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디지털 그물'에 갇힌 지구···인류도 환경도 멍든다

한순천 기자 2023. 3. 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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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많은 회사들이 '페이퍼리스' 정책을 펼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이메일이나 소셜미디어 활용 등 디지털 활동의 물질적 영향력과 그것이 초래하는 생태학적·지정학적 위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수준이라고 폭로한다.

다국적기업의 데이터 센터나 케이블 허브 등을 유치해 디지털 권력의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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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서울경제]

'친환경' 명목 디지털 앞세우지만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전력 소모

해저케이블망 패권 다툼도 치열

데이터센터 마비땐 사회 올스톱

미래 밝힐 기술 활용 길 고민해야

한동안 많은 회사들이 ‘페이퍼리스’ 정책을 펼친 적이 있었다. 종이 서류 대신 전자 서류를 사용하고, 우편 발송 대신 메시지를 발송하거나,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본다거나 하는 것 들이다. 실제로 많은 서류작업들이 전자업무로 대체됐고, 공과금을 비롯해 많은 알림들이 카카오톡으로 날아온다.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환경보호’라는 지구를 위한 대의가 깔려 있다.

신간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의 저자 기욤 피트롱은 페이퍼리스가 친환경적이라는 우리의 착각을 깨버린다. 저자는 이메일이나 소셜미디어 활용 등 디지털 활동의 물질적 영향력과 그것이 초래하는 생태학적·지정학적 위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수준이라고 폭로한다.

해저케이블들이 설치를 위해 선적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LS전선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 버튼 하나를 누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로 여겨지는 거대한 하부구조를 작동시켜야 한다. 좋아요 한 번을 위해서 콘크리트와 광섬유, 강철로 이루어진 해저 케이블과 데이터센터, 수력발전소, 화력발전소 등 엄청난 인프라가 동작한다.

저자는 “디지털 산업에 녹색·지속 가능·친환경과 같은 어휘들이 동원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일례로 거대 클라우드 회사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필요로 하는 총 전기량의 30%는 석탄에서 나온다. 넷플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15%를 차지하는 거대한 플랫폼인데, 이들을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어도비·오라클·링크드인 등 많은 회사들이 사용하는 도구들 역시 20% 이상의 전력을 석탄 발전을 통해 얻는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춘천'의 서버실. 사진 제공=네이버

이 엄청난 데이터 양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의 냉방이 필수다.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온도는 60℃까지도 올라가는데, 이를 20~27℃ 사이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요된다.

모두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 줄 알았던 디지털은 어느새 에너지 권력 다툼을 넘어서 국가 간 분쟁 대상으로까지 진화했다. 인터넷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 세계를 연결시켜준다. 그런데 국가들은 이 해저 케이블이 지나가는 곳에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기를 원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가 기존에 깔았던 해저 케이블은 데이터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새로운 케이블을 설치하거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기서 케이블의 중심이 되기 위한 권력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과 중국의 경쟁국들이 이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 정책을 통해 새로운 지정학적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다국적기업의 데이터 센터나 케이블 허브 등을 유치해 디지털 권력의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화재가 발생한 SK C&C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이러한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은 지난해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를 통해 우리 모두 여실히 느낀 바 있다. 카카오 서비스의 대다수가 먹통이 된 것은 단 몇 시간에 불과했지만, 우리 사회는 말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으로, 디지털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디지털의 계몽시대를 구현하는 길들이 너무 많으면서 모순적이다”라며 “우리가 걷게 될 미래의 길은 광범위한 해결책들의 혼합이 될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면서 인류에게 “디지털은 인류가 만든 도구에 불과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수도, 혹은 빛나게 만들 수도 있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무한한 디지털 권력의 사용법을 고민해 볼 때다. 1만 8500원.

한순천 기자 soon100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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