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낙관과 비관의 냉정한 분기점

윤정희 기자 2023. 3. 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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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그룹-쌍용차 M&A 8개월째
신차 토레스 흥행하며 실적 개선
하지만 희망과 우려의 시선 공존
장기적 성장 위해선 신차 다양화
올 6월 이후 노사 임단협 미지수
KG그룹 자금·의지 뒷받침돼야
지난해 8월 쌍용차는 KG그룹에 인수됐다. 이들은 장기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 외환위기, 워크아웃, 한번의 법정관리와 세번의 매각. 1986년 쌍용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후 36년간 쌍용차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다. 최악의 위기는 2022년에 찾아왔다. 기업 회생이냐 파산이냐를 두고 '쌍용차에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비관론이 득세했다.

# 벼랑 끝에서 쌍용차는 네번째 매각에 나섰고, KG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그로부터 200여일이 흐른 지금, 쌍용차엔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최근 감사보고서 심의 요청서를 제출하며 주식거래 재개 절차에 나선 쌍용차의 현재를 짚어봤다.

위기의 순간.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2022년 3월 기존 인수ㆍ합병(M&A)이 무산된 후 새롭게 인수전에 뛰어들더니 세달 만에 4000억원의 인수대금을 지급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8월 모든 M&A 절차를 마무리하고 쌍용차의 새 주인에 올랐다. 기업 회생과 청산의 기로에 서 있던 쌍용차와 그런 쌍용차를 사들인 KG그룹의 얘기다.

속전속결로 이뤄진 두 회사의 M&A를 두고 시장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KG그룹이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쌍용차를 재건할 것이란 낙관과 자동차 사업 경험이 없는 그들이 과도기적 자동차 시장에서 어떤 노하우를 가질 수 있냐는 반문이 교차했다.

공교롭게도 이런 긍정론과 부정론은 KG그룹과 쌍용차의 동행이 8개월째로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KG호號 쌍용차를 둘러싼 두가지 시선을 차례로 살펴보자.

■ 시각❶ 긍정론 = 업계에선 쌍용차가 부활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근거는 쌍용차의 실적이다. 2022년 4분기 쌍용차의 매출은 1조339억원으로 2018년(1조527억원) 이후 4년 만에 분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1억원으로 2016년 4분기(101억원) 이후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달성했다.

2020년 한때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를 찍으면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던 재무구조도 개선됐다. 2022년 쌍용차는 마침내 자본잠식에서 벗어났다. 부채비율은 83%로 2018년(218%), 2019년(401%)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쌍용차의 성적을 견인한 건 2022년 7월 5일 정식 출시한 신차 '토레스'였다. 지난해 쌍용차의 자동차 판매량은 총 11만3960대(내수 6만8666대ㆍ수출 4만5294대)였는데, 그중 19.7%(2만2487대)를 토레스가 차지했다.

현재의 기세도 좋다. 올 1~2월 토레스 판매량은 총 1만257대로 전체 판매량(1만3915대) 중 73.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토레스가 쌍용차의 '효자 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7월 쌍용차에서 출시한 토레스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사진=쌍용차 제공]

쌍용차가 M&A 이후 8개월 만에 실적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던 배경으론 두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안 된다'는 쌍용차 임직원의 절박함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경쟁이 심화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임직원들이 쌍용차만의 헤리티지(유산)를 잃어선 안 된다는 철학을 공유했다"면서 "(토레스 흥행에는) 쌍용차 특유의 강하고 터프한 느낌을 디자인 철학으로 삼은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하나는 곽재선 KG그룹 회장의 '책임경영'이다. 쌍용차 관계자에 따르면 KG그룹에서 쌍용차로 완전히 옮겨온 두명의 인력 중 하나가 바로 곽 회장이다. 이 관계자는 "곽 회장이 일주일에 두번씩 평택공장에 내려가 회의를 주도하고, 평사원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 그들의 의견까지 직접 청취하고 있다"면서 "사내 호응과 분위기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오너가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함께 미래 청사진을 그려 나가고 있는 셈이다.

