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잘하기 경쟁"도 헛말… 반일 의존증 야당, 고삐 놓친 여권

한기호 2023. 3. 1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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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이재명 "민생·잘하기 경쟁" 덕담도 잠시
차악경쟁 관성으로…韓日 외교중 수위넘은 野
집권기 결정엔 무책임, 국민 심판한 선동 반복
北도발-간첩단 대응 여전히 인색…노선쇄신을
'권력 도취' 與도 극단성·아마추어리즘만 부각
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1박2일 간의 일본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7일 경기 성남서울공항에 도착, 영접 나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둔 5월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관 앞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평화철도 111' 유세단 출정식을 가졌다. 당시 박주민·이재정·정청래 의원이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과 역장의 모습으로 분장해 있다. 평화철도 111은 은하철도 999를 각색해 문재인 정부의 남북·미북 정상 연쇄 대화 추진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취지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강력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잘하기 경쟁'해보자", "정치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쟁이 아니고 '국민 삶을 챙기는 경쟁'이 돼야 한다".

지난 15일 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당선 일주일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각자 꺼낸 이야기다. '민생'을 화두로 '잘하기 경쟁'을 하자는 데 집권여당과 제1야당 대표가 모처럼 뜻을 모은 듯했다. 하지만 '잘하기 경쟁' 구호의 수명은 짧았다. 여야는 '네가 최악이다' 손가락질에 기대는 '차악(次惡) 경쟁'의 관성을 이기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년 만의 한일정상회담차 16일 방일하기 전후 북한은 미사일을, 민주당은 말 폭탄을 쏟아냈다. 두 집단에게 '한국 대통령이 공적인가' 했다. 일제 징용 배상 '대위변제안' 공식화(지난 6일) 비판의 연장이지만, 민주당 공세 수위가 끝 모르게 높아졌다. 대통령을 '조선 총독'에 빗대려 "윤석열씨"라 부르고, 징용 배상 피고기업에 직접배상을 명령한 2018년 김능환 대법관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모순된다는 대통령 발언에 "탄핵"을 꺼냈다. 대통령과 외교장관 등 5명을 "계묘 5적"으로 싸잡았다. 한일 정상이 함께 먹은 "오므라이스 한그릇"에 "나라를 팔았다"거나 "조공", "쪽박", "(가해자에) 빵셔틀" 외교로 빗댔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나란히 서서 자위대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양국 국기에 목례했는데, 교묘히 태극기가 일장기 뒤에 가려진 중계화면을 악용한 탁현민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의 트집까지 잇따랐다.

일단 옆나라행(行)이라지만 대통령의 출국 외교가 진행 중일 때 제1야당이 '실시간 폄하'를 쏟아내는 건 정치권의 관행에 비춰보면 낯설다. 가까운 예인 문재인 전 대통령 집권기 중국 국빈방문(2017년 12월 13~16일) 때도 '대통령 수행기자단 폭행사건'을 제외하면 대통령의 '연속 혼밥' 홀대, '중국몽 동조' 발언, 중 측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철회 압박 논란 등을 국내 야당이 도마 위에 올리는 데엔 최소한의 시차가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2018년에만 세번 북한 김정은을 만나 '평화 프레임' 굳히기에 골몰하던 때도, 보수제1야당은 그 신호탄인 4·27 평양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어깃장 놓으려 하기보단 사후 점검·비판에 주력한 바 있다. 6·25 전쟁 가해자로서 사과는 일언반구도 없는 '민족 전범(戰犯)'과 어울리며 안보·대적관의 빗장을 풀어도, 당대 정권을 선택한 주권자 민심을 당장 거스를 순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반일(反日)정서란 '정치 아이템' 활용이 최우선인 듯하다.

그러나 1998년 한일 문화교류를 공식화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개인 청구권 자체는 살아있으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건 신의칙상 곤란하다"던 2005년 노무현 정부 민관공동위원회의 판단, 한일 기업·국민 기부금으로 만든 재단을 활용하자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1+1+α(알파)'안 제안 등 과거부터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게 "계승"한다는 말을 받아낸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할테면 한일 청구권 협정 파기나 국교 단절을 공약하든지, 실체적 대안 없이 '전범에 면죄부' 등 자극적 언사만 쏟아내는 건 무책임하다. 여전히 조선-일제 시대란 건지, 한국은 언제든 짓밟히고 팔려나갈 수 있는 약소국이란 건지 '선 넘는' 레토릭들도 거북하다. 국민 집단지성이 내린 판단, 혹은 판단 전의 주체성을 부정하면 역풍 맞을 수 있다. 2018년 판문점 회담 전 "위장평화회담" 송곳만 휘두르다가 당해 6월 지방선거에서 궤멸한 보수야당 사례도 있다. 전국선거마다 이민족과 전쟁인양 '한일전'을 갖다붙이고, 고위공직자가 '죽창가'를 외치고, '노 재팬' 파파라치가 유행한 데다, 반일선전에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횡령 혐의자 등이 앞장서온 사실이 드러난 뒤 1년 전 정권교체로 귀결된 바 있다. 중국·북한 앞에서만 작아지는 '주권 이중잣대'도 반발심리를 불렀을 것이다. 이 와중 문화·먹거리·여행 등 한일교류가 재정점에 이른 것 역시 국민들의 선택이다.

