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의 문화 이면] 턱걸이 예찬

2023. 3. 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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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턱걸이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같이하는 박 교수님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군대 시절 턱걸이를 한 번에 27회 했다. 당시 부대원 중 최고 기록이었다고. 김포에 있는 부대에서 한강을 헤엄쳐 건너와 파주 출판단지 옆 심학산 중턱의 초소까지 뛰어서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다. 아무튼 그는 환갑의 나이임에도 일자로 뻗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며 요즘도 15회의 턱걸이를 한다.

박 교수님의 턱걸이는 하나의 예술 작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고로 턱걸이란 근력운동에서도 중력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종목이다. 지구와 맞짱 뜨는 운동이랄까.

팔 굽혀 펴기 100개를 하는 사람도 턱걸이는 20개가 고작이다. 나의 턱걸이 실력은 형편없다. 학창 시절 체력장 볼 때를 끝으로 턱걸이를 해본 적이 없다. 지난해 5월 수십 년 만에 턱걸이를 시도해 보았다. 철봉을 잡고 팔을 당겨보려는 찰나 땅에 착륙해버린 나는 재빨리 턱걸이 불능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교수님이 나타나 턱걸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 우아한 자세란. 철봉에 매달려 몸을 끌어올리는 동작에서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턱걸이를 어설프게 하면 올릴 때 몸이 뒤로 빠진다. 꼬리뼈를 낭심 쪽으로 당겨 엉덩이를 넣고, 요추 전만 자세로 허리를 활처럼 휘게 해서 단단히 긴장시켜야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한 개 해보려고 몸을 좌우로 비틀고 개구리 뒷다리 차기를 하는 나는 사실 턱걸이가 아니라 발악을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속도가 일정했다. 처음에 빠르게 하다가 점점 느려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올라가고 천천히 내려왔다. 마치 청색 비단 천을 철봉에 감아 스르륵 당기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근육의 움직임이다. 턱걸이는 팔로 하는 게 아니라 등으로 하는 운동이라는 말이 있다. 턱걸이 고수들은 등 근육이 발달돼 있다. 흉곽이 다른 사람들보다 넓고 어깨 밑 견갑골 주변의 근육들이 수축하면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열 달이 지난 지금 나의 턱걸이 개수는 0개에서 7개로 늘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매일 아침 꾸준히 해온 결과다. 온몸의 지방층이 근육층으로 바뀌면서 몸무게가 오히려 늘어나는 바람에 두 자릿수는 아직 요원하다.

오늘 아침 8개에 도전하다가 실패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평소 10개를 하던 박 교수님이 15개로 도망가버렸다. 아주 고약하다. 쫓아가려고 하니 간격을 벌려놓고 약을 올린다. 올여름엔 다이어트를 해서 따라잡고야 말겠다.

턱걸이의 매력은 뭘까. 코어 근육을 늘려 건강에 좋은 것은 당연한 거고, 그 외에 매력으로 꼽자면 빈틈없이 꽉 찬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철봉에 매달리면 양팔이 낭가파르바트 북벽처럼 빳빳하게 곧추선다. 등의 근육들이 울룩불룩해지면서 발끝을 넣어 디딜 수 있다. 그 모든 근육의 길을 빠지지 않고 꼼꼼히 걸어야 한다. 그래야 산을 오를 수 있다. 견갑골 아래의 공간은 황새의 날개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평원에 호흡을 모은다. 내 한 몸의 중량을 그 안에 잘 담아서 새어 나가지 않게 막고 몸을 땅에서 뽑아낸다. 쑥 하고 뽑히면서 상승한다.

하지만 턱걸이의 도약은 뱀이 땅을 밀고 가듯 밀착하여 포복한다. 밀도가 높다. 주마간산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인생으로 치면 산전수전을 다 겪고 어떤 자리에 올라선 느낌이다. 전신운동이라서 몸속으로도 기가 낮은 포복으로 흘러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봉 위로 고개를 뽑아낸다. 내려올 때도 확 내려와서는 안 된다. 몸의 힘을 빼고 아래로 축 처지면 다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힘을 주고 버텨야 한다. 상승과 하강에 모두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조금의 방만함도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는 '뭔가를 간신히 해낸다' '어떤 기준에 겨우 미친다'는 의미로도 턱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꼴찌의 비유로도 쓰인다. 하지만 운동에서의 턱걸이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턱걸이는 시쳇말로 고인 물의 세계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아름답다. 고수 중의 고수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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