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과 ‘매국’ 사이, 日에 달린 尹대통령 미래
여론은 악화…尹대통령‧국민의힘 지지율 동시 하락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우리 미래세대를 위한 결단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일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일 정상회담을 둔 정치권의 평가는 양극단으로 갈린다. 여권에선 '구국(救國)의 결단'이란 극찬이 나온다. 반면 야권에선 '매국(賣國) 행위'라는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진다. 여야의 첨예한 대치에도 대통령실의 반응은 사뭇 담담하다. '한‧일 관계 개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향후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에 윤석열 정부 '명운'이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제3자 변제를 고리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이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부여당 행보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안부, 독도 문제 등을 두고 양국이 충돌할 경우 윤 대통령의 입지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예고된 尹대통령의 '대일외교 급선회'
한‧일 관계는 정권을 막론한 난제였다. 양국 정상의 의지와는 별개였다.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3자의 '결단'으로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기 어려웠다. '반일감정'의 뿌리도 깊었다. 이에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2년 정권 말엔 헬기로 독도를 전격 방문하기도 했다.
여기에 '외교의 영역'으로만 제한됐던 한‧일 문제가 '사법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도 변수가 됐다. 2018년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일 문제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난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른바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일괄 타결)을 통해 한‧일 갈등을 빠르게 풀어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측근들에게 한‧일 문제를 정부의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고 한다. 최근 정부가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제3자 변제'를 밀어붙인 배경에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윤 대통령의 강한 주문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야권이 이걸(강제징용 제3자 변제) 물고 늘어지면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단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윤 대통령의 생각이 워낙 완고했다. 한‧일 문제는 누군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자 대선 출마 이유"라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에 '집착'하는 배경에 '국제 정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중국-북한' 동맹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미‧일 삼각공조가 필수인데, 공조의 핵심 축인 미국이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 탓에 일각의 '친일 외교 논란'에도 윤석열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을 빠르게 추진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북한 대응에 미국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미·일 동맹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공조가 필요했을 것이고,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신안보질서' 구상을 (정부가) 계속 외면하기도 불편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악화된) '제3자 변제' 여론은 4월26일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5월에 있을 예정인 일본 히로시마 G7 한·미·일 정상회의까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日 태도 변화 없을 시 '역풍' 우려도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재계가 반색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면서다. 일본은 16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의 수출 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일본 측의 3개 품목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이들 3개 품목은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중요한 소재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한‧일 공조의 주춧돌'로 자평했다. 다만 야권을 중심으론 '외교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본이 '무역 보복' 조치를 완전히 풀지 않았고 독도, 위안부 등 한‧일 갈등의 뇌관도 여전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과 관련해 기시다 총리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거론된다.
실제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의 열쇠는 여전히 일본 정부가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1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초청국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 중이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같은 날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 원상회복과 관련해 "(한국의) 자세를 신중하게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또 전날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을 대상으로 수출규제를 해제하기로 한 데 대해선 완전히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도 덧붙였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한국 측 체제에 개선이 인정된 점을 고려해 운용을 재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위안부·독도 문제와 관련해 양국 간 미묘한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회담에서 윤 대통령에게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독도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이 부인했지만, 관련 사안이 향후 한‧일 관계의 뇌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도 일본 측 입장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대일외교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할 경우 차기 총선에서 '역풍'이 불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제 대일 외교 반향으로 윤 대통령 지지율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7일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3%, 부정평가는 60%로 각각 집계됐다. 직전 조사(3월8~9일)보다 긍정평가는 1%포인트(p) 떨어졌고, 부정평가는 2%p 올랐다.
정당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이 34%로 직전 조사보다 4%p 떨어졌고, 더불어민주당은 33%로 1%p 상승했다. 한국갤럽은 "정부는 지난 3월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과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부정 평가 이유에서는 노동 문제보다 일본·외교 지적 사례가 훨씬 많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무선(95%)·유선(5%)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9.0%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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