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처방은 시(時)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O을 따라야 한다

정명진 2023. 3.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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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경악전서>에 기록된 ‘사시종증(舍時從證. 때를 버리고 증을 따름)’에 관한 내용.

먼 옛날, 왕(王)씨 성을 가진 사내의 우측 팔뚝에 종기가 생겼다. 종기는 심해서 위쪽으로 어깨까지 부어올랐고, 심지어 손가락까지 증상이 퍼진 듯 했다. 색은 팥죽처럼 검어졌고, 피부는 냉감이 나타났다. 왕씨 가족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동네 의원에게 진료를 부탁했다.

동네 의원은 사내의 증상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심한 종기는 처음 봤고, 그보다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 같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보다 의술이 뛰어난 한 의원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물러났다. 그 의원의 이름은 손(孫)씨 의원으로 불렸다. 동네 의원에게 소개를 받은 손 의원이 도착했다.

손 의원은 증상을 보더니 “이 병은 부골옹저(附骨癰疽)이요. 그런데 이렇게 팔 전체가 부어오른 것을 보면 도려내기에는 너무 늦었소.”라고 했다.

부골옹저는 종기와 비슷한 옹저(癰疽)의 일종으로 뼈까지 침범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심한 통증이 살뿐만 아니라 병소를 누르면 뼈까지 통증이 나타난다. 손 의원이 왕씨 팔뚝의 가장 솟아오른 곳을 보니 안쪽에 농이 잡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팔뚝 피부를 만져보니 냉감이 심했다. 손 의원은 대침을 불에 달궜다.

그러자 왕씨 가족은 “지금 뭐 하는 거요? 그 침을 왜 불에 달구는 것이요?”라며 놀라 물었다.

손 의원은 “지금 피부에 냉감이 심한 것은 병소에 냉기가 머물러 있다는 증거요. 그래서 이 번침(燔針)으로 해서 찔러야 농도 빠지고 화기가 냉기를 몰아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소.”라고 했다.

번침(燔針)은 요즘 말하는 화침(火針)의 일종이다. 손 의원이 번침으로 종기를 찌르자 희멀건 농이 흘렀다. 다음 날 다시 보니 어깨와 팔뚝의 붓기는 빠졌는데, 팔꿈치의 아래로 붓기는 여전했다. 그래서 재차 번침을 이용해서 팔꿈치 아래 부분을 찔렀다. 그런데 왕씨가 갑자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손 의원은 왕씨에게 미리 만들어 놓았던 정향시체산(丁香柹蔕散)을 가져다 먹였다. 정향시체산은 정향(丁香), 시체(柹蔕, 감꼭지)와 함께 인삼, 귤피 등으로 이루어진 처방으로 보통 위가 허한(虛寒)해서 나타나는 딸꾹질을 치료하는 명방이다. 민간에서는 찬물을 먹고 난 딸꾹질에 단지 감꼭지 말린 것만을 다려 먹기도 한다. 왕씨의 딸꾹질은 약간 줄어든 듯했다.

그러나 딸꾹질은 다음 날까지 멎지를 않았다. 옹저에 의한 팔의 부종은 많이 빠졌고, 통증도 줄어서 회복이 되려나 했지만, 이제는 딸꾹질이 문제였다. 딸꾹질은 급기야 점차 더 심해지고 배는 차가워지고 설사를 하면서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식사 때가 되어도 밥은 평소의 반밖에 먹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때때로 까무러치듯 정신이 왔다 갔다 혼절하는 듯했다.

손 의원은 정향시체산을 먹여도 딸국질이 여전하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좀 더 강력한 치료를 시도했다. 먼저 왼쪽 가슴 아래쪽 색이 창백한 곳에 뜸을 14장을 떴다. 해당 부위는 위(胃)로 흐르는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 경락이 흐르는 길목이기에 이곳에 뜸을 뜨면 위장의 냉기를 몰아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뜸을 뜨고 나서 탁리온중탕(托裏溫中湯)을 처방했다. 탁리온중탕은 부자, 건강, 강활, 목향, 침향, 회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옹저를 앓으면서 양기(陽氣)가 아래로 처져서 배가 아프고 설사하며 딸꾹질하고 정신이 혼미한 경우를 치료하는 처방이다.

손 의원의 치료과정은 옆에서 몇몇의 동네 의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손 의원을 소개해 줬던 의원이 이미 소문을 내 놓은 터라, ‘무언가 배울 점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 의원이 약방문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한 의원이 “의서에 보면 모든 통증과 가려움증과 창(瘡)은 모두 화(火)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한 여름 때인데 어찌 건강과 부자를 쓸 수 있습니까? 의서에도 기운이 뜨거운 육계피(肉桂皮)조차 여름에 쓰면 안된다고 했습니다.”고 물었다.

