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배움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2023. 3. 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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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단 지성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네트워크 시대의 산물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리더가 홀로 해결하거나 결단해서 결정하기보다, 서로 연결된 개인이 공개적으로 함께 따지고 오류를 수정하며 힘을 합쳐 해결하거나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일을 뜻한다. 위키피디아, 과학 연구,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등은 그 좋은 사례다.

그러나 집단 지성이 늘 작동하는 건 아니다. 집단 지성은 군중 사고에 쉽게 유혹된다. 지성의 이름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패거리 짓고, 목소리 높여 윽박지르는 식으로 다른 생각을 품은 이들을 위협하고 침묵시키는 행태를 드러내곤 한다. 홍위병들이 그랬다. 지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자유로운 소통을 활성화하며, 개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는 마음 없이 집단 지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카를 포퍼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포레스트북스 펴냄)에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일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일을 더욱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없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포퍼는 이런 사람을 합리주의자라 부른다. 합리주의자는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과 이를 신중히 살피고 따져보는 비판적 지성을 함께 갖춘 성숙한 사람이다.

배움은 집단적·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지적 독립성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끝없이 성찰하고 확인하는 자주적 태도에서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배움은 자칫 추종으로 변한다. 동시에 배움은 자신이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오직 타인들 덕분임을 인정하는 일에서 비롯한다. 인간은 남의 비판을 통해서만 잘못을 바로잡고, 더 나은 인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의견 주고받기'는 비판적 논의의 바탕을 이루며, 모든 인간적 가치 중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다. 이를 부정할 때 인간은 좀처럼 배우지 못한 채 독단에 떨어진다.

누구도 진실을 온전히 알지 못함을 인정하고, 실수와 잘못에서 배우려는 마음은 집단 지성이 군중 사고로 타락하는 일을 방지한다. 지성은 쏟아지는 온갖 정보에 대한 즉각적 추종이나 지지하는 지도자에 대한 무분별한 동의와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배움이 제대로 작동하는 세계에선 함부로 타인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키지 않는다. 그보다 사람들을 지적으로 자극하고 정신적으로 해방함으로써 자유롭게 의견이 형성되고 표출되도록 돕는다. 굴욕적인 굴복의 강요가 아니라 다양성과 복수성에 대한 인정, 더 나은 진실에 이르려는 무한한 노력 없이 우리는 제대로 배울 수 없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집단 지성을 작동시킬 수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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