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정당은 일사불란할 때 위기 온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2023. 3. 18.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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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사태’로 한창 떠들썩했던 지난여름,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전통적으로 청년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보수 정당에서 당대표, 최고위원, 대변인, 혁신위원 할 것 없이 30대 청년들이 줄줄이 나와 기성세대 정치인들과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모두 같은 편이었던 것도 아니다. 장예찬 당시 청년재단 이사장, 박민영 대통령실 행정관 등은 이준석 대표 측과 각을 세우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들 사이의 논쟁은 이슈에 이슈를 낳으며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김기현, 안철수, 황교안, 천하람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8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하공연 시간에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뉴스1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왜 더불어민주당엔 주류 세력에 반기를 드는 청년이 없냐”고 물었다. 보수 진영 인사들의 그와 같은 물음에선 여유나 긍지 같은 게 묻어났다. ‘우리는 이만큼 유능하고 소신 있는 청년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뿌듯함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당에도 그만큼 능력 있고 사명감 있는 청년은 많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소속된 정당 내 세력 균형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만 떼어놓고 보면 민주당은 결속력 등에서 국힘보다 끈끈한 모습을 보였다. 제대로 된 계파 갈등을 겪은 적도 없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멀게는 친이와 친박, 가깝게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과 이핵관(이준석 측 핵심 관계자)으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세력 간 대립과 경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비주류 세력이 늘 일정 규모 이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게 당내 청년들이 개혁을 말하고 기성세대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만일 그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제아무리 이준석이라도 고립무원에서 홀로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계파 갈등은 심화하면 민심이 돌아서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당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명박 정부 말기 강한 정권 교체 여론에도 박근혜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이미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막판에 다른 계파를 끌어안으며 2030세대 표를 흡수한 덕분이었다. 이번 전당대회도 다르지 않다. 안철수 의원은 23.37%를 득표하며 당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견제했고,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의 선전은 전당대회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을 환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이 가져온 다양성과 역동성이 55.1%라는, 역대 최고의 전당대회 투표율을 기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2030 남성들이 정부에 비판적으로 돌아선 건 사실이다. 윤심(尹心) 논란에 거부감을 갖는 보수층 유권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안철수, ‘천아용인’ 등 비주류 세력의 존재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 사실을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만 모르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전당대회 이후 첫 최고위원회의부터 “영구 추방” “훌리건” 같은 날 선 단어가 쏟아지고 낙선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에 특정 계파는 부를 필요 없다는 지질한 말이 나온다. 장담컨대 이들에 대한 지도부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국민의힘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비주류를 공격하고 내쫓으면 지난 몇 년간 보수 정당을 괴롭힌 계파 갈등이 소거될까? 아마 그럴 것이다. 하나의 대오로 똘똘 뭉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사불란한 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당은 유권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무균실이 되어버린 정당엔 즐거움도 낭만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반면교사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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