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잔치에 가려진 돈위기]⑤美·유럽은행도 휘청…"韓 리스크 관리 먼저"

김정은 기자 2023. 3. 1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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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경쟁 심화시 위험 감수 불가피…2금융권 체력 빠르게 소진될 것"
"'은행권 제도 개선' 방향 다시 잡아야…당국 입김, 장기적으로 경제 왜곡"

[편집자주]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파산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했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40년 역사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단 36시간만에 몰락한 사태를 목도한 증권가의 경고다. '자본주의의 꽃'인 미국의 은행도 망하는데 한국은 '은행 때려잡기'에 혈안이다. '금융의 BTS'를 만들겠다는 새정부 금융당국의 당찬 포부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K-콘텐츠' 등 전세계가 'K'자만 붙으면 열광하는 때지만 유독 'K-금융'만 후퇴다. '관치 금융'의 유령이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금융의 BTS'의 꿈은 요원한 것일까.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김정은 기자 = 미국 16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세계적 투자은행인 스위스의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 산업이 큰 위기를 맞은 가운데 한국 금융당국은 '은행권 돈 잔치' 프레임 속 '경쟁 촉진'에만 몰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10여 년만의 고금리에 따른 부작용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 정책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금융당국은 SVB에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리며, SVB는 사실상 파산 상태가 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금융계가 큰 충격에 빠졌지만 미국 정부가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며 진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뒤이어 유럽의 크레디트 스위스에서 유동성 위기라는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동성 경색으로 경영난을 겪어왔다.

세계 '톱5' 안에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큰 유럽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크레디스 스위스의 경영난으로 전 세계 금융권은 다시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됐다. 한국 정부는 SVB 파산에 따른 국내 금융리스크는 제한적이란 입장이지만, 전 세계 은행이 마주한 거시적인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경쟁 촉진'보다 "리스크 관리가 먼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 "글로벌 경제 위기 가시화…리스크 관리에 중점둬야"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이 논의 중인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고금리에 따른 은행권의 이자 수익을 '돈 잔치'로 정의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규 은행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제언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SVB 사태는 금리 위험을 충분히 관리를 못 해서 유동성 문제가 생긴 건데,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성이나 유동성 위험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라며 "은행 신규 진입 등을 판단할 때도 소비자 편의뿐 아니라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중요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인터넷 은행들의 위험성 평가도 제대로 해야 할 때"라며 "은행들의 경쟁이 심화하면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무리한 영업이 불가피할 텐데 이런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현재로서는 은행권의 구조 재편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신규 은행 인가와 비은행권 업무 확대 등을 통한 경쟁 촉진 시 은행권들의 '위험 감수'는 불가피하다. 국내 시중은행의 경우 경쟁 촉진에 따른 리스크를 짊어질 체력이 되지만, 인터넷 은행이나 2금융권의 경우 건전성 악화는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신규 플레이어'까지 추가된다면 금융권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2023.3.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연체율 증가세…리스크 우려 커져"

금융당국이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신규 플레이어의 도입 결정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은행권 연체율이 점진적으로 우상향하고 있는 만큼, 2금융권 등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은행의 경우 그 기울기가 더욱 가파르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31%로, 전월 말(0.25%) 대비 0.06%포인트(p) 뛰었다. 신규 연체율은 0.09%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은 물론 가계대출 연체율 모두 전월대비 올랐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축은행 같은 경우는 작은 금액이라도 부실이 생기게 되면 해당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시중은행은 리스크 관리를 잘하고 있고 충당금도 충분히 잘 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2금융권은 연체율이 지금 많이 늘어난 상태라서 리스크 관리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워낙 건전성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관리할 여력이 되지만 인터넷 은행이나 신규 플레이어가 진입했을 땐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고강도 긴축 여파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경쟁 촉진 방안이 누구에게 득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2022.12.2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정부에 휘둘리는 은행들…해외 투자자 신뢰 얻을 수 없어"

현재 금융당국이 고삐를 세게 잡고 있는 '은행권 제도 개선'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당초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기치로 세웠던 '금융의 BTS' 탄생은커녕 '은행 옥죄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전부터 BTS처럼 금융권에서도 글로벌 민간 금융회사가 탄생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온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돈 잔치", "공공재" 발언 이후 급격히 바뀐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은 은행의 경쟁력을 높이기 보단, '힘 빼기'에 가깝다는 것이 은행권의 입장이다. 디지털화로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야 할 은행들이 정부의 '간섭' 속 신사업 동력을 잃고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에서 개입과 관여가 상당한 건 사실"이라며 "은행권 경쟁 촉진을 한다고 해도 시장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금융당국의 지나친 개입은 경제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금융의 BTS'가 나오는 건 힘들 것"이라며 "예컨대 글로벌 진출을 위해 신사업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선 국내 은행들이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걸 보면, 국내 은행의 사업 추진 동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derlan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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