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토록 낭패하고 비정하여…[책과 삶]
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396쪽 | 1만6500원
작가 손보미는 초등학교 때 불조심에 관한 글을 써서 학교 대표로 상을 받았다. 부상은 소화기였다. 담임은 “다른 아이의 글을 보냈더라도 그 정도 상은 받았을 것”이라며 소화기를 학교에 기증하라고 권했다. 손보미는 “내게 주어진 것이 다른 누군가의 변덕스러운 선택에 의해 가능했다는 낭패감과 그러므로 내가 받은 무언가를 마땅히 내줘야 한다는 세상의 비정한 이치”를 느꼈다고 한다.
<사랑의 꿈>은 근 몇 년 사이 국내 굵직한 문학상을 잇달아 가져간 손보미가 5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이다. 위에서 언급한 ‘낭패감’과 ‘비정함’에 기반해 쓰여진 6편의 단편들은 모두 10대 여자아이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10대 여자아이의 감정을 느낀 적 없는 중년 남성 독자에게도 이 책은 격렬하고 세심하면서 미묘한 정서의 모험을 제공한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불장난’은 몇 달 전 이혼한 ‘나’가 유년 시절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초등학생인 주인공은 아버지의 이혼과 재혼, 어머니의 해외 이주, 새어머니와의 동거라는 큰 사건들을 통과한다. 아이는 평소 친하던 친구 무리와 멀어지고, ‘중학생 오빠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는 양우정 무리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아이의 행동은 부모나 교사에겐 가정사 혹은 사춘기로 인한 방황 정도로 간략히 요약되겠지만, 아이는 이 시절에 “터무니없이 치명적이고 통렬하면서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세계의 비밀을 들춘다. 다양한 시점에서 여러 사건들이 전개된다. 파편화된 기억을 그러모은 듯하면서도, 그 이음새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평론가 강지희는 “한국 문학사가 보여준 성장의 순간들을 다시 썼다”며 “우리 시대 가장 섬세하게 세공된 단편 미학의 경이로운 성취”라고 상찬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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