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 꿈꾸는 피해자가 90%…학폭 중단 후에도 후유증 수년 지속

2023. 3. 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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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설문조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학교 폭력 피해자 중 63% 가량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123RF]

[헤럴드경제 도현정 기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진료한 학교폭력(이하 학폭) 피해자 중 가해자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 경우가 90%가 넘는 것으로 나왔다. 피해자들은 학폭이 중단된 후에도 수년간, 때로는 성인이 된 이후까지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는 학교 및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를 연구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속해있는 학회다. 학회는 지난달 13일부터 28일까지 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 이 중 65명의 답변을 받았다. 학회 회원인 전문의 중 78.5%는 학교폭력 피해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었고, 경험을 바탕으로 답변한 바에 따르면 78.4%가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매우 심각하다’는 답변은 29.5%, ‘심각하다’는 49.2%, ‘학폭 문제가 심각하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응답은 21.5%였다.

전문의들은 학폭 피해자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우울, 불안, 대인기피, 학교거부, 자해 등이 흔하다고 전했다. 불면증이나 분노조절 어려움, 자살사고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했다. 전문의 70%가 학폭 피해로 인해 자살시도를 한 환자를 진료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나 우울장애, 불안장애로 진단을 받았고,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증상호전에 도움이 됐지만 후유증이 상당 기간 지속된 것으로 보고됐다.

학교폭력이 중단되더라도 바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전문의 31.4%가 학폭 중단 후에도 피해자들이 수년동안 후유증을 앓았다고 밝혔다. 62.7%는 학폭 피해로 인한 후유증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지속됐다고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복수를 생각하는 경우를 진료한 경험도 90.2%나 됐다. 47.1%는 구체적인 복수계획을 세우는 환자를 진료했다고 답했다.

전문의들은 학교 폭력 피해와 PTSD 간 연관성에 대해 84.6%가 동의했다. 학폭 피해는 정신적 장애 뿐 아니라 실제 몸이 아픈 경우로도 나타날 수 있다. 신체화장애 때문이다. 전문의의 44.6%는 학폭 피해와 신체화장애와의 연관성에 대해 동의했다. 피해 학생의 정신적 고통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면 신체 증상으로 전환돼,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픈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학폭 피해로 가족 및 또래 관계가 와해됐다는 것에도 61.6%나 동의했다. 피해자들이 대인관계를 맺을 때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을 믿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고립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적응장애로 이어진다. 전문의 86.1%는 학폭 피해와 적응장애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적응장애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에 대해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반응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심한 고통을 낳게 되고, 우울, 불안, 행실 문제 등을 동반한다.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이후에 기분장애나 물질장애가 발병할 가능성이 있고, 자살의 위험성까지 있다.

주지할 점은 전문의 63%가 학폭 피해자는 이후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품행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는 점이다. 학폭 피해자가 이후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학폭 피해로 인한 우울감이나 분노 등 부정적인 정서가 해소되지 않아,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학폭은 중단된 이후에도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 학폭 중단 이후 정신사회적 후유증이 지속된 기간을 묻는 설문에 62.7%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후유증이 지속됐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성격 형성뿐 아니라, 성인기 이후 사회적 부적응과도 연관된다는 것이다.

전문의 63.1%는 학폭 피해자들에게 정신의학적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권했다. 학폭 예방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학교 환경 도모’(33.7%)가 가장 중요하고, ‘가정 내 지지적인 양육’(27.7%), ‘학교 폭력 예방 교육’(15.4%), ‘교사 역할 및 재량 강화’(12.3%) 순으로 중요도를 꼽았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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