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69시간제 무산? 이러다 밥줄 끊겨" 실망한 中企…그들의 속사정

김성진 기자 2023. 3. 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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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근로제도 개편안'을 정부가 재검토하고 있다. 근로 시간 허용량을 69시간에서 줄이는 방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연장근로 허용량을 높이자고 주장했던 중소기업계는 갑작스런 정부의 방향 전환에 당황하고 있다. 69시간도 대기업이 정한 납품 기일을 맞추기 부족한 시간인데 여기서 줄이면 제도 개편의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빠듯한 납품기일, 못 맞추면 밥줄 끊기는데...집 보내야 하는 직원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16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DB.
13년 차 중소조선업체 박모 대표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 여론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며 "연장 근무 시간의 총량이 늘어난 것이 아닌데 반대 여론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이 근로 시간 개편안 보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안상훈 사회수석은 "장시간 근로를 조장한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주52시간 근무 시간을 유연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1년으로 넓혔다. 현재는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 근무를 시키면 안 된다.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체적으로 현실에 비춰볼 때 너무 경직됐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박 대표 회사는 납품 기일을 일주일 앞두고 하루 4~5시간 추가 근무, 어떨 때는 철야 근무를 한다. 대신 납품하면 한동안 40시간 근무를 한다.

개편안은 한달 52시간, 분기 140시간, 반기 250시간, 1년 440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면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일주일 근무 시간을 따져보면 이론상 69시간을 일할 수 있다. 연장근로 시간 총량은 늘지 않는다. 일이 바쁘면 차주 연장 근로 시간을 끌어다 쓰는 개념이다.

첫 개편안 발표 당시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는 입장문을 내고 "환영한다"면서도 "제도 개선의 효과를 키우려면 추가적인 연장근로 한도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업무량 폭증에 대비할 수 있다"며 미국은 연장 근로 시간에 한도가 없고 일본은 한달 100시간, 1년 720시간이라는 해외 사례도 제시했다. 근로자들도 조사에서도 52시간 시행 후 '삶의 질'이 떨어졌다는 비율이 55%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용부의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노동계는 일주일 근로 시간이 과하다고 반발했다. 일주일 69시간을 하루 휴일을 뺀 6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11시간30분이다. 여기에 법으로 정해진 4시간당 휴식 시간 30분을 3번 더하면 하루 13~14시간을 출근해 있는 셈이다. 이른바 MZ 노조라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주요 선진국에 견줘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용자-근로자의 교섭 능력이 대등하지 않은 일터에서 주52시간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납품 기일을 준수하지 않으면 거액 페널티를 물어야 하는 구조 때문에 그렇다. 52시간 제도가 시행된 후 중소기업들의 단기 생산 역량이 떨어진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대기업의 납품 압박이 그에 비례해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소재 구매담당자는 "중소기업에 직접 납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협력사를 낀 경우가 많아서 주로 협력사가 재도급한 중소기업들에 압력을 넣는다"며 "52시간 제도 시행 전후 납품기일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기도 어렵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4월 중소제조업 555개사를 조사한 결과 30~49인 기업의 52.2%, 50~299인 기업의 52.6%가 '52시간제 준수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구인난(39.6%)이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복지 수준 때문에 채용이 쉽지 않다. 그나마 외국인 근로자들을 쓰는 형국이다. 일부 산업공단에서는 법상 허용 근무 시간이 끝나면 두 공장이 근로자를 맞교환하는 이른바 '스와핑'이 나타나기도 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근로 시간 유연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도 나온다. 중소기업들이 과도한 가격 경쟁이나 일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임금 수준이 낮아지고, 신규 채용에 실패하면 기존 직원들이 고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상생협력실장은 "중소기업이 직원들에게 임금을 낮게 주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며 "다수 중소기업이 소수 대기업에 종속돼 과도한 경쟁으로 스스로 출혈 경쟁을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 "적어도 원자잿값이 오르면 납품 대금도 함께 오르는 연동제가 자리 잡아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왜 중소기업에 가지 않으려느냐 조사하면 급여, 복지 부분으로 귀결이 되는데 이렇게 쳇바퀴 돌 듯 양극화가 심화해지지 않도록 정부가 상생과 근로 시간 유연화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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