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이정효 광주 감독 “재정 약한 시민구단, 결과보다 과정으로 살아남아야”

박주희 2023. 3. 1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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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포지션 파괴'로 역대 2부 최다 승점
K리그1서도 광주 색깔 확실히 선보여
"마무리 능력 키우고 수비방법 찾아갈 것"
이정효(오른쪽 두 번째) 광주FC 감독이 5일 광주 서구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프로축구 K리그1 2라운드 FC서울의 경기 중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한국 프로축구계에서 지난 시즌과 올 시즌을 통틀어 가장 주목받은 지도자는 단연 이정효 광주FC 감독이다. 그는 감독 데뷔 해였던 지난 시즌 화끈한 공격축구를 바탕으로 K리그2 역대 최다 승점(86점)을 기록,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주를 K리그1으로 승격시켰다. 1부 리그에서도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수원 삼성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뒀고, 비록 패하긴 했어도 2·3라운드에서 선배 지도자들에게 광주만의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 감독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정이 약한 시민구단은 결과보다는 경기력에 방점을 찍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K리그2 시절처럼 과정을 중시하는 축구를 계속 밀고 나갈 생각”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복잡한 축구 용어와 미사여구를 걷어내면 이정효의 축구는 ‘포지션 파괴’로 정리된다. 스스로도 “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센터포워드가 센터백이 될 수도 있고, 센터백이 미드필더가 될 수도 있다. 선수들에게도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며 “(정해진 포지션을 신경 쓰기보다) 공간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일 열린 FC서울과의 일전을 통해 광주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날 광주는 활발한 스위칭과 강력한 전방압박, 빠른 공수 전환으로 서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비록 후반 10분 에이스 엄지성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뒤 수적 열세에 놓여 0-2로 패했지만, 엄밀히 말해 경기력에서만큼은 광주가 서울을 압도했다.

이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것이 분하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상대팀을 배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당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예를 들어 타 종목인 쇼트트랙을 보면, 이제 팬들은 선수들이 올림픽 동메달을 따도 그 과정이 충실했다면 박수를 쳐준다. 축구 국가대표 경기도 내용을 많이 본다”며 “한국 프로축구도 과정과 내용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한 말이었다”고 부연했다.

이정효 감독이 2023년 2월 20일 서울 서초구 더K호텔에서 열린 2023 K리그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타팀 감독들이 모두 정장을 입었던 이 행사에 이 감독은 광주 소속 선수인 이으뜸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참석했다. 그는 "비시즌 중 부상을 당한 이으뜸을 위로하기 위해서 유니폼을 입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그렇다 해도 결국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광주는 현재 2연패에 빠져 있다. 공격 축구를 표방하면서도 세 경기에서 1골만을 넣었다. 이 감독은 “분명 파이널서드(경기장을 세 구역으로 나눴을 때 가장 위 공격 구역)까지는 공을 잘 운반하는데 마지막 결정을 못 짓고 있다”며 “이 지역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움직임을 더 구체적으로 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득점에 비해 많은 실점(4)에 대해서도 “확실히 K리그1에는 마무리가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한 번의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인정했다. 이어 “롱볼에 대비한 수비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며 “지금의 경험이 축적되면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감독은 전술가로서뿐만 아니라 관리자로서도 뛰어난 지도자다. 평소 독서광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을 종종 선수들에게 선물한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또 선수단을 꾸리는 시점부터 주력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도 염두에 둔다. 실제로 엄지성, 허율, 정호연이 연령별 대표에 뽑혀 다음 달 1일 수원FC전에 나서지 못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이 감독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26명의 선수가 있는 것”이라며 “이강현, 신창무, 김한길이 대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을 숨기지 않은 이 감독이지만, 올해 목표를 밝히는 데는 유독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개막 전 열린 미디어데이에서도 “잔류가 목표는 아니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 감독은 “아직까지 외부에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시작하면 그때 이야기하겠다”며 웃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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