그러나 손 의원은 “의원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이론적으로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기록된 <내경>에는 또한 맥이 가는 것, 피부가 냉한 것, 설사 전, 설사 후, 식욕부진을 오허(五虛)라고 했습니다. 특히 딸꾹질을 하는 것은 위장이 허한(虛寒)해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제통양창(諸痛癢瘡瘍) 개속심화(皆屬心火)’라는 문구에 얽매여 찬 약을 쓰면 속은 더욱 허냉(虛冷)해서면서 딸꾹질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한 여름이라도 때를 버리고 증을 따라서 처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신열(辛熱)한 약성의 처방을 급히 대량으로 투약을 하지 않으면 나을 수 없을 것이요.”라고 했다.

손 의원은 설명을 마치자 바로 원래의 계획대로 조제를 해서 투약을 했다. 설명을 듣던 의원들은 불안하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왕씨의 제반 증상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식욕이 돌아와 음식은 평상시의 곱절을 먹었고 종기의 세력은 약해지면서 농색은 정상 피부색으로 바뀌어 갔고 부종도 빠졌다. 물론 딸꾹질도 멎었다. 손 의원은 다시 오향탕(五香湯)을 조제해서 몇 차례 복용시켰다. 오향탕은 목향, 침향, 정향, 유향, 사향 등으로 구성된 처방으로 기혈은 향기를 맡으면 잘 돌기 때문에 경락을 통하게 함으로써 옹저를 치료하는 처방이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왕씨의 모든 증상은 사라졌고 건강을 완벽하게 회복했다. 왕씨가 건강을 회복하자 동네 의원들이 다시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

한 의원이 물었다. “한 여름에 어떻게 뜨거운 약성을 가진 부자를 처방할 수 있었던 것이요?”
그러자 손 의원은 “만약 열증이 나타나면서 맥 또한 홍(洪), 삭(數), 실(實)하다면 이것은 순양(純陽)이니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도 반드시 고한(苦寒)한 약을 처방해서 열독(熱毒)을 쳐 내야 할 것이요. 반면에 냉증이 나타나면서 맥은 침(沈), 지(遲), 미약(微弱)하다면 이것은 순음(純陰)이니 혹서(酷暑)의 계절이더라도 반드시 신랄(辛辣)하면서 온열(溫熱)한 약으로 양기(陽氣)를 북돋아야 합니다. 이에 한 여름이라도 허한(虛寒)이 심하면 시(時)를 버리고 증(證)을 따라야 하기에 육계와 부자라도 두려워 말고 처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왕씨를 치료할 때 시(時)를 버리고 증(證)을 따라야 한다고 한 것으로 한여름임에도 부자 같은 대열(大熱)한 약을 쓴 것일 뿐이요. 만약 서열(暑熱)이라는 이름 때문에 두려운 나머지 한량(寒涼)한 약만을 고집해서 양기를 벌하면 그 변화를 이루다 측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른 의원이 이어서 물었다. “그럼 증(證)을 따르라고 하셨는데, 증은 눈에 보이는 데로 보면 되는 것입니까?”
손 의원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중요한 질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진짜의 증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맥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증(證)과 맥(脈)이 부합되면 그 증은 진(眞)이 될 것이고, 증과 맥이 상반되면 그 증은 가(假)가 됩니다. 이때 증과 맥이 부합되지 않는다면 맥은 원인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맥을 따라서 약을 처방해야 합니다. 밖으로는 열증이 나타나나 원인은 한(寒)일 수 있고, 밖으로는 냉증이 나타나는 원인은 열(熱)일 수 있으므로 의서에서는 이것을 진한가열(眞寒假熱), 진열가한(眞熱假寒)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땅히 의원이라면 같은 증(證)이라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하는 것도 곁은 열(熱)하지만 속이 냉(冷)한 경우에는 뜨거운 기운의 음식이나 열(熱)한 기운의 약을 먹어서 다스리는 것과 같소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또다른 의원이 질문했다. “의원으로서 이처럼 진맥이 중요하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손 의원은 “그러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또한 결코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병을 치료할 때 환자에게 이미 나타난 증상들만큼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또한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한 두가지 증상(症狀)만을 보고서 증(證)을 파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한가닥의 실로 비슷한 색과 크기의 진주를 꿰는 것과 같소이다. 그래서 명의는 환자가 한 두가지 증상만 보여도 질문 몇 개 만으로도 환자의 모든 증상을 파악해 낼 수 있지만, 용렬한 의사는 질문은 많지만 쓸만한 것들이 없어 환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입니다. 심지어 몇몇 의원들을 보면 나타나지도 않는 병증을 미리 나열해 환자에게 겁을 주고 약을 먹게 하지만 뜬구름 잡는 겁박(劫迫)들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많아 걱정이요. 사실 이미 나타난 기연(已然)을 무시하니 아직 생기지 않은 미연(未然)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요즘 의원들을 보면 환자의 병세가 오래되어 모든 증(證)이 갖추어 졌음에도 제대로 변증(辨證)하지 못해 치료에 실패하는 자들이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요. 개탄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알아듣는 자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요.”라고 했다.

