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대국민 사과, 일본 야구도 한국을 배웠다…WBC 실패 나쁘게만 보지 말자
[OSEN=이상학 기자]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에 성공한 일본야구대표팀의 기세가 뜨겁다. 일본 도쿄에서 치른 1~2라운드 5경기 모두 승리하며 챔피언십 라운드가 열리는 미국으로 쾌속 진격한다. 압도적인 경기력과 전폭적인 지원, 국민적인 야구 사랑과 열기로 야구 강국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번의 1라운드 조기 탈락으로 끝나며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한국 야구과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런 일본도 국제대회에서 실패한 적이 있었다. 9전 전승 금메달로 한국 야구 최고의 순간이었던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일본에 흑역사로 남아있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두 번이나 지며 노메달 굴욕을 당했다.
‘베이징 참사’는 아시아 최고를 자부하던 일본 야구를 정신 번쩍 들게 만들었다. 당시 일본올림픽위원회 선수단 보고서를 통해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고(故)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국제대회 경험이 많으면 큰 경기에 동요하지 않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일본 언론도 감독이나 선수를 비난하는 데에만 몰두하지 않고 ‘올림픽에서 보여준 한국 선수들의 단결력을 배워야 한다’는 뼈있는 조언과 대안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듬해 2009년 WBC를 앞두고 탄생한 게 바로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명칭. 전국시대 무사 정신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선수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브랜드화하며 체계적인 운영 및 홍보를 시작한 ‘사무라이 재팬’은 고쿠보 히로키, 이나바 아쓰노리 등 스타 출신 은퇴 선수들에게 대표팀 전임 감독을 맡기며 전권을 부여했다. 시즌 전부터 12개 구단 캠프를 돌며 선수들을 시찰하고, 대회가 있으면 일찌감치 대표팀 선수들을 소집해 일체감을 키어ㅜㅆ다. 미국, 대만, 네덜란드, 멕시코, 캐나다, 호주 등 여러 국가들과 A매치를 열어 국제대회 실전을 대비하는 경험을 쌓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될 가능성을 보였던 2015년에는 일본야구기구(NPB) 차원에서 올림픽 기간 시즌 중단, 전폭적인 선수 지원을 합의하며 중장기 플랜을 갖고 움직였다. 수년 전부터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거친 끝에 5전 전승 금메달로 도쿄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후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견고하게 자리잡은 ‘사무라이 재팬’ 시스템은 이번 WBC 선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실패와 처절한 반성이 없었더라면 일본 야구가 이렇게 발전했을까. 15년 전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 일본처럼 한국도 이번 WBC 실패를 거울삼아 도약해야 한다. 감독, 선수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대역죄인만 만들고 끝날 게 아니라 야구 발전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KBO는 지난 16일 WBC 부진에 실망한 팬들에게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내며 ‘큰 책임을 통감하며 여러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냉정하게 문제점을 분석하고, 중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 리그 경기력 및 대표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각 단체와 협력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표팀을 이끈 이강철 KT 감독도 “KBO에서 연락이 오면 이번에 느낀 점들을 우리 야구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며 “우리도 일본처럼 대표팀이 비시즌에 교류전을 많이 하면 어린 선수들이 여러 경험을 쌓고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도 고척돔이 있으니 11월에도 다른 국가를 초청해서 경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국제대회가 처음인 선수들이 많다 보니 경험이 부족했다. 이번에 선수들이 뼛속까지 느꼈을 것이다. 다음에 대표팀에 나가면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욕먹고 있지만 몇 년 후에는 야구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WBC에 대한 비난은 경기 운영을 못한 저한테만 해주셨으면 좋겠다. 선수들은 앞으로도 계속 야구를 해야 한다. 선수들이 잘한 것, 좋은 면도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waw@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