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해자에 ‘면죄부’ 준 윤 대통령, 외교참사 어찌 책임질 텐가
윤석열 대통령이 1박2일 일본 방문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통해 한국이 얻은 것은 별로 없고 잃은 것은 너무 많다. 윤 대통령은 일본의 식민지배 당시 불법적 강제동원에 면죄부를 주면서도 성의 있는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양국이 성과라고 발표한 조치들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 배상과 관련해 ‘일본 전범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현 단계에서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일본은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를 약속하지도, 피해자들에게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에서 윤 대통령 결정을 두고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57%가 한국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비율의 한국인들이 이 해법을 두고 “굴욕적”이라며 분노하는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숙이고 들어온 윤 대통령을 향해 더 많은 걸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기하라 세이지 일본 관방 부장관은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2015년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고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가 유효한 합의이며 존중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의는 많은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아 무력화됐는데, 정부가 일본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일본은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도 꺼냈다. 기하라 부장관은 “총리는 회담에서 한·일 간 현안에 대해 잘 대처해 나가자는 취지로 말했다.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 문제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독도 문제가 논의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과 기하라 부장관 중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두 정상은 일본이 반도체 핵심 품목 수출규제를 철회하는 대가로 한국이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을 수출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 복귀시킨 것은 아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화이트리스트 원상복귀는) 한국 측 대응에 달렸다”고 했다. 일본은 한국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규제 완화, 2018년 일본 초계기 근접비행에 한국군이 레이더를 조준한 사건에 대한 사과까지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양보하면 일본이 호의를 베풀 거라고 기대했는지 모른다.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외면한 결과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과거사 족쇄’를 풀어주는 외교참사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이 빚어낸 가장 뼈아픈 결과는 국내 여론의 분열이다. 국론 분열은 윤 대통령이 중시한다고 밝혀온, 안보위기에 대응하는 힘도 약화시킬 것이다. 그 책임은 강제동원 문제를 피해자와 야당, 다수 시민에게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채 ‘백기투항’식으로 마무리지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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