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전태일이자 간디, 시쿠 멘지스의 투쟁과 죽음 [책&생각]

최재봉 2023. 3. 17.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시쿠 멘지스(1944~1988)는 브라질 아마존의 고무 채취 노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다.

1960년대에 고무 채취 노동자를 조직화하려던 시쿠의 시도는 어려움에 봉착했고, 그는 1975년이 되어서야 결성된 첫 노조에 가입한 데 이어 시의회 선거에도 출마해 당선했다.

그는 전국 고무 채취 노동자협의회를 이끌며 아마존을 채굴 보존 지역으로 지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노동운동가 겸 환경운동가 시쿠 멘지스(오른쪽)와 부인 일자마르. 시쿠가 1988년 12월22일 암살범의 총탄에 스러진 이틀 뒤 일자마르 역시 살해당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나, 치코 멘데스
숲을 위해 싸우다
치코 멘데스·토니 그로스 지음,이중근·이푸른 옮김 l 틈새의시간 l 1만7000원

시쿠 멘지스(1944~1988)는 브라질 아마존의 고무 채취 노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아홉 살부터 고무 채취 노동에 종사한 그는 스무 살 무렵에야 글자를 익혔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폭력 투쟁을 이끌어 ‘아마존의 간디’라 불렸던 그는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집에 왔다가 암살범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칠레 출신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1989년 그에게 바친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했고, 존 뮤어가 창립한 북미 최대의 환경단체 시에라 클럽은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2013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나, 치코 멘데스>는 시쿠 멘지스(치코 멘데스)가 죽기 직전 동료 환경운동가였던 토니 그로스와 나눈 대담을 시쿠의 일인칭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시쿠의 삶과 함께 아마존의 노동과 환경 문제를 보는 시야를 틔워 줄 만하다.

브라질 북동부 빈민 출신인 시쿠의 아버지는 2차대전 중 서부 아마존으로 옮겨 왔다. 말레이 반도의 고무 농장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미국 정부가 아마존에서 고무를 채취하고자 차출한 ‘고무 병사’의 일원으로서였다. 고무 농장 일대에는 학교가 없었다.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불리한 계약 조건으로 노동력을 팔아야 했고 죽도록 일해도 빚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62년의 어느 날, 시쿠는 실패한 혁명에 가담했다가 수배되어 아마존으로 스며든 유클리드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글을 배우게 된다. 유클리드는 “이제껏 세상 그 누구도 해방운동의 뿌리를 뽑아내지 못했다”며 시쿠에게 노동조합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1960년대에 고무 채취 노동자를 조직화하려던 시쿠의 시도는 어려움에 봉착했고, 그는 1975년이 되어서야 결성된 첫 노조에 가입한 데 이어 시의회 선거에도 출마해 당선했다. 그는 전국 고무 채취 노동자협의회를 이끌며 아마존을 채굴 보존 지역으로 지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가 대규모 고무 농장을 수용해 소유권을 지니면서 노동자들에게 땅을 사용할 권리를 주는 이 사업 때문에 시쿠는 농장주에게 밉보였고 결국 그들 손에 희생되기에 이른다. 시쿠는 고무 채취 노동자들과 토착민들이 아마존 숲 보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연대 투쟁을 벌이도록 했고, 지주의 벌목과 개간에 평화적 수단으로 맞서는 ‘엠파치’ 전술을 고안했다. 노동자들과 여성 및 어린이까지 합세해 서로의 팔을 잡고 사슬 형태로 개간 예정지를 둘러싼 채 벌목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것.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을 아우르며 지주들의 미움을 산 시쿠는 자신을 향한 암살 음모를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는 주지사와 경찰, 법원, 언론, 심지어는 대통령에게까지 자신에 대한 암살 계획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부자들의 편인 권력자들은 그의 호소를 외면했다. 이렇듯 명백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인터뷰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전태일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하다. “나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우리 중 누군가가 죽더라도 저항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운동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