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서 잊혀진 2순위, 스테파노비치

김종수 2023. 3.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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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신인 드래프트 2순위 열전① 스티브 스테파노비치

 

이번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선수는 단연 프랑스 최고의 농구 기대주 빅터 웸반야마(19‧223cm)다. 신장 7피트 4인치(223cm), 윙스팬 8피트(243cm)라는 농구선수로서 축복받은 신체조건에 더해 기동성과 테크닉까지 갖춘 그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웸반야마는 프랑스 파리팀 메트로폴리탄 92 소속으로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있었던 프리 시즌 경기에서 NBA G리그 팀인 이그나이트와 두차례 경기를 가졌는데 인상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검증까지 끝마친 상태다. 사이즈 좋은 선수가 잘 달린다는 점만으로도 내년 드래프트 1순위 후보감으로 부족함이 없다.


거기에 더해 웸반야마는 본인과 비슷한 신장대에서 나오기 힘든 플레이를 연신 선보였다. ​이전부터 호평받던 전방위 수비력은 물론 볼컨트롤, 패싱센스 등에서도 빅맨을 넘어선 모습을 보여줬으며 무엇보다 어지간한 슈터를 연상케 하는 3점슛 능력까지 뽐내며 많은 이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스텝백 3점슛, 캐치앤 3점슛은 물론 수비수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무빙 3점슛까지 성공시켰다. 페이드어웨이로 미들슛을 작렬시키는 모습에서는 ‘그냥 쏴도 수비수가 못막을텐데 저렇게까지…’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르브론 제임스는 "저런 선수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마치 외계인같다"고 말했으며 스테판 커리 역시 "농구 게임에서나 볼듯한 캐릭터다"며 현 NBA스타들의 칭찬 세례도 끊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다. 전체 1순위는 물론이거니와 팀 던컨, 르브론 제임스 등 역대급 1순위 지명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런가운데 웸반야마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는 스콧 핸더슨(19‧188cm)과 최근 뉴페이스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브랜든 밀러(21‧206cm)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엄청난 변수가 터지지 않는한 웸반야마의 1순위는 확정적이다.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을 공산이 크다. 때문에 팬들의 관심은 ‘누가 2순위가 될 것인가?’에 쏠리는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웸반야마만 없었다면 1순위 재목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핸더슨의 2순위가 유력한 듯 보였으나 빅윙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밀러가 치고나오면서 안개정국으로 접어들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선수가 드래프트를 앞두고 2순위 경쟁에 뛰어들지도 모를일이다.


신인드래프트에서 2순위는 그림자같은 단어다. 매번 스포트라이트를 1순위에 빼앗기는 것은 물론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할 경우 뒷순위에 지명된 선수들에게 채이기도 한다. 실제로 역대 2순위 선수중에 유달리 흑역사가 많다. 물론 높은 지명순위에 걸맞게 1순위 부럽지않은 대형선수로 성장한 2순위도 있다. 이에 점프볼에서는 역대 대형 드래프트에서 1순위에 가려졌던 2순위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시간을 마련해보았다.

1983년 NBA 신인 드래프트 2순위 스티브 스테파노비치


1983년 NBA 신인 드래프트 1순위는 단연 휴스턴 로키츠에 지명되었던 랄프 샘슨(62‧224cm)이었다. 큰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운동능력, 테크닉에서 ‘탈 센터급’으로 불렸던 그는 일찍부터 부동의 1순위로 평가받았고 그를 지나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워낙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선수인지라 무릎 부상만 아니었다면 4대 센터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는 의견도 많다.


샘슨 다음에 뽑힌 2순위의 주인공은 미주리대 출신의 빅맨 스티브 스테파노비치(61‧211cm)였다. 높이 보강이 절실했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샘슨 다음가는 센터로 평가받았던 스테파노비치에게 2순위 지명권을 행사했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조건이면 장신 센터의 값어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테파노비치는 세르비아 및 크로아티아계 혈통이었다. 그의 증조부가 세르비아, 증조모가 크로아티아계였다.


스테파노비치는 지명 당시 인터뷰에서 "확실히 장담은 할 수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샘슨 다음으로 내가 뽑힐 것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2순위급의 기대치에는 못미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의 스테파노비치는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첫 시즌 평균 12득점, 6.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올루키팀에 이름을 올린 것을 비롯 5시즌 동안 403경기에서 평균 13.2득점, 7.8리바운드, 2.3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했다.


팀에서도 그에 대한 기대가 컸던지라 대부분 경기를 선발로 출전했는데 스테파노비치 역시 이에 화답하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팀의 기둥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이후였다. 1988년을 기점으로 스테파노비치의 농구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고질적인 퇴행성 무릎질환이 원인이었는데 수술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고 1988~89시즌 전체를 결장하고 만다.


치료와 휴식을 병행했음에도 무릎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1989년 28세의 나이로 은퇴를 결정해야만 했다. 은퇴 후에도 왼쪽 무릎만 6회, 어깨 4회 등 무려 13차례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문제로 인해 전국구 스타는 되지 못했으나 미주리주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유명인사였다. 1999년 모 스포츠잡지에서 선정한 '미주리주에서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스타 50인'에 이름을 올린 것을 비롯 2001년에는 미주리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당시 드래프트에서 진정한 승자는 14순위로 클라이드 드렉슬러(60‧201cm)를 뽑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1996년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에 이름을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드렉슬러는 동시대 가장 위대한 슈팅가드중 한명이었다. 마이클 조던에게 가리기는 했지만 '글라이더'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려한 공중전을 즐기던 화려한 테크니션이었다.


거기에 더해 외곽슛까지 갖추고 있었던지라 완성형 슈팅가드로 불렸는데 아쉽게 한창 잘 나갈때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배드보이즈'와 조던의 시카고 불스와 전성기가 겹치며 두번이나 포틀랜드를 파이널에 올렸음에도 더맨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 이후 드렉슬러는 휴스턴으로 이적해 하킴 올라주원과 파이널 우승을 합작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문복주 기자, FI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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