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싸우는 고용노동부
'주69시간제' 반발에 언론 탓한 여권과 같은 흐름
17개부처 설명반박자료는 평균 10.17개, 고용노동부는 68개
사실관계 다툼보다 기존 입장 반복하는데 초점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최근 쏟아지는 언론의 근로시간 개편안 보도가 '가짜뉴스'라는 여권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담당 부서인 고용노동부가 최근 1달 반동안 다른 부처보다 6배 이상의 보도 설명반박자료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언론보도가 “왜곡된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박했지만 대체로 사실관계를 다투기보단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는데 그쳤다. 지속적으로 언론 탓을 하며 소통 부재를 언급한 정부에 언론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이 고용노동부를 제외한 17개 부처의 설명반박자료를 종합한 결과, 16일 기준, 각 부처는 2월부터 약 1달 반동안 평균 10.17개의 설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같은 기간 68개의 설명반박자료를 냈고, 그중 반박자료는 13개에 달했다. 노동조합 회계장부, 근로시간 개편안 등 노동계와 첨예한 갈등을 빚은 이슈가 최근 반복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69시간제'로 불리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놓고 반발이 빗발치자 여권은 이를 언론의 '가짜뉴스' 탓으로 돌린 바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토론회에서 “노동자를 다 죽이는 것인양 가짜뉴스가 나오는데 왜곡되게 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노동부의 강경 대응도 같은 기조로 읽힌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 16일 통화에서 “따로 방침을 둔 것은 없다. 기사량이 많으니 (설명반박자료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사실관계가 완전히 다른 것은 반박자료를, 오해가 있을 수 있거나 설명이 필요한 것은 설명자료를 보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반박자료를 보면 많은 부분이 사실관계 정정보다는 기존 노동부 입장을 반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는 지난 6일 한겨레가 “현재 최대 52시간인 한 주 노동시간을 최대 80.5시간(주 7일 기준, 주6일 기준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방안이 담겼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특정 주에 연장근로를 더하면 다른 주는 할 수 없는 구조로, 특정 주 상한만 부각하는 것은 제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80.5시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닌 제도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통화에서 “주52시간제가 도입되기 이전에 노동부가 행정해석으로 일요일(주휴일)도 휴일수당을 주면 일을 시킬 수 있다 해서 한 주에 69시간 (근로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며 “그때의 노동부 기준으로 하면 특정 주 80.5시간이 될 수 있다. 없는 얘기가 아니고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WHO는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주 55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특정 주에 55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 소지가 있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40~50시간 넘는 근로시간이 신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특정 주에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일한 다음에 며칠씩 쉬고 하는 식의 개편이 좋은 것처럼 얘기하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내세운 '장기휴가'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노동부는 발끈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6일 <“유럽식 장기 휴가를 가라고요?”…직장인 분노만 키웠다> 기사에서 “직장인들은 현재 시행 중인 연차 제도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휴식권 보장이라며 내세운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봤다”며 “휴식권 보장과 관련한 입법 사안인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현실에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시행되더라도 연장, 야간, 휴일근로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고 휴가로 대체되는 꼼수로 변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이에 노동부는 당일 반박자료에서 “기업 필요에 따라 꼼수로 악용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저축휴가로 사용하지 않고 남은 적립 시간은 다시 임금으로 지급하여야 하므로 이를 위반하면 임금체불에 해당하며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경우 근로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사건 제기, 감독 청원 등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노동부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근로자에게 연장근로의 대가를 임금과 휴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연차 사용률은 높아지고 있고, 2021년 기준 전체 기업의 40.9%가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사용률 100%)하고 있어 근로시간저축계좌제 활용 유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40.9%라는 연차 소진율(사용률 100%)은 직장인들이 규정만큼 휴가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경향신문은 지난 7일 사설에서 “노동자들이 연차휴가를 다 쓰는 기업이 40.9%(2021년 기준)에 그치는 게 현실”이라며 “연차휴가도 다 못 쓰는 마당에 언제 저축휴가를 쓴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더군다나 연장노동과 휴식은 노사합의를 통해 설정되기 때문에 노조 없는 사업장은 사측과 제대로 협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은 지난 8일 성명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14.2%에 불과한 한국 현실에서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망상”이라고 비판했다.
'주69시간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주장은 어떨까. 정부는 지속적으로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흐름을 같이하는 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부 역시 13일 반박자료에서 “경직적인 1주 단위 주52시간제로는 디지털 시대에서 일하는 환경,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주요국들도 각 나라의 경영상황이나 노동시장 환경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로시간 제도를 운영하는 가운데 근로시간을 단축해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도 특정 기간 동안 1주 평균 근로시간 또는 연장근로 총량을 한도로 초과근무 사용 시기를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OECD 근로시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한국의 노동문화를 빼고 유연화만을 강조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노동문화 자체가 차이 나기 때문에 외신도 정부 개편안을 다룰 때 근로시간 유연화보다는 한국의 '과로사회'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연간 실제 노동시간은 1915시간, 독일은 1349시간, OECD 평균은 1716시간이다.
[관련 기사 : 정부 입장 '복붙' 주4일 가능하다는 내신과 '일중독 사회'라는 외신]
권 변호사는 “자꾸 독일의 모델을 애기하는데, 개편안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려면 노동시간 자체가 독일 정도로 줄어야 한다. 외국은 노동시간이 사회적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유연하게 조정한 것이다. 환경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글로벌을 이야기하나”라고 말했다. 노무사모임은 “노동시간이 여전히 2000시간에 가까운 한국 정부가 쓰기에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표현”이라며 “노동 개혁을 외치며 노동법을 어기는 기업에는 눈감고 노조 공격에 혈안인 정부가 쓸 말은 더욱 아니다”라고 했다.
[관련 기사 : “주60시간 이상 무리”로 바뀐 대통령실, 본질은 외면]
최근까지도 여론 반발을 언론 탓으로 돌리던 정부는 지난 16일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5일 오후까지도 대통령실 관계자가 '69시간이라는 숫자', 나아가 '언론의 주당 69시간이라는 계산'이 문제라고 주장했지만 지난 16일 '대통령은 주 60시간은 무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대통령실 입장이 나와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론들은 '주60시간 이하' 등 지금보다 완화된 개정안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는 16일 사설 <69시간제 재검토... MZ만 아닌 노동계 의견 수렴해야>에서 “잘못된 오해가 있다.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하겠다”고 한 노동부를 지적하며 “소통 부족이나 MZ만의 문제가 아니다.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정부안은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노동계 반발이 많았는데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부 책임이 크다. 노조를 배제하고 MZ세대만 끌어들여 노동개혁을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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