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95]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

백영옥 소설가 2023. 3.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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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팬이라면 ‘아스널’과 ‘토트넘’이 앙숙임을 잘 알 것이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앙숙으로 유명하다. 서로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큰지 상대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행인이 길가에 쓰러져 있더라도 구해주지 않겠다는 팬이 있을 정도다. 회사 내에 거악, 즉 악랄한 보스가 한 명 존재하면 팀원들의 결속은 오히려 더 좋아진다. 싫어하는 것을 공유하며 생기는 연대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싫어하는 사람이 잘못되는 걸 보는 게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면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가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싫음은 본능적이다. 싫음은 좋음보다 더 강렬하고 잔상은 더 오래 남는다. 백 개의 선플 중 단 하나의 악플만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쉽게 무너진다. 무엇보다 싫음을 잘 알아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이것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기 경계’ 즉 ‘기준 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싫음은 ‘선 긋기’의 예비 단계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참아도 사소하게라도 거짓말하는 사람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무례함, 폭력, 위선 등 사람마다의 그 기준선은 천차만별이다. 선 긋기는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선명하게 알리는 기술이다. 내가 무엇을 참을 수 없고, 어떤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보다 왜 싫은지, 어떻게 싫은지를 더 쉽고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다.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를 채우고 나면 좋아하는 것의 리스트도 점차 알게 된다. 인정 욕구, 체면, 콤플렉스, 자기 왜곡 같은 불순물에 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던 진짜 나의 모습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싫어하는 것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는 행복한 인생이 과연 가능할까. 행복한 삶이 무엇이냐고 만약 내게 묻는다면, 나는 ‘싫어하는 것을 최대한 선택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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