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사용 많은 나라, 뱃속 내성 세균 많다...세계 최대 규모 연구서 밝혀

최정석 기자 2023. 3.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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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준 중앙대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팀 연구 결과
전 세계 8972명 데이터 사용…역대 최대
14개국 중 스페인, 프랑스, 중국 순으로 내성 세균 많아
한 연구원이 항생제가 든 미생물 배양접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연구진이 항생제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약효를 떨어뜨리는 ‘내성 세균’이 소화기관에 많이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세계 14국에서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약 9000건 모았는데 이렇게 대규모로 항생제 영향을 분석한 건 처음이다.

차창준 중앙대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16일 아시아, 유럽, 북미, 아프리카 등 4개 대륙 14국에 사는 일반인들의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항생제 사용량이 많을수록 장내 내성 미생물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인 14국은 중국,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스페인,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 마다가스카르 등이다. 한국은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연구팀은 미생물 데이터를 모아 메타게놈 분석을 수행했다. 메타게놈 분석이란 주어진 환경 내에 존재하는 여러 종의 유전체를 한꺼번에 연구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지난 2018년부터 4년 간 총 8972명에 대한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국가 별로 나눈 뒤 각국 사람들 장내 미생물에 항생제 내성 세균이 얼마나 있는지 분석했다. 이후 그 결괏값을 세계보건기구(WHO)와 질병역학경제정책센터(CDDEP)에서 제공하는 국가 별 항생제 사용량 통계와 비교했다.

항생제 사용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해당 국가에 사는 일반인 뱃속에 항생제 내성 세균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항생제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장내 미생물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국가별 항생제 내성 세균 보유 수준을 나타낸 그래프. a는 국가별로 항생제 내성 세균을 총 얼마나 갖고 있는지 나열한 그래프. b는 항생제 투여량(x축)과 항생제 내성 세균 마릿수(y축)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조사 대상인 14 국가 중 항생제 처방이 가장 많은 국가는 CDDEP 기준으로 스페인이었다. 그 뒤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카자흐스탄이 이었다. WHO 기준으로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카자흐스탄, 스웨덴 등 순으로 항생제 처방량이 가장 많았다.

이 중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항생제 내성 세균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국가는 스페인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프랑스, 중국,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마다가스카르, 덴마크, 미국이 뒤를 이었다. 차 교수는 “항생제 처방량과 항생제 내성 세균 보유량이 정의 상관관계(정비례)를 보였다”고 말했다.

항생제는 특정 세균이 몸속에서 자라는 것을 억누르거나 완전히 죽이기 위해 만든 물질이다. 표적 세균과 종류가 다른 세균으로 항생제를 만드는데 이것이 몸에 들어오면 진화적인 우위를 점하면서 표적 세균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문제는 세균 퇴치를 위해 들어온 항생제가 몸속에 자리잡으면서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항생제를 한 번 맞은 뒤에 다른 세균에 감염돼 다시 항생제를 맞으면 처음 맞았을 때보다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정작 필요할 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항생제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들어온 미생물이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다.

항생제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의 전자현미경 사진. 노란핵이 세균이고 붉은색은 죽은 백혈구이다./NIH

차 교수는 “항생제 남용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지금껏 많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단기간에 모은 소규모 데이터만 이용했다”며 “몇 년 간 9000건 가까운 데이터를 모아 국가 별로 나눠 분석한 건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의료 현장에서 ‘항생제 스튜어드십’ 도입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생제 스튜어드십은 항생제 남용에 따른 내성 수준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완화하기 위해 운영하는 항생제 관리 프로그램이다.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항생제가 적정 수준에서 쓰이도록 항생제 스튜어드십을 운영 중이다.

박대원 대한감염학회 패혈증연구회장은 “통계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0명 중 2~3명이 매일 항생제를 맞고 있는 꼴”이라며 “의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항생제 스튜어드십을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유전학 연구기관인 영국의 얼햄 연구소도 참여한 이번 연구 성과는 이달 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항생제 사용이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대규모 집단 수준의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소개됐다.

참고자료

Nature communications,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6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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