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직 잘 알지 못하는 그곳, 양양

박찬은 2023. 3. 17. 14: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레는 양양의 봄
양양은 송이의 고장이자 천년 고찰 낙산사, 오색약수와 하조대가 있는 고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매력적인 여행지지만, ‘대한민국 서핑의 성지’가 된 지금은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서브컬처의 중심지가 되었다. 가볼 만한 곳도 많아졌다. 따사로운 봄볕이 반가운 이때,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양양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양양은 사계절 구분 없이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 몰려 들고, 매력적인 핫플들이 생겨나면서 그야말로 핫한 여행지로 변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핫플만 찾아 다니는 여행이 양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관광지라 모두 고리타분한 게 아니고, 핫플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양양의 진면목, 이른바 ‘찐’ 매력 충만한 양양의 봄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남대천, 연어 떠나는 길에 벚꽃이 피다

양양이 으뜸으로 치는 양양의 제1경은 어디일까? 아마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훨씬 유명했을 양양의 첫 번째 자랑거리, ‘양양 1경’은 ‘남대천’이다. 매년 가을, 먼 바다로 떠났던 연어가 돌아온다는 바로 그곳이다. 설악산 대청봉이 ‘양양 2경’에 이름을 올렸으니 그보다 더한 자랑거리이다. ‘연어들의 고향’ 남대천은 총 길이 54km로 오대산 두로봉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간다. 양양군 현북면과 서면을 두루 거치며 그 사이 법수치, 용소골, 송천, 내현, 서림 등 물 좋은 계곡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남대천은 예로부터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정취로 유명했다. 백로, 고니와 산천어, 금강모치 등 다양한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로 알려진 곳이다.

연어는 남대천의 시그니처. 그래서 연어의 고향으로 불린다.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해협을 거쳐 북태평양에서 2~3년을 살다 다시 남대천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산란을 위해 무려 지구 반 바퀴 1만6000㎞를 헤엄쳐 돌아오는 것이다. 남대천이 연어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것은 회귀하는 연어의 70% 정도가 이곳으로 오기 때문이다. 매년 가을이면 약 10만 마리 정도가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시기에 맞춰 양양연어축제도 펼쳐진다. 다만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거의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로 먹는 노르웨이 등 수입산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대신 연어의 조직재생물질이 사람의 DNA와 유사한 특성이 있어 화장품이나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국산 연어는 식용보다는 가공품 생산을 위해 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양양에서는 남대천 입구에 있는 내수면생명자원센터에서 가을에 돌아오는 연어들의 알을 채취해 인공부화시킨 후, 이듬해 봄에 어린 연어를 방류한다. 이 과정을 지속하는 이유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연어를 공공 해역에서 잡을 수 없도록 한 국제협약 때문이다. 오로지 자국의 수역에서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연어가 돌아오지 못하면 새로 태어날 개체도 없어지는 것이다. 양양군이 매년 봄, 인공 부화한 어린 연어를 방류하는 이유다. 남대천을 찾아간 날은 마침 ‘아기연어 보내기 체험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새롭게 정비된 남대천 샛강에 연어 치어를 방류하는 이 행사에는 1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어를 떠나보내며 “잘 다녀와, 연어야”라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사랑스럽다.

봄날의 남대천은 벚꽃으로 유명하다. 오래된 벚꽃나무가 있는 현산공원, 산벚꽃으로 유명한 오색천과 함께 3대 벚꽃 명소가 바로 남대천이다. 남대천 하구, 양양대교에서 낙산대교까지 이어지는 제방도로에서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함께 설악산, 동해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어 벚꽃 인증샷 명소로 꼽힌다. 3월말에서 4월초쯤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벚꽃 터널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대천 여행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알고 보면 사계절 내내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 바로 남대천이다. 천변에 조성된 수변공원은 빼어난 경관과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양양의 숨은 여행 명소다.
(위로부터)생태관찰로, 연어생태공원, 지난해 남대천 제방길을 따라 만개한 벚꽃

특히 낙산대교 가까이까지 펼쳐진 생태관찰로는 산책과 함께 인증샷 명소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하늘거리는 물억새와 갈대 군락 사이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 관찰로 곳곳 전망대에서는 설악산과 동해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남대천의 풍광도 감상 가능하다. 생태관찰로 인근의 연어생태공원도 함께 둘러볼 만하고 그 안에 있는 수상레포츠센터에서 러블리 보트, 파티 보트 같은 전동 보트나 전통 조각배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2층 카페 둔치에 오르면 멋진 풍경의 생태관찰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 어느 곳을 돌아봐도 그저 황홀한 풍경뿐이다. 이 멋진 그림 속으로 눈부시게 흰 벚꽃 터널이 펼쳐진다면 과연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남대천의 봄이다.

헤밍웨이길, 지금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

양양의 동쪽은 길게 동해와 맞닿아 있고 남쪽의 지경리부터 북쪽 물치리까지 약 44km의 해안선을 따라 한적한 바닷길이 이어진다. 길은 아주 잠깐씩 가뭇없지만 망망한 바다는 늘 곁에 있다. 길이 바다와 나란히 가니 그만큼 낭만적이고 또 운치 있다. 동해안 전체를 보아도 이같이 아름다운 바닷길이 시종일관 이어지는 곳은 양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양양의 바닷길 가운데 제대로 물이 오른 길이 있다. 양양에 가거든 꼭 걸어봐야 할 바닷길, 바로 ‘헤밍웨이길’이다. ‘몽돌소리길’ 또는 ‘해파랑길 44코스’라 불리는 이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짙고 푸른 바다와 어깨를 맞대고 걷는다. 나와 바다 사이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길이다.

