디어오늘
- 한일정상회담 독도·위안부 발언 진실공방 - 미디어오늘
- “KBS 盧 명품시계 보도 국정원발…고대영한테 들어” - 미디어오늘
- ‘일본 문화 전성기’라는 호명의 변화, 그 뒤에 놓인 문화에 대한 게으른 시선 - 미디어오늘
- 공동체 이야기 묶고 기후위기 DJ오디션까지…한 라디오의 특별한 개국 - 미디어오늘
- ‘동네 중국집’ 독자 광고 500개 채울 수 있는 것이 이 매체의 힘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