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역사문화 리포트] 3. 동해 바닷가에 향나무를 묻다

최동열 2023. 3. 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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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 맹방 바닷가에서 나온 침향(沈香). 세로 크기 42㎝. 가로 크기 20㎝.
▲ 삼척 맹방 바닷가에서 나온 침향(沈香). 세로 크기 42㎝. 가로 크기 20㎝.

지난 1999년 삼척시 근덕면 맹방 바닷가에서 오래 묵은 향나무(침향목) 몇 토막이 발견돼 세간의 주목을 끈 일이 있었다.

바닷가의 하천변 모래늪에서 예사롭지 않은 굵은 향나무 토막이 발견되다니. 도대체 이 향나무는 어떤 연유로 맹방 바닷가에 묻히게 된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지만,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매향(埋香) 의례를 살펴보면 그 연유를 다소나마 유추해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바닷물과 민물(하천수)이 만나는 합수 지점의 좋은 곳을 골라 향(香)나무류를 묻는 ‘매향 의례’를 많이 행했다.

매향의 목적은 1차적으로는 품질 좋은 향을 얻기 위해서다. 향나무는 바닷가에서 천년을 묵으면 향을 태우거나 약재로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침향(沈香)’이 된다. 물론 바닷가에 인위적으로 묻은 이 침향은 현대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동남아의 자연산(産) 수지(樹脂) 침향과는 다른 것이다.

두번째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을 극복하려는 민초들의 염원이 매향 의례에 깃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고려시대는 초기에는 여진족 해구(海寇)들이 들끓고, 중·후기에는 몽골의 무시무시한 침략 전쟁에다 왜구들의 노략질까지 더해져 바닷가 해안지역은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였다.

가족이나 일가 친척이 여진족에게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 끌려간 집도 있었을 것이고, 왜구들의 살육과 약탈로 같은 날에 동시에 집집마다 제삿밥을 올리며 통곡하는 마을도 많았을 것이다.

불안하고 피폐한 생활 환경이 좋은 향으로 안전과 발복을 기원하는 매향 의례를 낳은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강릉원주대 장정룡 교수는 “매향 의례는 미륵정토처럼 좋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발원의 의미에다 후손들에게 좋은 향을 제공하겠다는 포용적 세계관이 담겨있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대규모 매향을 했다는 비(碑)가 발견된 곳은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 매향비와 평안남도 정주 침향동, 전남 영암과 해남, 충남 태안과 당진 등 여러곳이다. 동해안 고성 삼일포 매향비(1309년)는 국내에서 발견된 매향비 가운데는 시대가 가장 앞선 것이다.

기록이나 지명을 통해서도 매향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항교 전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장(문학박사)은 1999년 발표한 ‘고성 삼일포 매향비와 침향’ 연구논문(전국향토문화연구회 대상 수상 논문)에서 “세종장헌대왕실록에 나오는 기록 등을 토대로 살펴 볼 때 1002년∼1434년까지 432년간 수십 곳에 수천조(條)의 향나무를 묻은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고성 삼일포 매향비 탁본 일부.

정 전 관장은 “강릉 주문진읍에 향호(香湖)리 라는 마을이 있는데, 천년 묵은 향나무가 홍수에 떠내려와 호수에 잠겼다고 하여 침향호라고 불리고, 황해도 장연에는 침향곶이라는 지명도 있다”고 덧붙였다.

매향비 가운데 시대가 가장 빠른 동해안 고성 삼일포 매향비의 경우는 1309년(고려 충선왕 원년) 당시 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를 비롯 영동지역 9개 군현(郡縣)의 수령들이 하층민과 함께 매향의식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일제강점기까지 현지에 존재하다가 이후 행방이 묘연해 현재는 조각난 비석의 탁본 기록만 전하는 삼일포 매향비 내용은 요약하자면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착한 일을 하는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미륵보살 앞에 맹세하고 기원하면서 삼가 향나무 1500조를 각 포구에 묻고 미륵보살이 하생하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묻은 향나무는 강릉 정동촌 물가 310조, 울진현 두정 200조, 삼척 맹방촌 물가 150조, 동산현 문사정 200조, 흡곡현 단말리 210조 등 지금은 북녘땅인 통천∼현재 경북 울진에 이르기까지 9개 고을 바닷가에 100∼310조씩이었다.

▲ 삼척 ‘척주지’ 매향비조.

1999년 바닷가에서 향나무 토막이 발견된 삼척 맹방 역시 150조의 향나무가 묻힌 것을 삼일포 매향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맹방은 매향을 한 곳 이라는 것을 뜻하는 매향방(埋香芳)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니 매향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강릉 정동진 또한 유서 깊은 매향터이다. 지난 2000년 강릉원주대 매향유적조사단의 조사 결과 정동진 2리 여서낭당 앞 도로는 예전에 개울이었던 것으로 확인돼 현재 물이 흐르는 정동천과 함께 하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실시된 유력한 매향터로 꼽히기도 했다.

▲ 지난 1999년 침향(沈香)목이 발견된 삼척시 근덕면 맹방 마읍천 하구의 현재 모습.

매향지는 주변에서 향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이라는 공통점도 있는데, 삼척과 울진의 경우 매향지 인근이 수백년 자단향(紫檀香) 자생지로 유명했고, 강릉 정동진에도 여서낭당 뒤편 속칭 호물재산에 수백년생 향나무 자생 군락지가 분포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려인들이 동해안 바닷가에 묻은 향나무는 지금 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 이라는 침향이 되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매향 의례를 올리며 기원한 모두가 만족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언제 쯤 구현될까. 그 옛날 매향의례를 살펴보자니 오늘날 정치 현실과 함께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진다.

▲ 삼척 근덕면 맹방 해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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