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는 총칼 안 든 전쟁…결국 다 먹어, 왜 남 일처럼 봐?”
코앞 다가온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바닷물 직접 대하는 어민들 만나보니
“오염수마저 풀리면, 더는 버티기 어려워”
“우리 세대서 끝날 일 아니라 더 답답”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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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반도체 팔아서 꿀(굴) 사 잡수라고 해보시오. (방사능) 오염수 (바다에) 풀리고 우리 죄다 망하면 후쿠시마에서 사다 잡수든가.”
한-일 정상회담이 있던 16일, 여수에서 39년째 굴양식을 해온 어민 남기두(64)씨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인근 저장탱크에서 곧 바다로 쏟아져나올 방사능 오염수 때문이다. 오염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쓰나미로 훼손된 후쿠시마 제1원전 핵연료봉 온도 등을 낮추는 용도로 쓰인 물 130여만t을 일컫는다. 오염수는 육지에 설치된 방사성 물질 정화처리장치인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를 거쳐 1㎞ 길이의 해저터널을 통해 바다로 나아간다. 실제 방류 개시는 해저터널 공사가 끝나는 6월 이후, 여름을 넘기지 않는 시점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이웃 나라를 위협하는 일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지난달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이 오염수에 함유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일본 동쪽으로 해류를 따라 북태평양으로 나갔다가 4~5년 뒤 제주해역에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연구팀은 오염수 영향으로 우리나라 해역 삼중수소 농도가 기존보다 10만분의 1 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기기로 검출되기 어려운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내세운 방사성 물질 정화처리장치 ‘알프스’의 정화처리 능력은 의심의 눈초리를 사고 있다. 국내 환경단체들이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에 측정되지 않는 수많은 방사성 물질을 밝히지도 않고 있다”고 반발하는 배경이다. 최근 일본 <마이니치신문> 설문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조차 열에 여섯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도쿄전력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답을 내놓고 있다.
이웃 나라가 쏟아낸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서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이들의 공포감은 어떨까? <한겨레>는 일본이 방류한 방사능 오염수와 직접 부대껴야 하는 부산 해녀, 제주 갈치잡이 어민, 여수 굴양식 어민을 만났다. 바다에 기대 사는 이들에게 ‘물’을 향한 불안이 삶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염물질이 온 바다로 흘러든다는데 어쩌란 말이냐”, “코로나19를 지났는데 이제는 오염수가 흘러들다니, 더 버티기 어렵다”며 체념을 쏟아냈다.
“바다 망치는 짓…해녀들, 결사반대”
“호잇, 호오잇.”
물질을 하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해녀들이 참았던 숨을 고르며 내는 소리다. 새소리,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한 독특한 이 소리를 사람들은 숨비 소리라고 부른다. 망태기 가득 채운 전복이며 해삼, 미역 따위에 마음이 든든해진 해녀들이 내는 소리는 마치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난 8일 오후 <한겨레>와 만난 부산 기장군 해녀 회장 김정자(74) 할머니는 이날도 숨비 소리를 내며 막 물질을 마치고 나오던 참이었다. 물 밖으로 나오면 물질하며 잊었던 바다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그 물(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이 그렇게 좋다카면 바다에다가 방류하지 말고 자기네들이 한 10년쯤 먹고 그때 방류하라캐. 이건 총칼 안 든 전쟁이다. 일본이 온 세계를 상대로 오염된 물을 갖다 버리겠다는데. 내 말이 틀렸어요?”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머니는 부산 기장군에서 10살 때부터 물질을 해왔다. 60년이 넘도록 해녀로 살아왔다. “그때는 바다 밑에 들어가면 모든 게 많았지. 이만한 돌이 하나 있으면 전복이 여기 붙어 있고, 저기 붙어 있고. 멍게도 꽃밭처럼 널려 있었는데, 그게 다 자연산이었어. 지금은 씨를 뿌려도 그마이(그만큼) 못해.”
