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작아서 더 아름다운 ‘섬 속 섬’ 가파도…걷다, 눈에 담다

지유리 2023. 3. 1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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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핫플] (17) 제주 서귀포 가파도
제주도·마라도 사이 위치
운진항서 뱃길 10분 거리
해안가 따라 ‘바다둘레길’
마을 가로지르는 ‘중앙길’
섬 절반 이상이 청보리밭
2~3월 노란 유채꽃 만발
‘탄소 없는 섬’ 시범모델로
주택 48호에 태양광 패널
만발한 유채꽃과 청보리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빛깔을 드러낸 가파도 봄 풍경. 바다 건너 우뚝 솟은 산방산이 웅장하다. 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

뭍사람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섬 여행은 괜스레 마음을 들뜨게 한다. 섬 속 섬은 더욱 그렇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제주도 남쪽에 있는 가파도로 떠났다. 가파도는 지난해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제주 부속 섬인 가파도는 본섬과 국토 최남단 유인섬인 마라도 사이에 자리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운진항에서 뱃길로 10분이면 닿는다. 하늘이 쾌청한 날엔 항구에서 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단다. 섬 모양이 가오리를 닮았기에 이름을 가오리, 제주방언으로 ‘가파리’에서 따왔다. 면적은 0.84㎢, 해안선 길이 4㎞로 여유롭게 걸어도 두시간이면 돌아볼 만큼 작고,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20m로 우리나라 유인섬 가운데 가장 낮다.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말했던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이 말은 섬에도 들어맞는다. 작고 낮은 섬 가파도는 아름답다.

작은 섬이 아름답다

가파도 선착장에 내렸다.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이하는 것은 바람이다. 제주가 바람이 많은 섬이라는데 이곳에선 그 위력이 더 대단하다. 평지와 다름없는 땅이라 사방에서 막힘 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다행히 몸을 떨게 하지는 않는다. 찬기가 가신 가파도 바람은 머리를 맑게 하고 기분을 새롭게 한다.

여행코스는 크게 해안가를 빙 둘러 조성된 바다둘레길과 남과 북을 잇는 중앙길로 나뉜다. 어느 길을 택해도 후회가 없지만 섬의 속살을 만나기엔 역시 마을을 가로지르는 중앙길이 제격이다. 길을 따라 남쪽 가파포구로 향한다. 초록빛 밭과 쪽빛 하늘이 이등분한 풍경 속을 10분쯤 걸었을까. 초록색·주황색이 빼꼼히 시야에 들어온다. 알록달록한 지붕을 인 단층 주택이 모인 하동마을이다. 가파도 매력은 바다보다는 마을에 있다. 100여가구 집집이 소박하지만 개성을 품고 있다. 벽화가 그려진 집들 사이로 몽돌이나 소라껍데기를 붙여 장식한 집이 존재감을 뽐내고 몇몇은 갖가지 나물이 자란 자투리 마당으로 객을 유혹한다. 찬찬히 뜯어보면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멋지지만 전혀 요란하지 않다. 풍광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귀촌인이 차린 사진관, 천연염색공방, 해녀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 등 가볼 만한 가게도 많다. 하나하나 눈길을 주고 걷다보면 어느새 가파포구에 다다른다.

‘쏴아쏴아’ 청보리 파도

가파도에 어울리는 색을 꼽으라면 초록이 아닐까. 가파도는 청보리섬이라고도 부른다. 섬 면적의 절반 이상이 청보리밭이다. 매년 3월말에서 5월 사이 청보리축제가 열린다. 계절이 바뀌면 빛깔도 따라 달라진다. 2∼3월엔 노란 유채꽃이, 8∼9월에 주황 코스모스가 만발해 섬을 채색한다.

보리밭은 중앙길 양옆으로 펼쳐 있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경계를 구분한 사잇길을 걸으며 가파도 바람의 위력을 이제야 제대로 실감한다. 한뼘 크기로 자란 보리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너울진다. 그 모습이 바다를 닮았다. 잠시 서서 가파도의 색을 눈에 담는다. 섬에는 대중교통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객이 많다. 사잇길을 지날 때는 자전거에서 내리기를 추천한다. 느리게 걸어야 흔들리는 청보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하며 걷는 것도 새로운 여행 경험이 된다.

가파도 동쪽 바다둘레길 중간쯤엔 선인장 군락지도 있으니 빼놓지 말자.

탄소중립을 향하다

가파도는 걷기 좋은 섬이다.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차량이 거의 없어 어디로든 마음껏 걷고 뛸 수 있다. 섬에는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없고 가파도를 오가는 배는 차를 싣지 못한다. 차량이 입도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남아 있는 차량은 주민의 것으로 몇대 되지 않는다. 시커먼 매연이 없으니 걷다가 자주 멈춰 숨을 크게 들이켜게 된다.

가파도 공기가 깨끗하다고 느끼는 건 단지 차량이 적어서만은 아니다. 2012년 당시 제주특별자치도는 ‘탄소 없는 섬 2030(CFI2030)’ 계획을 발표하고 가파도를 1단계 시범모델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했다. 현재 섬 내 주택 48호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전력 144㎾를 생산한다. 초창기엔 풍력발전기 2기가 500㎾를 생산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고장으로 작동을 멈췄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안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은 전체 에너지생산량의 30%를 웃돌아 탄소중립 친환경 섬에 한층 다가설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객은 배표를 예약할 때 반드시 왕복표를 끊어야 한다. 섬에서 숙박한다면 출입 시간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지만, 당일치기라면 입도 시간 기준 2시간 혹은 2시간30분 이후 나가는 배표를 사야 한다. 구석구석을 실컷 누리고 싶은 여행객에겐 다소 아쉬운 시간이다. 여행 중간중간 시계를 확인하며 ‘차라도 있었다면 여유가 많았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차 없이 호젓하게 걸어야 깨끗한 가파도를 더 오래,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가파도는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래서 비로소 깨끗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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