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때 가장 용감한 최영미 시인 “그저 작가로 기억되고 싶죠”

장수경 2023. 3.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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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한겨레S] 인터뷰
‘난 그 여자 불편해’ 출간한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이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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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외투를 벗기엔 조금 쌀쌀했던 3월 초 오전, 서울시 마포구의 한 카페. 인터뷰 예정시간에서 약 3분쯤 지났을 무렵, 자주색 코트를 입은 한 여성이 “정말 미안하다”며 카페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화장했더니 아이라이너로 눈썹을 그린 거 있죠. 지우고 다시 그리느라 좀 늦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대충 둘러대는 법을 모르는 듯 그는 솔직했다. 최영미 시인이다.

최 시인은 최근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를 출간했다. 2013년부터 언론 등에 기고한 글 60개를 엮었다. 2020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을 모아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냈으나, 본격적인 산문집은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이후 13년 만이다. 책은 고은 시인과의 법적 다툼 등 시사적인 글을 모은 1부,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담은 2부, 생활 속 발견과 기쁨을 다룬 3부로 나뉜다. 인터뷰 시작 전 그가 사인과 함께 “쉽게 행복하시길”이라고 쓴 문구에서, 작은 일에도 환희하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읽혔다.

나는 ‘스포츠인’ 최영미

시인은 왠지 예민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은 첫인사에서 바로 깨졌다. 그와 인터뷰한 1시간30분은 ‘편견 깨짐’의 연속이었다. 가장 놀란 건 그가 ‘스포츠 마니아’라는 사실이다. 시인과 스포츠라니. 이질적인 두 종류의 예술을 한 몸에서 풀어내다니.

스포츠에 대한 그의 애정은 책 2부 ‘인간은 스포츠 없이 살 수가 없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벌써 6개월 넘게 물에 들어가지 못해 요즘 몸살이 날 지경”(죽더라도 수영장에서), “밤마다 축구 보는 재미에 살았는데 오늘 저녁은 허전해서 어쩌나”(준비를 너무 해서 실패했다), “늙으면 농구나 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은 하고 싶어도 못 한다”(그 순간에 그것이 되는 것) 등 15개 글엔 야구, 축구, 테니스, 수영 등 스포츠에 대한 ‘참견’과 ‘애정’이 그득하다. 그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과 살라가 공동 득점왕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고, 카타르 월드컵 전엔 백승호를 주목하기도 했다. 백승호는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중거리 슛을 넣었다.

“예전에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운동을 정말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줄넘기, 수영, 스케이팅, 탁구를 했어요.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게 좋아요. 제 키가 170㎝인데, 고1 때쯤이었나. 체육 선생님이 ‘농구 할 사람 있냐’ 물었을 때 고민하다가 손들지 않았는데 후회해요. 진심으로 후회해요.” 그는 ‘진심으로’라는 단어를 스타카토로 끊어 읽었다.

스포츠를 사랑하기에 그의 평생 자랑이자 영광은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게 아니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도 아니다. “잠실구장에서 김현수의 등 번호가 새겨진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던 일”(가장 재미난 이야기)이다. 최 시인은 스포츠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눈을 반짝였고, 말이 빨라졌고, 손동작이 커졌다. 다른 이야기로 질문이 흐르면 “아직 질문에 답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운동 얘기 좀 더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소극적이고 혼자 있는 사람 됐지만, 고등학교 때까진 인기가 있었어요. 중학생일 땐 심지어 오락부장까지 했어요. 제가 전교생을 웃긴 사람이에요.”

전교생을 웃겼던 중학생은 중년이 돼 마주한 시련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2018년 7월25일 치과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왔을 때다. 그는 법원에서 날아온 소장을 확인한다. 그를 상대로 고은 시인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다. 최 시인은 몇달 전 고은의 성폭력을 폭로했었다.

소장을 받은 그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불안, 소송 대응 등이 아니었다. ‘아침에 잇몸 수술 안 하길 잘했네’였다. “그런 생각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아요?(웃음) 소송을 겪으면서 저 자신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전 낙천적인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낙천적인 성격은 첫 법정 싸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재판에 이겨도 행복하고 재판에 져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외국에서 1년 이상 살아보는 게 저의 오랜 로망이에요. 재판에서 지면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으니 저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잖아요.” 낙천적인 그였다.

이런 태도는 스포츠에서 배웠다. “학교 다닐 때 농구 경기를 하면, 누구나 공격수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저는 수비를 잘하더라고요. 스포츠를 통해 좋아하지 않는 포지션도 받아들이고, 질 수도 있다는 걸, 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방법도 배웠어요. 오늘 지면 다음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요. 책이 기대보다 안 팔려도 받아들이는 거죠.” 낙천적인 그가 또 웃었다.

나는 ‘작가’ 최영미

13년 만에 낸 산문집 제목은 도발적이게도 ‘난 그 여자 불편해’다. 책에 실린 첫 글의 첫 문장에서 따왔다. 문단 내 권력인 고은의 성폭력을 고발한 최 시인을 바라보는 문단 내 시선이 이렇지 않을까. “실제 저한테 그런 말을 직접 한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문단 내 교류가 더 적어지긴 했어요. 저와 가깝다는 걸 문단 권력이 알면 손해라고 생각하겠죠.”

책 제목을 고은과 연결지어 보는 시선 탓에 그는 “‘난 그 책이 불편해’졌다”고 말했다. “책 내용 중에 #미투 관련한 글은 많아야 7꼭지, 전체 글의 12%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제목과 연관 지어 저에게 ‘미투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계속 붙여요. 저는 그냥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게 서글프죠.”

그런 면에서 미투 한 걸 후회할 때가 간혹 있다. “뉘앙스를 잘 살려주세요. 후회한다가 아니라 ‘그럴 때도 있다’예요. 오랜만에 산문집을 냈으니 글이 주목받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바로 ‘고은’이 언급돼요. 전 작가 최영미로 기억되고 싶지, 아무개를 저격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거든요.” 최근 고은은 자신의 성폭력에 대한 별다른 해명이나 사과 없이 지난 1월, 시집을 출간하며 복귀했다. 시집을 내주는 출판사가 없어 2019년 직접 출판사를 차린 최 시인과는 대조적이었다.

고은과의 소송에서 결국 이겼지만, 최 시인은 자신의 말을 검열하게 됐다. 인터뷰 중 그는 여러 차례 “이건 팩트체크 해봐야겠지만”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재판 이후 생긴 말버릇이라고 했다. “미투 이전엔 진실을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문단 권력에 대한 실망감으로 글 쓰는 데 회의감이 든 적도 있지만 청탁이 오면 무조건 쓸 생각이다. “어떤 주제든 쓸 수 있어요. 저는 글로 먹고사는 노동자입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용감해져요.”

장수경 이주빈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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