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EU는 왜 ‘대규모 녹색 투자’ 법안을 냈을까[설명할 경향]

강한들 기자 2023. 3. 18.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티에리 브르타뉴 EU 집행위원이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 열린 핵심원자재법 등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 제공

유럽연합(EU) 집행위가 지난 16일(현지시간) ‘핵심원자재법’과 ‘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상응하는 녹색 투자를 하고, 핵심 원자재의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골자입니다. 한국 산업부는 17일 “(EU 집행위의 법 초안은)IRA와 달리 역외 기업에 관한 차별적인 조항이나 현지 조달 요구 조건 등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두 법안의 초안은 유럽연합(EU)이 지난달 1일 발표한 ‘그린 딜 산업계획’에서 예고됐습니다. ‘그린 딜 산업계획’은 유럽이 “탄소 중립 기술 부문에서 EU가 산업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며 낸 탄소 중립 기술·제품 지원 정책입니다. 로이터 통신의 17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세계의 ‘녹색 전환’ 투자액이 지난해 1조달러(약 1305조5000억원)에서 2030년에는 3조달러가 되리라 예측합니다.

EU 집행위의 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은 태양광 발전, 육·해상 풍력, 배터리, 히트펌프, 바이오 가스, 탄소 포집 등 8가지를 ‘전략적 탄소중립 기술’로 정했습니다. 목표는 2030년까지 주요 기술 관련 생산품의 최소 40%를 유럽 내에서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업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탄소중립 산업 교육기관을 설립해 ‘숙련 노동자’를 확보하도록 했습니다. 보조금 액수는 추가 논의를 통해 결정합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6일 “이 법은 청정에너지 이행을 신속히 확장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핵심원자재법 초안은 구리, 리튬, 니켈, 알루미늄 등 자원을 ‘핵심 원자재’로 정하고, 그중에서도 니켈, 리튬 등 16가지는 ‘전략적 원자재’로 분류했습니다. 초안은 전략적 원자재 소비량 중 10%를 EU 내에서 채굴하고, 재활용 비율은 15%, 가공량은 4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이에 더해 2030년까지 주요 광물의 연간 소비량 중 65% 이상을 3개국 이내에서 수입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했습니다.

인도 하이데라바드 외곽에 있는 한 업체의 근로자가 지난 1월 25일 태양 전지를 배치하고 있다. 지난 16일 유엔은 대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이 호황을 누리는 녹색 기술의 경제적 이익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멕시코, 필리핀, 인도와 같은 국가들은 미래를 위해 녹색 기술 분야의 일부를 개발할 수 있는 정책을 가진 신흥 국가로 보고서에서 선정된 몇 안 되는 국가들의 일부였다. AP 제공

EU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법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IRA를 통해 약 3700억달러(약 482조6650억원)를 에너지 안보·기후 변화 대응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철강, 시멘트 등 미국 제조업 탈탄소화에 600억달러(약 78조3900억원), 청정에너지 프로젝트를 위해 2500억달러(약 326조6250억원) 등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이렇게 경쟁적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데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기후를 위한 경제학>을 쓴 김병권 독립연구자는 “정부가 ‘녹색’ 미래 산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거기에 기업을 참여시켜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기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녹색 전환’에 대한 투자 수익이 단기적으로는 크지 않다 보니 기업은 전환에 나서지 않는다”며 “지원에 머물면 기업의 전환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5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탄소중립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양이 의원은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보호무역 기조를 확대하면서 한국에서도 ‘한국형 IRA’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번 법안은 정부가 전기자동차, 재생에너지, 녹색 제품 등 국내 탄소중립 산업에 투자 세액 공제 혜택을 주고, 탄소중립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본계획·실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양이 의원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일자리 확대와 탄소중립산업을 연계시키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정책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견도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5일 바로 논평을 내 양이 의원의 법안을 비판했습니다. 심 의원은 “기존 탄소 집약적 산업은 그대로 둔 채 ‘탄소중립산업’을 지정해 하나의 산업으로 특화한다”며 “기존 산업 구조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고, 탄소중립 산업이라는 작은 테두리에 갇혀버리는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심 의원은 한국형 IRA 법안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기업지원법이 아니라 산업정책법’일 것,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부의 대담한 공공 투자계획을 포함할 것, 안정적인 녹색 일자리 창출 방안을 포함할 것 등을 제시했습니다. 심 의원은 한국형 IRA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온실가스 관련 규제도 동시에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염광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선임연구원은 “EU는 배출권 거래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며 “전 사회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업 육성 정책과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규제가 함께 실행돼야만 정책의 효용성을 배가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