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은 오므라이스, 영국 왕은 핫도그로 ‘푸대접’ 받았다고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3. 3.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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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일 정상회담으로 엿본
세계 정상들의 식탁외교
일본 도쿄 긴자 '렌가테이'의 오무라이스. 렌가테이에서는 '라이스 오믈렛'이라고 부른다./타베로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긴자의 고급 스키야키·샤부샤부 전문점 ‘요시자와’에서 한일 정상회담 공식 만찬을 가진 뒤 윤석열 대통령을 긴자 뒷골목 ‘렌가테이(煉瓦亭)’로 안내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공식 만찬과 별도로 ‘2차 모임’을 갖는 건 이례적”이라며 “정상 간 신뢰 관계를 쌓는 자리로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소박하다 못해 허름한 이 식당을 일본 정부가 2차 접대 장소로 선택한 건, 오므라이스를 좋아하는 윤 대통령 입맛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벽돌(煉瓦)로 지은 집(亭)’이라는 뜻의 렌가테이는 4대를 이어온 128년 노포로,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의 발상지로 유명한 경양식집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친교 만찬을 마치고 2차로 렌카테이로 자리를 옮겨 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뉴시스

렌가테이 3대 사장 기다 아키토시(현 사장은 4대)는 과거 인터뷰에서 “오므라이스는 1900년 식당 종업원들의 식사로 개발됐다”며 “종업원이 먹는 걸 보고 손님들이 ‘나도 먹게 해달라’고 요청해 1901년부터 ‘라이스 오믈렛’이라는 이름으로 메뉴에 올렸다”고 했다. 이 집의 오므라이스는 쌀밥을 달걀 물에 섞어 타원형 오믈렛 모양으로 조리한 스타일로, 달걀 오믈렛으로 볶음밥을 감싼 일반적인 오므라이스와는 다르다.

기다 사장은 “오믈렛으로 재료를 감싸는 형태의 오므라이스는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이후로, 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국적 선박에서 근무한 일본인 요리사들이 이들 국가의 필라프(볶음밥), 리소토 등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렌가테이에서는 두 가지 오므라이스를 모두 내고 있다.

일본 도쿄 긴자에 있는 '렌가테이' 외관. /타베로그

일본 정부는 해외 정상이 올 때마다 일본 특유의 손님 접대 방식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로 환대해왔다. 오모테나시는 ‘겉면’, 즉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의미하는 ‘오모테’와 ‘없다’는 뜻의 일본어 ‘나시’를 합친 말이다. 감추는 것 없이 진심으로 환영함을 드러내기엔 소박하지만 상대가 진짜 좋아하는 음식만 한 것이 없다. 일본 정부가 각국 정상을 허름한 맛집에서 종종 접대하는 이유다.

2002년 2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공식 만찬과 별도로 도쿄 니시아자부에 있는 이자카야(선술집) ‘곤파치’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했다. 미·일 정상이 노타이 차림으로 2층 복도 난간에서 아래층 홀에 있는 일반 손님들에게 손 흔드는 모습은 양국 관계의 긴밀함을 어떤 말보다 강렬하게 보여줬다.

2014년 4월 아베 신조 총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노타이 차림으로 ‘스키야바시 지로’의 바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 스시를 먹었다. 지로는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 3개를 받은 도쿄 최고의 스시집이지만, 테이블 없이 카운터 좌석 10개가 고작인 데다 오래된 건물 지하 상가에 있고 상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롯폰기에 있는 로바다야키 ‘이나카야’에서 부부 동반 만찬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넷째)는 지난 2014년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 셋째)을 도쿄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서 접대했다./조선일보DB

프랑스는 식탁 외교의 선구자다. 1814~1815년 나폴레옹 몰락 후 열린 빈 회의에서 프랑스 외무대신 탈레랑은 당대 최고 요리사인 카렘을 고용해 각국 외교관들에게 환상적인 음식을 제공하며 패전국 프랑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프랑스도 현대에 들어서는 격식을 갖춘 정식 만찬이 아닌 오래된 노포에서 사적 소통을 시도한다. 1999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빌 클린턴 대통령을 파리 3구역 골목에 있는 ‘셰 라미 루이’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했다. 셰 라미 루이는 프랑스 비스트로(bistro)의 전형으로 꼽힌다. 흰색 리넨이 아닌 대중적인 핑크색 테이블보로 덮인 작은 사각 테이블 4개가 고작이지만, 달팽이·푸아그라(거위 간)·오븐구이 통닭 등 프랑스 전통 음식을 가장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만찬 이후 이 식당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스트로”로 알려지며 예약이 불가능하다시피 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1년 11월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부르고뉴로 초청했다. 정계를 은퇴하는 메르켈의 마지막 공식 프랑스 방문 일정이 특별한 추억이 되도록 파리 대통령궁이 아닌 부르고뉴로 ‘모신’ 것. 마크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샤토 뒤 클로 드 부조’에서 메르켈을 위한 만찬을 차렸다. 부르고뉴에서 1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 요한 샤퓌는 부르고뉴산 치즈, 소고기 등으로 부르고뉴 요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음식을 코스로 냈다. 만찬 후 마크롱은 메르켈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를 전달했다. 메르켈은 눈시울을 붉히며 마크롱을 포옹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1년 11월 3일 프랑스 부르고뉴 본에 있는 ‘샤토 뒤 클로 드 부조’ 연회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마주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임기 중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찾은 메르켈 총리를 위해 이곳에서 특별한 만찬을 준비했다. /엘리제궁 공식 인스타그램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영국 국왕 부부에게 핫도그를 먹였다. 1939년 6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 군주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조지 6세 부부를 뉴욕주(州) 교외에 있는 자신의 저택 마당에서 열린 피크닉 파티에 초대했다. 조지 6세 부부를 위한 핫도그 2개가 은쟁반에 담겨 나왔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핫도그를 처음 본 국왕 부부가 당황해 묻자, 루스벨트는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받쳐서 입에 넣고 조금씩 씹어 가면서 삼키면 된다”고 알려줬다. 왕비는 포크와 나이프를 고수했지만, 왕은 대통령이 알려준 대로 손으로 핫도그를 먹었다. 뉴욕타임스는 “영국 국왕이 핫도그를 먹어보고 더 청했다. 맥주도 반주로 마셨다”고 보도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3개월 전. 미국에서는 전쟁 참여에 반대하는 고립주의 여론이 강했다. 전쟁이 터지면 영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민심을 돌릴 방법이 필요했다. 미국 뉴올리언스에 있는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은 “(핫도그를 손으로 먹는 모습은) 미 국민들이 영국 국왕을 좋아하게 만들었고, 사악한 식민 지배자가 아닌 자신들과 같은 보통 사람으로 보게 했다”며 “2차 대전 발발 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회와 국민을 설득해 영국을 지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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