할머니는 지난 60년 동안 원전이 바다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직접 목격했다. ‘오염수’라는 말에 몸서리를 치는 이유다. 30~40년 전만 해도 테왁에 주렁주렁 매단 망태기에 해삼, 전복, 소라, 미역 따위를 그득히 담아 나왔다. 지금은 눈에 띄게 줄었다. 1978년 기장 앞바다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수의 영향으로 숲을 이루던 미역, 다시마, 곰피 같은 해조류도 예전 같지 않다. 최근엔 몸이 기형인 물고기가 예전보다 더 자주 눈에 띈단다. “바다에 들어가면 바닥에 붙어 있는 광어 같은 것도 잡아서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년간) 등이 굽거나 꼬리나 지느러미가 없이 태어난 물고기를 많이 봐요. 그런 거 보면 소름이 돋지. 안 그렇겠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 방류로 바다에 흘러들어갈 방사성 물질이 생물체 먹이사슬을 타고 어떻게 이동하며 축적되는지, 그리고 우리 앞바다에서 난 수산식품을 먹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느끼기에 “(예전과 같지만은 않은) 그 물을 매일 바다에 들어가서 일하는 우리가 다 먹고 있다는 불안감”이 가슴을 옥죈다. “그런데 오염된 바닷물을 해녀들만 먹는 게 아니잖아요. 해산물만 안 먹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이 매일 먹는 소금은 어떡합니까? 음식 할 때 늘 쓰고, 간장, 된장 담그려고 해도 소금이 필요하고. 우리 자손들 입에 오염된 먹거리를 넣게 되는 거라니까. 왜 그걸 모른 척한답니까.”
“태풍이 오거나 날이 궂어서 며칠씩 물에 들어가지 못하면 몸이 근지러버(근질근질해서) 죽는다”는 김 할머니지만, 후대의 해녀들은 바닷물에 들어가기가 두려워 몸을 떨지도 모른다. 김 할머니는 “(방사성 물질을 담은 오염수가) 4~5년 뒤에 우리나라로 들어온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공동 연구팀이 내놓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의한 해양 확산 시뮬레이션’ 소식을 접한 것이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물이 흐르는데 오염수가 우리한테 영향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바다에서 먹고사는 해녀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이 반대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기장군에 해녀가 530명쯤 있는데, 한명도 빠짐없이 오염수 방류 결사반대”라고 힘줘 말했다.
“바다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저기 바다 봐. 파랗고 잔잔허니… 좋지? 놀겠다고 들어가면 좋지, 아등바등 먹고살려고 들어가보면 별일이 다 있어.”
지난달 28일 만난 최임규 제주어선주협회 연승위원장은 25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제주 연안여객터미널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우린 하늘만 믿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내려주면 주는 대로 먹고 살지. 거기에 오염수를 붓는다고? 그걸 괜찮다고? 누가 그래?”
그는 한때 자신의 배 ‘대양호’를 타고 수백해리 바다로 나가던 갈치잡이 어부 출신이다. 이제 일흔넷. 더는 배를 타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요즘 검은색 챙 달린 모자에 붉은 띠를 두르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달 28일에도 그는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반대 전국대회’에 참가하러 나섰다. 머리띠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이미 거리엔 비슷한 옷차림의 500여명이 대열을 지어 앉았다. 최씨는 “최근 10년 사이 도청 앞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다”고 했다.
“전세계가 바다로 연결돼 있는 조건에서 (오염수 방류는) 인류 전체에 대한 핵테러인 것입니다.”(하원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최씨는 이날 집회의 날 선 발언들을 들으며 “(오염수 방류 문제에) 정부 어느 곳에서도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며 “믿을 구석이 없으니 어민들이 목소리만 키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 오염수 방류 위험성을 강조하는 하원호 의장의 발언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공개된 오염수 데이터와 관련된 지적이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해외 전문가 초청 토론’에서 미국 핵물리학자인 페렌츠 달노키베레스 교수(미들베리국제대학원)는 “일본 쪽이 공개한 오염수 관련 데이터는 방류 결정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저장탱크 4분의 1만 측정돼 있고, 주로 바닥에 위치해 있는 고준위 슬러지 폐기물 농도에 관한 정보는 아예 없다”고 설명했다. 예고된 오염수 데이터 측정 과정도 문제다.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이재정 의원실이 공개한 ‘일본 원전 오염수 측정·평가 대상 핵종 재선정 결과’ 문건을 보면, 일본 도쿄전력이 원래 64개 핵종 가운데 방사성 스트론튬과 텔루륨, 루비듐 등 37개 핵종을 제외하고 새롭게 4개 핵종을 추가한 총 31개 핵종에 대해서만 농도를 측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최씨는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보면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25년 전인 1998년 한-일 어업협정을 떠올렸다. 그는 한-일 협정 뒤 양국 어민 협상 과정에서 민간부문 대표를 맡은 바 있다. “한번 정하면 돌이키기가 어려운데 아예 관심도 없어 보이니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어쨌거나 그때는 똥섬에 못 가도 동지나(해)든, 더 멀리 대만이든 갈치 사는 곳을 찾아 가면 먹고는 살았다”며 “오염수 방류는 갈치가 사는 곳을 전부 바꿔놓을 텐데, 어떡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결국 다 먹는다니까”
“전쟁을 하더라도 (바다에 오염수를) 못 붓게 해야지, 안 그려요?”
