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물과 맛있는 물… 물과 술 이야기 1[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노성열 기자 2023. 3. 1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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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물은 흔히 무색, 무취, 무미의 3무(無)로 불리지만 미네랄과 탄산의 함유량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이 난다. 맛과 향을 결정하는 기본 물질인 동시에, 지구상 생명체의 젖줄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미각(味覺) 수용체와 향을 감지하는 수십 가지 후각(嗅覺) 안테나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작 음식마다 맛과 향을 결정하는 분자의 비율은 전체의 5%도 채 되지 않고 대부분 무색, 무취, 무미(無味)의 재료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바로 물과 3대 영양소(탄수화물·단백질·지방)입니다.

그중에서도 물은 인체의 65%를 구성하는 물질이며, 고기·채소·과일 등 식재료의 주성분이기도 합니다. 채소·과일은 80~90%가 물로 돼 있어 사실상 이들은 ‘고체 물’이라 할 수 있죠. 생명을 구성하는 주성분, 물은 냄새도 맛도 없는 신비의 물질입니다. 생명체는 물 없이는 단 며칠도 견딜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몸속 수분의 2%만 줄어들어도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5%가 줄어들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르니까요. 외부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이를 다시 배출하는 신진대사(新陳代謝, metabolism) 작용의 각 과정에는 물이 필수 중간재료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우주에 유일하게 물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이 우주에서 다른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단서가 물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얼굴합성 뉴트리노 생활과학 컷

그런데 물에도 맛이 있습니다. 이른바 ‘물맛’입니다. 무색, 무취, 무미라고 해놓고 물맛이라니! 그러나 엄연히 물속에 녹아있는 무기질(미네랄)과 탄산의 양에 따라 인간은 입에서 조금씩 다른 맛을 느낍니다. 물맛은 사람마다 각인각색이라 일률적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물이 지하에 스며들어 토양에 녹아있는 무기질 성분을 흡수하면서 우리가 부르는 ‘약수’ 맛이 됩니다. 유황 온천이나 칼륨 온천의 물맛을 연상하면 되겠죠. 녹아있는 유기질의 종류별로 조금씩 다른 맛이 납니다. 인간의 혀에 나트륨(Na)과 칼륨(K)은 짠맛으로 느껴집니다. 나트륨과 칼륨은 신경세포의 막을 경계로 들락날락하며 탈분극(脫分極)과 재(再)분극을 일으키는 이온 성분입니다. 즉, 세포막의 안쪽과 바깥쪽을 교대로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기 상태로 바꿉니다. 이 현상이 활동전위라고 부르는 신경세포의 통신 전류를 만들어 우리의 뇌에 감각 신호를 전달하거나 거꾸로 뇌 신호를 신체에 보냅니다. 나트륨과 칼륨이 드나드는 통로를 나트륨·칼륨 펌프라고 합니다. 나트륨은 소금에, 칼륨은 각종 채소에 풍부하게 들어있죠. 무기질 중 칼슘(Ca)과 마그네슘(Mg)은 쓴맛으로 느껴집니다. 철분(Fe)이 많으면 소위 ‘쇠 맛’이 납니다. 구리(Cu)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약간 시큼하고도 금속 특유의 목마른듯한 느낌을 유발합니다.

이렇게 무기질, 즉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녹아있는 물을 단단한 물, 경수(硬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적으면 연수(軟水)로 분류하지요. 석회암 등 연질의 토양이 분포한 나라의 물맛은 텁텁한 반면에, 우리나라처럼 단단한 화강암 암반에서 물이 지하로 빠른 시간 내에 침전하면 연수가 되기 쉽습니다. 물맛 좋은 금수강산이라고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물에 녹은 수소이온 농도(pH)에 따라 산성수와 알칼리수로 나누기도 합니다. pH 7.0 중성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산성, 높으면 알칼리성용액이라고 부릅니다.

탄산이 녹아 있는 물은 탄산수라고 합니다. 천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탄산수는 시원한 약수나 탄산 온천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탄산을 물에 녹이는 과학기술을 발명해 ‘소다(Soda)’라고 통칭하는 탄산음료도 만들어냈습니다. 흔히 ‘사이다 맛’이라고 불리는,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의 물입니다. 청량감과 상쾌함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탄산이 이처럼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물에 녹아있던 탄산 성분이 체내에서 기화되면서 기포(氣泡), 공기 방울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방울이 툭 터지는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수소이온, 이산화탄소가 주는 화학적 자극에 시원함의 뿌리가 있다고 합니다. 탄산 탈수소 효소(CA-Ⅳ)가 탄산에서 수소 이온을 분리해내야 시원함을 느끼고, 이 효소 작용을 차단하면 그 느낌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또 섭씨 15도 이하의 차가운 영역을 감지하는 온도 수용체(TRPA1)에 이산화탄소도 결합하기 때문에 뇌에 시원하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캡사이신의 자극을 뜨거운 감각으로 잘못 인식해서 매운맛의 고추를 먹으면 열이 나듯, 이산화탄소의 자극은 차가운, 시원한 맛으로 잘못 인식되는 것입니다. 탄산의 양이 많을수록 더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콜라, 맥주, 막걸리 같은 탄산음료 말고 물김치에서도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는 것은 발효에서 생성되는 탄산 때문입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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