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청출어람’ 루이비통이 택한 미국 와이너리… 조셉 펠프스 이니스프리

유진우 기자 2023. 3. 1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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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와인 전문 매체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는 지난해 와인업계에 벌어진 주요 사건 가운데 세번째 중요한 사건으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주도한 쉐이퍼 빈야드(Shafer Vineyards) 인수를 꼽았다.

동시에 여섯번째로 루이비통으로 대표되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 조셉 펠프스 빈야드(Joseph Phelps Vineyards)를 사들인 뉴스를 선택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최대 와인산지 캘리포니아에서 알짜배기로 꼽히는 두 굵직한 와이너리가 대한민국과 프랑스 재벌가에 넘어갔다는 소식은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두 와이너리는 모두 와이너리를 세운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자 마자 주인이 뒤바뀌었다. 쉐이퍼 빈야드를 세운 존 쉐이퍼(John Shafer)는 2019년 94세로 사망했다.

조셉 펠프스 빈야드를 일군 조셉 펠프스 역시 지난해 4월 87세 일기로 눈을 감았다. 미국 와인업계에서는 와이너리 창업자가 사망하면 그 자식들이 상속세 마련이나 정확한 배분을 이유로 와이너리를 파는 경우가 잦다.

조셉 펠프스 빈야드는 인수가액만 놓고 보면 쉐이퍼 빈야드를 압도한다. 신세계가 쉐이퍼 빈야드를 사들이면서 지불한 금약은 약 2억5000만달러(약 3260억원)로 알려졌다. 반면 프랑스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유서 깊은 와이너리를 사들일 때 거래금액을 공개하지 않는다.

해당 와이너리가 쌓은 무형적 자산(heritage)을 숫자로 평가하길 꺼리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LVMH의 조셉 펠프스 인수 금액은 최소 5억~8억달러(약 6500억~1조원)로 2억5000만달러였던 쉐이퍼에 비해 최소 2배에 달한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은 프랑스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 와이너리를 사들이면서도 유난히 미국 와이너리에는 인색했다. 클라우디 베이 같은 뉴질랜드 와인은 물론, 호주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샹동,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아드벡’, 심지어 중국 와인 브랜드 ‘아오 윤’을 사들이는 와중에도 미국 와이너리는 외면했다.

조셉 펠프스 빈야드 인수 이전 LVMH가 보유한 미국 와이너리는 뉴튼 빈야드 뿐이다. 뉴튼 빈야드는 1977년 영국인 피터 뉴튼과 그의 중국인 아내가 설립한 와이너리다. LVMH는 이 와이너리를 2001년 인수한 후 20년 넘게 다른 미국 와이너리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래픽=손민균

그러나 조셉 펠프스만큼은 달랐다. 창업자 조셉 펠프스 사후 곧바로 인수 의사를 나타내고 이 와이너리를 사들이기까지 두 달 보름이면 충분했다. 그만큼 조셉 펠프스 와이너리가 가진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필립 샤우스 모에헤네시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조셉 펠프스 빈야드 인수 당시 “LVMH와 같은 장인정신, 기업가 정신과 품질을 보유한 대형 와이너리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며 “조셉 펠프스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고, 이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수요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미국에서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셉 펠프스 빈야드는 오로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점철됐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처음으로 프랑스 보르도 식으로 여러 포도를 섞는 ‘메리티지(meritage)’ 블렌딩을 시작한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는 보통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카베르네 소비뇽 뿐 아니라 메를로와 프티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 같은 여러 품종 포도를 섞는다.

카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강렬한 맛을 부드러운 메를로가 중화해주고, 카베르네 프랑은 여기에 섬세한 맛과 그윽한 향을 더한다. 프티 베르도는 진한 색감과 함께 감칠 맛을 배가시킨다. 이렇게 여러 품종을 섞는 방식은 각 포도가 가진 결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섞는 포도 품질이 떨어지거나, 섞는 양을 잘못 조절하면 어느 품종 특성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도 저도 아닌’ 와인이 되버리고 만다.

조셉 펠프스는 이전까지 오로지 직선적이고 달큰한 성향이 강한 카베르네 소비뇽만을 선호하던 미국 양조업계에서 여러 품종이 가진 개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섬세한 양조기법을 선보였다.

시작은 ‘프랑스 보르도 따라하기’였지만, 조셉 펠프스가 이렇게 만든 와인은 빠르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셉 펠프스 대표 와인 ‘인시그니아(Insignia)’는 현재 미국 대표 와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시그니아 750밀리리터 한 병당 가격은 250달러(약 33만원)부터 시작한다.

미국 현지에서 유명한 보르도 메독 그랑크뤼(Grand Cru)급 와인 한 병은 보통 100달러선에서 거래되기 시작해 200달러를 넘어가는 와인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인시그니아에 대한 소비자 평가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평단 역시 이 와인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시그니아 2002년산은 전 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뽑은 ‘2005년 와인 스펙테이터가 꼽은 100대 와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은 인시그니아 2018년산에 99점을, ‘와인 평론계 대통령’ 로버트 파커는 인시그니아 2016년산에 99점을 줬다.

조셉 펠프스 이니스프리는 조셉 펠프스에서 만드는 기본급 와인이다. 처음부터 인시그니아를 맛보기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소비자라면, 조셉 펠프스가 만드는 와인이 어떤지 느껴보기에 이니스프리는 제격이다.

이니스프리는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를 중심으로 메를로를 일부 섞어 만드는데, 해에 따라 말벡과 프티 베르도가 상당량 섞이기도 한다. 이 와인은 2016년에 이어 2022년에도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와인 부문에서 대상 수상했다. 수입사는 나라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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