39년째 굴양식을 해온 남기두씨는 입안에서 으깨진 밥알을 자꾸 튕겨냈다. 남씨와 함께 바라본 전남 여수시 가막만은 고요했다. 마을의 작업장에선 사흘 전 들여온 남씨네 굴 200망의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씨가 길러낸 굴은 인천, 충남 보령시 등으로 나갈 참이다.
남씨의 불안은 다른 지역과 달리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상반기 물동량 1위를 기록한 여수·광양항에 드나드는 선박은 컨테이너만 내리는 게 아니라 항해를 위해 배에 실은 평형수도 함께 풀어놓는다. 지난 1월 해양수산부는 최근 5년 후쿠시마·미야기현 등을 포함한 일본에서 선박 평형수를 교환하지 않고, 한국에 입항해 이를 배출한 선박이 519척, 배출량은 약 321만톤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수부는 이 가운데 후쿠시마·미야기현 등 원전 사고 지역에서 온 6척에 대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연안 해수 방사능 농도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밖에다 풀고 온다고? 그러면 안전하다고? 내가 영농후계자란 말이오. 농약도 저독성이 나와서 그걸로 치라고 허요, 안전하다고. 그 안전이라는 게 죽을 정도는 아닌 건 맞지. 그래도 몇년 지나면 몸속에 쌓이는 걸 왜 몰라. 알면서도 그냥 먹고살라고 치는 거지. 멀리서 (평형수를) 풀면 여기까지 안 온다고 누가 그럽디까.”
그가 보기엔 방법이 없다.
“결국 다 먹는다니까, 왜 다들 남 일처럼 생각해. 바다랑 육지는 하나란 말이오.”
남씨에게 고민이 또 있다. 계속되는 가뭄이다. “가물면 꿀(굴)도 자라지 않는다. 물이 필요한 건 육지나 바다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겨울 굴이 자라지 않은 것도 속이 끓었는데, 불경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굴을 찾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설 무렵 모두 팔려나갔을 참이다.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게 30%를 넘는다. “이대로도 힘든데, 오염수까지 풀리면 버틸 수 있을까 싶다.”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3.4%가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고 했다.
“아들놈도, 사위도 힘드니까 안 한다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데. 방류한 다음 잠잠해질 때까지 버틴다고 치자고. 그게 몇년을 걸릴 줄 알고? 지금 육십넷인데? 아이고, 못한다.”
“이렇게는 버틸 수 없다”는 남씨 같은 어민의 푸념은 여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제주, 부산, 그리고 바다 너머 일본도 마찬가지다. 남씨의 푸념에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일하는 김정자 할머니의 말이 겹친다. “가만히 놔두면 황금알을 낳아주는 바다를 왜 오염을 못 시켜서 난리랍니까. 우리 자식, 손주한테 이 일을 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더러운 바다에 어찌 들어가라고 합니까.”
한반도 남쪽 향하는 오염수?
바다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가닿을까. 한편에선 전문가들의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오염수와 관련한) 정확한 데이터를 일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조양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위험성을 검증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난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방류될 양을 모르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 해역에 영향이 있다, 없다를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며 “다만 잘못 알려지게 되면 어민들만 굉장히 큰 피해를 입을 것 같다. (언론도)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지난달 17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방재학회 학술발표대회에서 ‘후쿠시마 기원 물질의 아표층 확산’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수심 0~200m에 해당하는 표층수 부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세슘(2011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분석)이 원전 북쪽, 북서쪽으로 퍼졌지만, 수심 200~500m에 해당하는 아표층에서는 한반도 해역인 남쪽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방향이다. 이 시뮬레이션이 ‘안전’과 어떤 관련성을 갖느냐와 관련해선 “중요한 것은 (방사성 물질) 농도다. 지금까지 공개된 데이터를 전제로 하면, 태평양 오염수 방류는 한강에 침을 뱉는 정도”라며 “지금 논란은 심리적인 이유가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오염수 방류)이나 공개되지 않은 정보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주 부산 여수/하어영 기자, 신소윤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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