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어떤 거짓말은 규제의 대상이어야 한다

최원형 2023. 3.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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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허위사실'은 까다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지은이는 표현의 자유를 원칙으로 새기는 한편 "일부 거짓말과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규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허위사실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면서도 그런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허위사실은 헌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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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선스타인 인터뷰

라이어스
기만의 시대, 허위사실과 표현의 자유
캐스 선스타인 지음, 김도원 옮김 l 아르테 l 2만4000원

민주주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허위사실’은 까다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55살 미만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과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차를 좋아한다’고 한 말은 똑같은 거짓말인가? 처벌과 검열이 필요한가, 그것이 불러올 ‘위축효과’가 더 문제인가?

행동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정책 설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의 <라이어스>는 이 문제를 섬세하게 파고든다. 위증, 사기 등 어떤 허위 진술은 처벌 대상으로 취급되지만, ‘현실적 악의’가 없는 한 공직자를 향한 발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고의적인 허위사실이라도 심각한 해악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보호받아야 한다(‘미국 대 알바레즈 사건’) 등의 판례에서 보듯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원칙적으로 허위사실도 보호한다.

지은이는 표현의 자유를 원칙으로 새기는 한편 “일부 거짓말과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규제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 대상을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 ‘발언자의 의식 상태’(거짓말인가 합리적 실수인가), ‘해악의 규모’(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하는가), ‘해악의 가능성’(개연성이 높은가 낮은가), ‘해악의 발생 시기’(즉각적인가 먼 미래인가) 등의 틀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허위사실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면서도 그런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허위사실은 헌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 규제에 무게를 싣는 한편, 알림과 정정 표시 등 처벌과 검열이 아닌 다양한 수단들이 있음을 일깨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 캐스 선스타인 서면 인터뷰
<넛지>의 공저자로도 유명한 미국의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 <라이어스>&nbsp; 한국 출간을 계기로 최근 <한겨레>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당신의 책 <라이어스>에는 공중보건과 공중안전에 대한 위협, 정치적 극단화에서 비롯한 정치 문화의 파괴 등의 사례들이 자주 제시된다. 당신이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물어보고 싶다.
 “우리 대부분은 거짓말과 허위사실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사람들의 안녕, 민주주의, 평판 등을 해칠 위험이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가장 심각한 위험을 막으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킬 수 있을가?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이 <라이어스>를 쓰는 데 동기를 부여했다.”

—당신은 책 속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어떤 종류의 허위사실 진술('거짓말'이라고 할 만한)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얼핏 봐서는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를 끝까지 양립시킨 것이 인상적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논의를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에 대한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 원칙까지 흔들게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뒤따른 것인지, 그 전개 과정이 궁금하다.
 “때때로 어떤 주제는 저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밝혀진다. 이 책이 그런 사례다. 아주 긴 기간은 아니지만 2년 동안 이 책을 썼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쟁하는 가치들을 조정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써야 했다. 내 작업의 전체적인 틀은 책의 첫 장에 담겨있는데, 전체 과정 가운데 가장 늦게, 아마도 집필 마지막 2주 동안에 나타났다.”

