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고양이 묻어주며 자기 삶 바라본 주인공… “도망은 답이 아니었다”

이영관 기자 2023. 3.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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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396쪽 | 1만6500원

아이의 눈으로 그린 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 대체로 십대 소녀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집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으나, 위기를 딛고 성장하는 보통 서사와는 사뭇 다르다. 단편 ‘불장난’의 화자는 십대 초반의 소녀. ‘나’는 부모의 이혼으로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가 느낀 혼란은 극적인 갈등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정도다.

‘나’의 관심사는 같은 반 아이 ‘양우정’. 그를 둘러싼 소문이 미심쩍다. 다들 조숙한 우정이 중학생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고, 청소를 맡은 숙직실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고 믿는다. 어느 날 ‘나’는 우정이 있는 숙직실 문을 연다. 그곳에서 우정은 음악에 맞춰 워킹 하고 있었다. 우정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다. 이후 ‘나’는 침대 밑에서 우연히 아버지의 라이터를 발견한다. 불장난을 끝없이 반복하며 생각한다. “착각과 기만, 허상을 디뎌야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단편들은 믿었던 세계가 부서진 자리에 새 살이 자라나는 과정을 그린다.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표제작은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소녀가 아닌 엄마 시점에서 전개된다. 여자는 딸을 떠나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남편과는 수년 전 이혼했다. 어느 날 한 모임에서 몰래 빠져나와 운전을 하던 도중 고양이를 친다. 그 고양이를 땅에 묻으며 제 삶을 비로소 바라본다. 도망은 허상이었다.

2009년 등단, 작년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다수 문학상을 수상한 손보미가 5년 만에 낸 소설집이다. 6개의 단편은 우리의 시선을 각자의 내면으로 이끈다. 자신이 믿었던 세계에 금이 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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