이와 동떨어진 야당의 반일감정 선동이 반복된다면, 윤석열 정부가 긋는 전선(戰線)만 뚜렷해질 듯하다. 속된 말로 '쉰 떡밥'에 의존해선 참신성이 없고 국민 납득과도 멀어질 것이다. 대북 저자세를 '평화'로 강변하는 노선을 놓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보야권에 지분이 있는 민주노총 등은 고질적인 반미친북(反美親北) 노선에, 혈세로 받은 지원금 회계 불투명 논란이 더해져 도덕성 타격을 입은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 5년 기간 묻혀 있던 방첩수사 결과물들도 표면화하면서, 노총 산하 세력이 간첩단 사건 등 연루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않다. 이들 문제엔 입을 다물다시피 한 게 민주당이다. 이 대표는 집회에서 징용 배상안을 비판한다면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대안현실' 수준의 주장을 꺼낸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정작 국가정상으로서 그 자위대의 공식의전을 받았다.

다만 현 여권도 엄연한(?) '차악 경쟁'의 한축으로 실점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이후 여론조사들에서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와 국민의힘 지지율은 일관되게 하락 중이다. 징용 배상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초기 평가는 '찬성 4 : 반대 5' 수준으로, 오히려 국정 긍·부정평가의 경우보다 격차가 적었다. 당대표 경선 1차 투표만에 윤심(尹心) 김기현 지도부가 선출된 뒤 컨벤션 효과가 잦아든 정도가 아니라 역행했다. 다른 주자가 뽑히면 정권이 전복될 것처럼 당 지지층을 사실상 겁박했으니, 대통령실 경선 개입의 결과로 보는 여론부터 7할에 육박했다. 경선 기간 정당민주주의를 힘의 논리가 대체했고, '윤핵관 라인'이 총선 공천 실무를 휘어잡는 주요당직 인선으로 이어졌다. '연판장'이든 '방일단'이든 각각이 헌법기관이란 국회의원들이 명분없는 집단행동으로 충성경쟁을 하고, 당대표는 대통령 내외에 '폴더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중앙정치 밖에서까지 윤심을 구애한답시고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로 시작해 "일본의 사과 참회를 요구하고 구걸하지 마라"는 글을 썼다가 홍역을 치렀다. 대통령과 절친이라는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도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의 2인자란 위치를 망각한 듯,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있나"라고 민심을 훈계하는 듯한 글을 썼다가 잡음만 키웠다. 반대 여론을 끌어올린다면 제3자 변제안 자체보다, 이들의 민망한 사후 대응의 몫이 더 클 것이다. 간첩단 사건 계기로 "종북노조의 하루" 홍보물을 올린 여당 SNS 운영에서마저 '브레이크 고장 난' 정치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외에도 방일·방미를 앞두고 정통 외무공무원 출신 대통령의전비서관이 돌연 사퇴해 김건희 여사 라인의 선임행정관이 대행하게 된 점, 고용노동부가 '주 12시간→월 52시간' 연장근로 총량제 개편안을 발표한 게 '주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으로 번지자 대통령 말 몇마디로 우왕좌왕한 모습까지. 대선 땐 문재인 정권을 "무식한 3류 바보들"이 운영했다며 민관합동위원회까지 공약하는 등 '전문가 중심' 국정을 약속했다가, 슬그머니 물리다 못해 역주행하니

아마추어리즘만 남는다. 대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틈만 나면 '대통령 뒷받침' 외치는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국가정보원·검찰에서 겨눈 야권 리스크에 얹혀가기 바쁘다. 최근 정치원로 유인태 민주당 전 의원은 "각자 잘하기 경쟁을 해야 하는데 상대를 망가뜨리고 악마화해서 거저먹으려 한다"고 여야 모두에 일침했다. 내년 총선에 유리한 고지는 관성을 먼저 깨는 쪽에 주어질 것으로 본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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