분명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이 이름은 제법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0년 전, 이 길의 한 쪽 끝 지점인 강현면사무소 옆에 ‘마놀린’이란 작은 카페가 있었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바로 그 ‘마놀린’이다. 먼 바다에 나간 노인 산티아고를 위해 커피를 준비했던 마놀린처럼 애정과 배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손님을 맞이하겠다는 다짐을 이름에 담았다. 서울에서 내려와 터를 잡은 카페 주인 부부는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주로 카페 앞 바닷길을 걸어 후진항까지 산책을 했고, 길 쉼터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단골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어느 날, 길이 끝나는 지점에 ‘헤밍웨이레스토랑’이 있다는 걸 발견한 그들은 ‘이건 필시 하늘의 뜻이야!’ 하며 마놀린과 헤밍웨이 사이의 길을 ‘헤밍웨이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을 좋아하는 여행자들도 점점 늘어났다.

세월이 흐른 뒤 카페 ‘마놀린’은 ‘양양그곳 카페이룸’으로 바뀌었지만 ‘헤밍웨이길’은 점점 더 매력적인 도보여행길로 변해갔다. 커피와 디저트 마니아들 사이에 ‘핫플’이 된 ‘양양그곳 카페이룸’ 때문이기도 했다. 10년 전 카페 마놀린을 만들었던 젊은 부부와 똑같이 닮은 지금의 주인 부부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헤밍웨이길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다. 그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를 테마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헤밍웨이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알리는 일에 열심이고, 그들 스스로 헤밍웨이길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그 길을 걷는다.

헤밍웨이길은 한적한 바닷가 길이지만 특별한 점이 많다. 길을 걷는 내내 가슴이 탁 트일 만큼 거침없는 바다가 펼쳐지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압도적이다. 시작점부터 끝까지 편안한 데크 길이어서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또 전체 길이 2.3㎞, 30분 정도로 부담 없는 산책길이다. 헤밍웨이길은 후진항 쪽 몽돌소리길 전망대에서 양양그곳 카페이룸이 있는 강현면사무소 앞까지만, 양 끝에 있는 설악해수욕장부터 물치항까지를 포함해도 상관없다. 그 거리까지 합해도 3.7㎞, 1시간이면 여유롭다. 길의 중간에는 정암해수욕장이 있고, 그 옆에 『노인과 바다』를 테마로 한 헤밍웨이파크가 있다. ‘산티아고’와 ‘마놀린’ 이름을 단 배 두 척과 원목 그네, 해먹 등으로 꾸며놓은 이곳은 소설 속으로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정암해변이 헤밍웨이파크로 인해 부러 그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또 인증샷 명소이고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헤밍웨이길의 또 하나의 매력은 걷는 즐거움이 있는 길이란 점이다. 길의 한쪽이 7번국도라 차 소리로 시끄러울 듯하지만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와 몽돌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그걸 알아채기 쉽지 않다. 길 곳곳 소라 모양의 벤치에 앉아 자그락거리는 몽돌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롭다. 바다 전망대도 최고의 ‘뷰 맛집’이다. 전망대에 올라 ‘하트바위’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카페 ‘양양그곳 카페이룸’안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와 소나무 풍경은 기막힌 절경. 카페 건너편 바닷가 나무그네에 앉으면 더 이상의 쉼이 있을 수 없다. 헤밍웨이길 주변에는 호텔과 펜션, 식당과 카페, 애견펜션도 있고 차박과 일출 명소도 그곳에 있다.

양양여행의 스테디셀러, 양양 오일장 그리고 비치마켓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닌 양양 오일장. 5일에 한 번씩, 양양 오일장은 끝자리 4, 9일에 열린다. 과거 영동북부 최대 규모라는 명성은 빛이 바랬지만 정선 오일장과 함께 가장 활성화된 장이기도 하다. 양양전통시장과 함께 양양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변함없이 애정하는 곳으로 물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무엇보다 사람이 많아 장터답다. 송이, 약초, 해산물 등 특산물과 먹거리, 넉넉한 인심까지 날것 그대로의 양양을 느낄 수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짜에 맞추기 어렵다면 아무 날이건 그냥 전통시장을 찾아도 된다. 떠들썩한 오일장의 분위기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제대로 구색을 갖춘 시골 시장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유명한 감자옹심이와 장칼국수 한 그릇 맛보는 건 기본, 웨이팅이 지루해도 맛은 최고다.

날짜를 맞춰야 만날 수 있지만 양양에는 또 다른 특별한 시장이 있다. 낙산 인근 후진항에서 열리는 양양비치마켓이다. 작은 항구지만 한 달에 두 번, 주말마다 열리는 비치마켓 덕분에 입소문이 났다. 이곳에 가면 예술가들의 솜씨가 빛나는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 펼쳐지는 아트 마켓에 양양 사람들도, 우연히 들른 여행자들도 모두 놀라고 또 만족하는 곳이다. 시작은 다소 생경했지만, 신선했던 바닷가 장터의 매력에 푹 빠진 여행자들과 셀러들의 참여가 늘면서 마켓은 풍성해지고 있다.

요즘은 마켓이 열리는 날짜에 맞춰 부러 찾는 명소가 되었다. 양양비치마켓은 지난 3월초 ‘어린연어 보내기 축제’가 펼쳐진 남대천에서 ‘리버마켓’이란 이름으로 펼쳐졌다. 후진항에서의 비치마켓 대신 남대천 옆 리버마켓으로, 장소를 바꿨지만 콘셉트는 변함이 없다. 다만 마켓을 여는 시기와 장소가 변동될 수 있으니 사전에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글 이상호(여행작가) 사진 이상호, 안현욱]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1호(23.3.21) 기사입니다]

< Copyright ⓒ MBN(www.mb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