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아가”...전세계는 지금 보조금 전쟁, 왜 준다는거죠?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3.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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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을 이끌고 있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요즘 세계 각국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경쟁이 있어요. 이 경쟁은 많은 기업들이 숨죽여 지켜볼 정도로 파급력도 크대요. 어떤 경쟁일까요? 바로 ‘보조금 지급 경쟁’이에요. 말 그대로 여러 주요국이 기업과 국민에게 보조금을 더 지급하겠다는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미국이 시작한 보조금 경쟁
세계적인 보조금 경쟁은 사실상 미국이 시작했다고 보면 돼요. 미국 정부가 지난해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The Inflation Reduction Act)이 그 시작점이에요. IRA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줄이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상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중국을 견제함으로써 자국 내 미래 친환경 산업들을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어요.

IRA의 핵심은 ‘대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친환경 산업 등 다른 중요한 분야에 보조금을 주겠다’는 내용이에요. 친환경 에너지를 다루는 기업들에 막대한 지원금을 지급하면, 최근 물가 상승을 부추긴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결국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 하락에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고요.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
예를 들어 최근 큰 주목을 받는 전기자동차 분야는 친환경 산업에 포함돼서, 북미 지역(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어요. 포인트는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이에요. 다른 나라에서 만들지 말고 미국이나 미국과 국경을 맞댄 주변국에서 만들라는 거예요. 그래야 미국의 전기차 산업이 잘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이 법 때문에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도 보조금 혜택을 누리기 위해 미국에 짓던 전기차 공장의 완공을 서두르고 있죠.

IRA는 보조금을 받으려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배터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료(광물)까지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된 걸 쓰라고 규정했어요. 일단 40% 이상 비율을 지키라고 했는데, 2027년부터는 80%로 높일 예정이래요. 사실상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무기로 ‘미국이나 미국이랑 친한 나라 원료만 써!’라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는 거예요.

반도체 분야이긴 하지만, 미국은 IRA 외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어요. 지난해 만든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가만있을 수 없지! 유럽도 ‘맞대응’
미국이 친환경 산업 등 미래 핵심 분야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자 유럽 주요국들도 맞대응에 나섰어요. 미국에 주요 산업들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요. 유럽연합(EU)은 지난주에 전기차 배터리·태양광 패널 제조 등 친환경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2025년 말까지 경쟁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주는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를 발표했어요.

‘다른 나라가 요즘 보조금을 많이 올렸지? 거기서 주는 만큼 우리도 줄 테니, 유럽에서 생산해’라는 의미예요.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의 IRA에 직접 대응하는 법안도 만들었어요. EU는 어젯밤(16일·현지시간)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과 친환경 산업 육성을 위한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의 초안을 공개했어요

CRMA 핵심 원자재법
핵심원자재법(CRMA)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 생산량을 유럽 지역에서 더 늘리고, 수입 의존도는 줄이기 위한 내용들이 담겼어요. ‘최소한 10% 이상의 원자재(광물)를 EU 지역 내에서 채굴하고, 원자재를 가공할 수 있는 역량은 전체 수요의 4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보조금 지원 수준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미국 IRA에서 ‘미국이나 미국이랑 친한 나라 원료만 써야 보조금 줄 거야’라고 규정한 것과 비슷해요.

EU는 핵심 원자재의 수입 의존도가 아주 높아요. 지난 2020년을 기준으로 핵심 원자재의 3분의 2를 중국으로부터 공급받았을 정도예요. 리튬과 마그네슘의 경우 중국에 90%가량을 의존했다고 해요. 최근 미국과 유럽은 공통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중국에 계속 의존해서는 산업 경쟁력이 넘어간다는 판단인 거죠. 특히 EU는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일어나며 역내 공급망이 불안정해지자 ‘탈중국’을 해야한다는 기조가 더 강해졌어요.

이런 상황이라 EU는 CRMA 초안에 ‘특정 국가에 대한 핵심 원자재 수입 의존도를 65%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담았어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자재 재활용 비율을 15%까지 높이겠다는 계획도 세웠고요. 중국 등 견제해야 하는 국가에 너무 많이 의존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사실 ‘미국이나 미국이랑 친한 나라의 원료’를 쓰라고 규정한 미국의 IRA에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건 마찬가지예요. 미국과 EU 모두 중국을 견제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이기 위해 이런 법안들을 만들고 있는 거죠.

(실제로 중국은 친환경 산업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어요. 특히 태양광 제품의 경우 전 세계 부품 공급망의 약 80%를 장악하고 있을 정도예요. 중국은 자국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이런 성장을 지원했어요.)

탄소중립 산업법
EU가 CRMA와 함께 초안을 발표한 탄소중립산업법은 친환경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췄어요. 태양광, 배터리, 신재생 수소 같은 핵심 분야에서 유럽 지역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내용들이래요. EU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관련 청정 기술의 40%는 유럽에서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또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친환경 산업과 관련된 허가 기간을 줄여주는 등의 다양한 행정적 지원도 할 방침이에요.
바짝 긴장한 우리 기업들
미국 IRA에 이어 유럽판 IRA까지 등장하자 우리나라 기업들은 바짝 긴장한 분위기예요. 특히 유럽 전기차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당장 ‘유럽 생산 기지를 키우거나 늘려야 하나’라는 고민을 할 만해요. EU도 장기적으로 미국 IRA처럼 ‘전기차 보조금 받으려면 우리나라에서 생산해’라는 압박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반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수혜를 볼 수도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어요. EU가 내놓은 CRMA는 아직 세부적인 사항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IRA처럼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내 생산을 촉진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에요.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 배터리 기업에 조금 더 유리할 수 있겠죠.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이미 유럽에 생산 시설을 마련해둔 상황이기도 하고요.

한국 기업들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정부도 대책 마련을 고민 중이에요. 지난달에 ‘유럽연합(EU) 통상현안대책단’을 꾸려놨고, 이 대책단에서 유럽판 IRA 초안이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필 예정이래요.

세계는 ‘보조금 전쟁 중’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친환경 산업 분야에서 자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예요. 중국은 3500억 위안(약 66조 5000억원)의 탄소중립 예산을 편성해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에요. 일본도 ‘그린 성장 전략’을 위해 2조 엔(약 19조 75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IRA’ 등 세계적 보조금 경쟁에 대응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의 영향력이 워낙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 핵심 산업들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동안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까요.

지난 15일 국회에선 ‘한국판 IRA’라고 볼 수 있는 ‘탄소중립산업법’이 처음으로 발의됐어요. IRA와 마찬가지로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 산업에 지원을 늘리자는 내용이에요. 아직 법안 통과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정치권에서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정도는 감이 오죠.

친환경 미래 산업들을 두고 벌어지는 세계 각국의 보조금 전쟁,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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