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술은 피지컬 차이를 넘어설 수 있나?[노경열의 알쓸호이]

배우근 2023. 3. 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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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OTT서비스를 통해 인간의 순수한 신체능력(피지컬)을 전면에 내세운 쇼프로그램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종 스포츠대회의 간판 선수들은 물론 자신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운동 관련 유튜브 등을 하던 사람들도 대거 참가해 파워, 스피드, 지구력 등을 경쟁한 이 프로그램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흥행을 한 것 같다.

필자에게 무술을 배우는 수련생들도 이 프로그램을 재밌게 봤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할 것이라고 생각한 질문을 필자에게 했다. “저렇게 피지컬이 우월한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연습하는 기술들이 통할까요?”

사실 격투계에도 ‘체급차는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들 한 체급이라도 큰 사람이 승부에서 유리하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격투스포츠인 복싱에서도 ‘헤비급의 잽(앞에 있는 손으로 가볍게 뻗는 펀치)이 경량급의 스트레이트(뒷손으로 체중을 실어 뻗는 펀치)만큼의 위력이 있다’고 얘기한다.

이런 상황이면 동일한 기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무조건 체중이 많이 나가는 쪽이 유리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유전적으로 몸이 약하고 또 타고난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술을 아무리 익혀도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들 즉, 더 크고, 더 빠르고,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을 제압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더 비관적으로 얘기한다면 여성이 아무리 호신 기술들을 배워봤자 보다 크고 빠르고 힘이 센 남성을 물리치기는 어렵다는 결론도 나온다.

보통 ‘호신술 무용론’을 얘기할 때 앞 문단의 논리가 그대로 전개된다. 이제 반박을 해보자.

첫째, 호신술은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우열을 가리는 것이 ‘경기’라면, 호신술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악한 의도와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 ‘위기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끝까지 싸워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필요도 없고, 도망만 다닌다고 해서 야유를 보낼 관중도 없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체격이 큰 괴한이 쫓아올 때 자신만 통과할 수 있을 만한 좁은 틈으로 피해 달아날 수 있다면 호신술이 성공한 것이다. 칼럼 초반에 설명한 ‘주변 지형과 상황을 잘 파악하라’는 것을 잘 이용한 셈이니 호신술 고수라 할 수 있다.

둘째, 한없이 비겁해져도 된다. 호신술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라면 격투 시합에서는 금지된 낭심공격, 눈찌르기, 할퀴기, 잡아뜯기를 해도 되고 심지어 전기충격기나 다른 호신 무기를 꺼내 사용해도 된다. 무기 사용은 국내에서는 법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른 방법들은 반칙도 아니고 누가 비겁하다고 욕하지도 않을 것이다.

격투기 선수들도 낭심공격이나 눈찌르기를 쉽게 성공시키지 못 하더라는 반박도 있는데, 룰 때문에 그런 것을 충분히 연습할 필요가 없는 이들과 매일 그것만 연습하는 사람들의 기술 완성도는 차이가 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역시 이 칼럼에서 소개했지만 이런 ‘비겁한 공격’들을 성공시키려면 ‘난 아주 약한 인간’이라는 걸 보여줘 상대가 방심하도록 해야 한다. ‘비겁해져도 된다’가 아니라 비겁해져야 한다.

셋째, 세상의 모든 괴한들이 쇼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최상위 피지컬 소유자들이거나 격투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은 좋지만, 항상 그런 상황만 가정하는 것은 자신을 발전시켜 문제를 극복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냥 회피하는 자세에 가깝다.

서두에서 말한 쇼프로그램에는 올림픽 같은 스포츠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뛰어난 사람들이 참가했다. 5천만 인구 중 겨우 10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소수다. 이런 소수의 사람들과 맞딱뜨릴 상황을 처음부터 고민하지 말고 차근차근 호신술을 한번 익혀보자.

다양한 상황에 대한 연습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큰 사람을 제압할 수 있을지’, ‘제압이 불가능할 것 같다면 어떻게 도망갈 수 있는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피해는 어느 정도일지’ 등등이 말이다.

호신 기술들은 아주 유용하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익혔고 또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됐는가에 따라 호신 기술은 충분히 피지컬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 사실 논쟁거리도 안 될 주제다.

과거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보면 호신술은 분명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신보다 큰 상대와의 다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에서 JKD KOREA 도장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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