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성 성격 장애’ 공격에 서로의 ‘파수꾼’이 되어 단호히 맞서라[안주연의 래빗홀]

기자 2023. 3. 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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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일 때
우도 라우흐플라이슈 지음·장혜경 옮김
심심 | 320쪽 | 1만8000원

“가해자가 피해자를 2차 가해까지 한 학교폭력 사건 보도를 보고 옛일이 되살아나 악몽을 꾸었어요.”

“타인은 도구로 생각하는 사이비 교주의 범죄에 화가 나고 무력감도 느낍니다.”

가정폭력과 학대를 그린 드라마, 현장에서 열심히 지도한 교사들이 부당하게 아동학대로 처벌된 사례를 보도한 시사 프로그램이 화제에 오르고, 사람들은 이와 관련된 기억과 감정을 나누고 있어요. 특별대우를 요구하고, 원칙과 한계를 넘는 행동을 하며, 상대를 조종하려 하는 행태에 대한 사람들의 고통이 임계점 가까이 도달한 느낌입니다. 어떤 행동양식이나 사회현상을 심리학으로만 설명하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경계침범 행동들이 나르시시즘, 왜곡된 자기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 3월에 꼭 필요하다고 느껴 용기를 내봅니다.

이러한 특권의식과 착취적 행태를 정신의학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는 진단으로 설명하는데요,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일 때>라는 책에 수록된 진단기준을 살펴보면 몇 가지가 눈에 띕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바탕으로 특별대우를 받고 사람들이 자신의 기대를 늘 충족시켜주기를 바랍니다. 본인의 문제 또한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기관만이 이해할 수 있고 관련해야 한다 믿으며, 오만한 태도로 숭배와 복종을 요구합니다.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 결여되어 있어 관계에서 착취적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른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이 책은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근본적 원인이나 심리를 고찰하기보다는, 나르시시스트의 다양한 행동양상을 보여주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 해석법과 마음가짐을 다룹니다. 챕터 맨 끝마다 대처와 자기보호 원칙을 간결하게 정리한 페이지들은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명료하고 단단한 지지가 될 것입니다.

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롤프 젤린 지음·박병화 옮김
걷는나무 | 244쪽 | 1만5000원

두번째 책 <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에서는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이를 들어주지 않을 때 과도하게 분노하는 한계침입자들의 패턴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거절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암시함으로써 담당자에게 죄책감을 유발하여 상황을 뜻대로 조종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이 책은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당신보다 내가 더 중요합니다’라는 담담한 마음으로 관계에서 소통하기를 권하면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한계 설정의 방법들을 제안합니다.

나르시시스트의 무리한 요구에 자주 노출되는 것은 영혼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들의 집요한 행위는 피해자로 하여금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의심케 하고, 나중에는 그를 이해해준 자신을 탓하게 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이 정서적 배려, 타협과 조율, 인내와 희생을 자기 몫까지 상대에게 떠넘겼기 때문이지요. 이런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은 번아웃과 우울을 경험할 수 있고, 인간 전반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공공자원 독과점을 계속 허용하다 보면, 일하던 이들의 의욕이 손상되어 공동체 전체의 손실이 됩니다.

두 책은 우리가 착취적인 경계침범 행동의 직접 피해자가 될 때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거절하는 경험은 꼭 필요하며, 각자의 욕구와 경계를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바탕이 됩니다. 제가 여기에 꼭 더하고 싶은 것은, 경계침범에 맞선 사람의 “단호하게 말할 권리” “자신의 경계를 지킬 자유”를 뒷받침하는 주변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라도 무리한 경계침범을 혼자 저지하기는 힘이 듭니다. 이때 주변 제3자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요구자가 선을 넘었음을 말하고, 그로 인해 전체의 이득도 위협받음을 지적하며, 외롭게 응대하는 담당자가 원칙과 소신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사격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약육강식의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총알이 나에게 날아오면 골치 아프니까, 저런 사람은 빨리 기분을 맞춰주고 보내는 것이 나으니까, 하며 도를 넘는 침범을 용인해주다 보면 공동체는 망가지고 맙니다.

인간은 약하고 다친 사람을 치료하며 문명을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공공장소에서, 힘이 약하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의 ‘단호함의 파수꾼’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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