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키움이 한국 야구의 지향점 국가대표만의 문제 아냐[리부트 KBO③]

장강훈 2023. 3. 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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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지 못했다."

3회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은 성적 압박 탓에 야구 축제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가을야구의 실질적 주인공으로 떠오른 키움 선수단의 모습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2022년 포스트시즌 무대에 오른 키움 선수들은 야구를 정말 재미있어한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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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선수들이 2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KBO리그 LG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뒤 마운드에 모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즐기지 못했다.”

3회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은 성적 압박 탓에 야구 축제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승패를 떠나 세계 최고 선수가 모인 무대를 만끽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가을야구의 실질적 주인공으로 떠오른 키움 선수단의 모습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준PO)를 시작으로 한국시리즈까지 명승부 열전을 펼친 히어로즈는 ‘야구를 즐긴다’는 게 어떻게 경기력으로 발현하는지를 보여줬다. 젊은 선수 중심의 팀이지만, 승패에 초연한 태도였다. 특히 SSG와 한국시리즈에서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인상마저 풍겼다. “오늘이 올해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으니, 그라운드 위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이정후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대한민국 3번타자 이정후가 12일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예선B조 체코와 대한민국의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다. 한 경기 승패로 당락이 결정되는 단기전은 특히 그렇다. 수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나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에게 ‘떨어져도 괜찮아, 즐겨봐’라고 말한들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2022년 포스트시즌 무대에 오른 키움 선수들은 야구를 정말 재미있어한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즐기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충분히 연습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커야 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기 때문에, 준비한 것을 실수없이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라운드 밖에서 얼마나 밀도있게 훈련했는지로 가려진다.
키움 이정후(왼쪽)가 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SSG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한 뒤 경기를 마무리한 김재웅의 얼구을 만지며 기뻐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밀도는 시간이나 강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몸을 쓰는 방식, 경기에서 집중하는 비결이 다르므로 정량화하기 어렵다. 투구와 타격, 수비, 송구 등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정도라면, 훈련시간이나 강도는 큰 문제가 안된다. 그래서 일부 지도자는 훈련보다 루틴을 강조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가 배팅케이지에 들어가는 것보다 티를 선호하는 추세로 돌아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루틴은 아마추어 레벨에서부터 정립해야 자기 것이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실전에서 지켜야할 루틴을 만들 여유가 없다. 루틴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정립되는데, 시행착오를 겪을 틈을 주지 않는다. 2023 WBC대표팀의 부진을 비단 프로 선수들의 몫으로만 남겨두면 안된다는 의미다.
대표팀 4번타자 김하성이 13일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예선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5회초 무사 만루에서 만루홈런을 터트린 후 홈인하고 있다.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다른 종목도 비슷하지만, 아마추어 엘리트 스포츠는 대회 성적이 진학과 닿아있다. 전국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 성적을 거둬야 한다. 경기 승패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특출난 한두 명이 팀 전체를 끌어가는 기형적인 구조다. 클럽팀에서 ‘즐기는 야구’로 재미를 느끼다가도 엘리트팀에서 성적 압박, 혹은 출전기회 박탈 등의 이유로 재능을 포기하는 소년들이 많다.

스포츠 전체의 생태계를 바꾸려면, 입시제도부터 손을 대야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청소년기 때부터 체득하지 않으면, 각 종목 기능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과정의 소중함을 체득하면, 극한의 긴장감을 즐기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안타 1개, 삼진 1개, 시속 160㎞보다 먼저 찾아야할 해법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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