■ 시각❷ 부정론 = 그렇다고 쌍용차에 위험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평화적 노사관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쌍용차 노사가 임금 동결을 약속한 기한은 올 6월까지다. 이 시기가 지나면 쌍용차 노사는 임금ㆍ복지체계 개편을 위한 새로운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

쌍용차 관계자는 "현재로선 어떤 식으로 임금과 복지 수준을 정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논의가 순조롭게 흐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노사 간 과거와 같은 진통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걸 시사한다.

쌍용차 앞에 산적한 과제

위험요인은 또 있다. 쌍용차의 성적표를 두고도 냉정한 반론이 나온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거다. 김필수 대림대(미래자동차학) 교수는 "토레스의 흥행은 일시적 '생명 연장'일 뿐"이라면서 "신차 효과가 과연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미지수"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쌍용차의 매출 비중이 토레스에 집중돼 있는 건 독이 될 수 있다"면서 "쌍용차가 장기적으로 실적 개선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토레스 이외 3~4종의 신차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토레스 출시를 전후로 쌍용차의 간판모델인 렉스턴 시리즈와 티볼리의 판매량은 급감했다. 지난해 3월 1493대를 기록했던 렉스턴 스포츠의 월간 판매량은 올 2월 756대로 반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렉스턴 스포츠 칸의 판매량은 1292대→534대, 렉스턴은 328대→263대로 각각 58.7%, 19.8% 감소했다. 한때 쌍용차의 매출을 책임졌던 티볼리의 판매량은 지난해 3월 1077대에서 올 2월 196대로 81.8%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레스의 흥행이 '반짝 효과'에 그친다면, 쌍용차는 또다시 부진의 늪에 빠질 공산이 크다. 김 교수가 '신차 라인업의 다변화'를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쌍용차도 이같은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올 하반기 U-100(가칭ㆍ토레스 기반 전기차)의 론칭을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으며 KG그룹에서도 이미 신차 개발비용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오는 30일 열리는 서울 모터쇼에서 U-100을 포함한 17종의 미래차 라인업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쌍용차를 향한 회의적 시선이 걷히지 않는 건 신차를 개발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통상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데 3000억원의 비용이 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차종의 신규 라인업을 구축하기까지 적어도 1조원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 쌍용차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평택 공장의 부지를 팔아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데, KG그룹이 그만한 돈을 투입할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관건은 KG그룹 자금과 의지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 역시 "KG그룹이 앞으로 투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키포인트"라면서 "신차 개발 비용뿐만 아니라 기존 공장의 재편, 신규 공장의 설립, 연구ㆍ개발(R&D) 전문 인력 채용 등을 위해서도 자금 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구나 KG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이행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항구 원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향후 쌍용차를 지탱할 큰 틀의 전략을 세울 수 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를테면 경쟁사의 기술 개발은 어디까지 진척됐는지 부품업체들의 상황은 어떤지 정부의 탄소 MRV(탄소 배출량 및 감축량을 측정ㆍ보고ㆍ검증하는 것) 규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공장 이전 시 지리적ㆍ환경적 제약은 무엇인지 등 미시적 분석이 있어야 거시적 관점의 전략을 만들 수 있다"면서 "KG그룹이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곤 하지만, 자동차 사업 경험이 없는 터라 이를 해낼 역량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쌍용차가 장기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KG그룹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사진은 곽재선 KG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오는 3월 22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쌍용차는 공식적으로 사명(KG모빌리티)을 변경한다. 여기엔 쌍용차를 짓누르던 악재를 딛고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관건은 달라지는 외형만큼 체질도 바꿀 수 있냐는 거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아우르는 신규 차종의 개발, 이를 위한 대규모 투자, 섬세한 시장 파악과 날카로운 전략 수립, 반복해선 안 될 노사갈등…, 쌍용차는 이 모든 숙제를 풀어내고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을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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