동네 의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 제목의 ○은 증(證)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경악전서> 舍時從證. 至元壬午, 五月二十八日, 王伯祿, 年逾五旬有七, 右臂膊腫甚, 上至肩, 下至手指, 色變, 皮膚凉, 六脈沈細而微, 此乃脈症俱寒. 余擧瘍醫孫彦和視之, 曰: “此乃附骨癰, 開發已遲”, 以燔鍼啓之, 膿淸稀, 解, 次日, 肘下再開之, 加呃逆不絶, 彦和與丁香柿蒂散兩劑, 稍緩. 次日, 呃逆尤甚, 自利, 臍腹冷痛, 腹滿, 飮食減少, 時發昏憒. 於左乳下黑盡處, 灸二七壯, 又處托裏溫中湯, 用乾薑, 附子, 木香, 沈香, 茴香, 羌活等藥, 㕮咀一兩半, 欲與服, 或者曰: “諸痛癢瘡瘍, 皆屬心火, 又當盛暑之時, 用乾薑, 附子可乎?” 予應之曰: “理所當然, 不得不然. 內經曰: ‘脈細, 皮寒, 瀉利前後, 飮食不入, 此謂五虛’, 况呃逆者, 胃中虛寒故也. 諸痛癢瘡瘍, 皆屬心火, 是言其定理也. 此症, 內外相反, 須當舍時從證, 非大方辛熱之劑急治之, 則不能愈也”, 遂投之, 諸症悉去, 飮食倍進, 瘡勢溫, 膿色正. 彦和, 復用五香湯數服, 後月餘平復. 噫! 守常者, 衆人之見; 知變者, 知者之能. 知常不知變, 因細事而取敗者, 亦多矣, 况乎醫哉!.

(때를 버리고 증을 따름. 1282년 5월 28일, 57세 왕백녹이 우측 팔뚝이 종기가 심해서 위로 어깨, 아래로 손가락까지 이르렀는데, 색이 변하고 피부는 냉하며 육맥이 침세하면서 약하니 맥증이 모두 한증이었다. 내가 추천한 종기 전문의인 손언화가 이를 보고 “부골옹인데 도려내기는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불에 달군 침으로 찌르자 희멀건 농이 흘렀고, 다음날 재차 팔꿈치 아래를 째자 딸꾹질이 계속 되었는데, 언화가 정향시체산 2제를 투여하자 다소 완화되었다. 다음날 딸꾹질이 심해지고 설사, 복부냉통, 복만, 음식감소하며 때로 혼절하였다. 왼쪽 유방 아래에 검은색을 띠는 곳을 14장 뜸뜨고 탁리온중탕 처방으로 건강, 부자, 목향, 침향, 회향, 강활을 1양반 복용시키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모든 통증과 가려움증과 창은 모두 화에 속할 뿐 아니라 한 여름 때인데 건강과 부자를 쓸 수 있는가?”고 물었다. 나는 “이치적으로는 당연하지만, 부득이해서 그렇다. 내경에서는 맥세, 피부 냉, 설사전후, 식욕부진을 오허라고 하였고, 특히 딸꾹질은 위장이 허한하기 때문이다. ‘제통양창 개속어심화’란 정리를 말한다. 이 증은 내외가 상반하니 반드시 때를 버리고 증을 따라야 하는데, 신열한 처방을 대량으로 써서 급치하지 않으면 나을 수 없다”고 대답하고 이를 투여했는데, 제증이 전부 사라지고 음식을 곱절로 먹으면서 종기의 세력이 온화해지고 농색이 제대로 바뀌었다. 언화가 다시 오향탕을 몇 차례 복용시켰고, 한 달 남짓 후에 평소처럼 회복되었다. 아! 상법을 지키는 것은 뭇 사람의 견해이지만, 변화를 아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상만 알고 변을 알지 못하여 작은 일 때문에 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의도는 어떻겠는가!)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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