—당신은 미국의 수정헌법 1조가 오랫동안 허위 진술을 보호하지 않아왔다가, 굵직한 판결들(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앨버레즈 등)에서 허위 진술일지라도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바뀌었던 맥락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온라인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금은 원전에 대한 또다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업데이트들이 '시대의 산물'이라면, 각각의 시대들에 담겼던 그 시대만의 요구는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사상의 자유시장' 개념이 한때 만능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와 함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헌법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헌법 그 자체는 업데이트할 필요가 없다. 현재 우리의 많은 원칙들은 소셜미디어, 심지어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개발됐다. 불행히도 거짓말과 허위사실에 의해 야기되는 위험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상태다. 오늘날 시장은 종종 거짓말과 허위사실에 보상을 주고 있는데, 이것이 진짜 큰 문제다. 이처럼 거짓말이 자주 퍼져나가는 데 대해 우리는 무언가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허위사실 등 어떤 거짓말에 대해선 정부와 민간의 규제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검열이나 처벌은 아니어야 하며 반론, 정정, 노출 제한 등 '최적의 위축수단'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수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규제가 그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 역시 검열, 처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입을 막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규제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이처럼 현실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실효성 의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허위사실을 철회시키는 장치가 있다면 누구나 위축될 것인데, 그것은 좋은 일이다. 허위사실을 발언하거나 퍼뜨렸을 때 그것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는 지식이 허위사실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굉장히 복잡한 주제들이다. <라이어스>는 이 훌륭한 질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허위 진술과 관련된 갈등은 종종 온라인 기사, 게시글 등에 대한 정정이나 삭제 요구, 명예훼손 등 법적인 다툼으로 이어지며, 그럴 경우 어쩔 수 없이 법원이 진실과 거짓의 심판관 노릇을 하는 걸 보게 된다. 의도와 무관하게 판결 내용 자체가 진실 또는 거짓을 입증해주는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행정기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아닌 사법기관이 최종적으로 '진리부'가 되어버리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내가 ‘내 책을 사면 남은 평생 건강해지고, 110살까지 살고, 평생 건강하게 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안타깝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또는 내가 대머리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했다며 당신에게 사달라고 했다고 치자.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약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누군가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으면, 법원은 사기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건 괜찮다. 법원은 오랫동안 어떤 진술들이 사기인지 명예훼손인지를 결정해왔고, 그건 법원이 ‘진짜냐 가짜냐’란 문제를 결정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종류의 사건들에서, 그건 그저 괜찮은 일이다.”

—당신은 소셜미디어 업체들의 자율 규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더 나은 책임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던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트위터에서 가짜뉴스, 혐오표현 등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신의 논의에 비춰볼 때, 이 사안에서 무엇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풀이할 수 있을까?
 “내가 트위터를 이용하긴 하지만, 최근 트위터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 내가 자세히 연구하지 않은 주제라서 그렇다.”

—한국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다양한 가짜뉴스, 그리고 혐오표현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하나는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내용을 사실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1980년 광주란 도시에서 쿠데타 세력이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의 시위를 과잉진압한 사건(5.18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폭동'이었다거나 '북한 군대가 사주했다'는 주장을 펴는 식이다. 이 때문에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정 방지법'과 비슷하게 허위 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다른 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경우엔 허위 진술에 딱히 대응할 방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당신이 말한 '최적의 위축효과'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나는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하여 조언을 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다만 <라이어스>는 미국과 관련해 일반적인 가이드라인들을 제안하고 있는데,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가져보길 희망한다.”

—반면 한국은 명예훼손을 범죄로 규정해 형사처벌하는, 전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사실에 입각한 진술이어도 범죄로 판단하며, 공익을 위한 목적이 입증되어야 그 위법성을 조각한다. 또 공직선거법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 후보자비방죄 등이 있고, 국가보안법에서는 허위사실 날조와 유포를 죄로 다스린다. 군사정권이 통치했던 기간이 길어서, 사회 전체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도가 강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고, 이 때문에 '가짜뉴스'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 반자동적으로 '처벌' 이야기가 뒤따르곤 한다. 이미 책에서 밝힌 바이긴 하지만, 허위 진술에 대한 처벌을 쉽게 용인하지 않아야 될 이유를 좀 더 압축적으로 말해달라.
 “내 나라가 아닌 어떤 나라의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혀두고… 미국에서 만약 정부가 기후 위기, 케네디 대통령 암살, 유전자 변형 유기체에 대해 허위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처벌한다면 그건 진짜 헌법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지라도. 그것이 사회가 진보하는 방법이다.”

—유명 작가로서, 대중들을 위해 다음에 쓸 책의 주제로 어떤 것을 구상하고 있는지? 지난해 Bounded Rationality(한정된 합리성)란 제목의 책을 펴낸 것으로 알고 있다.
 “Bounded Rationality는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는 방법과 시기에 대한 책이다. 예컨대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때에도 두려워한다.(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라.) 지금은 ‘습관화’(habituation)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익숙해지면서도 그것을 별로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그것이 이웃, 화창한 날씨, 훌륭한 우정처럼 환상적이고 훌륭하거나, 아니면 환경오염, 나쁜 일자리처럼 아주 끔찍할 때에도 그러하다. 이 책은 우리가 신선한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탈습관화’ 또는 일종의 ‘새롭게 하기’를 요구한다.”
정리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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