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봄은 어떻게 오는가

관리자 2023. 3. 17. 05: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금까지 봄은 꽃과 함께 왔다.

변함없이 꽃은 피고 지겠지만 올해 나는 백평 남짓한 텃밭에서부터 봄을 맞고 함께 즐기기로 했다.

먼저 봄동부터 거뒀다.

두이랑을 심었더니 쉰포기 가까운 봄동이 초록 장갑차처럼 늘어섰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진 봄에 꽃 즐겼지만
올해는 텃밭에서 행복여행
수확한 작물은 요리해 먹고
빈 밭엔 퇴비 서른포대 뿌려
씨앗 심으니 봄은 다시 시작

지금까지 봄은 꽃과 함께 왔다. 매화에 이어 산수유가 피고 나면, 섬진강을 따라 벚꽃이 만발했다. 뒤이어 철쭉이 피고 장미가 아름다우면 어느새 5월이었다.

변함없이 꽃은 피고 지겠지만 올해 나는 백평 남짓한 텃밭에서부터 봄을 맞고 함께 즐기기로 했다.

두해 동안 텃밭을 가꿨지만, 그때는 심고 기르고 거둬들이는 데만 집중했다. 상추든 옥수수든 이웃이나 독자들과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더하여 수확한 작물을 간단하게나마 요리해 먹기로 했다. 지난해 늦가을에 심은 월동작물이 발등눈 밑에서 추위를 견디며 자라는 동안, 도마와 칼도 새로 장만하고 음식 만드는 방법도 따로 모아뒀다.

먼저 봄동부터 거뒀다. 두이랑을 심었더니 쉰포기 가까운 봄동이 초록 장갑차처럼 늘어섰다. 바깥 잎들은 시들어 바래기도 했지만 나머지 잎들은 아직 싱싱했다. 잎을 하나하나 떼어 씻은 후 밀가루 반죽을 입혀 배추전부터 부쳤다. 봄동나물과 봄동샐러드까지 곁들여 보름 내내 즐겼다.

그다음에 거둔 것은 당근이다. 입춘 즈음부터 풀이 돋아나더니 당근을 심은 두둑을 덮었다. 풀 사이에서 숨은 보물을 찾듯 당근을 뽑아선 씻고 다듬어 아침 커피와 함께 먹었다. 여름 상추를 키웠던 자리에 심은 탓인지 당근이 길쭉한 대신 대부분 짧고 똥똥했다. 모양도 제각각이라 보는 맛이 남달랐다. 내년엔 당근이 충분히 내려가도록 땅을 깊게 갈겠다.

마지막으로 한달 가까이 띄엄띄엄 시금치를 캤다. 두이랑 가득 자란 시금치는 지인들과 넉넉히 나누고도 내가 요리할 양이 충분했다. 봄동나물을 만들고 나서 곧바로 시금치나물에 도전했다. 시금치나물에 시금치샐러드에 시금치전까지 만들어 먹고 나선 시금치장아찌를 담갔다. 장아찌 담그는 법만 배우면 농촌의 봄이 열배는 더 풍요롭다고 했던가. 다음엔 냉이장아찌와 쑥장아찌에 도전하고 싶다.

요리가 서툴러 간단한 반찬도 한두시간이 넘게 걸렸다. ‘적당히’ 간을 하기도 어렵고 ‘살짝’ 데치거나 ‘조물조물’ 무치는 법도 만만하지 않다. 천당과 지옥이 한순간이다.

그래도 텃밭으로 나가 봄동과 당근과 시금치를 가져와선 부엌에서 요리한 후 마당에 앉아 먹는 아침과 밤이 내게 이 계절의 싱그러움을 가르쳤다. 겨울의 분투를 기억하는 봄의 시작이었다.

이웃과 나누고 요리해서 먹는 월동작물이 늘수록 텃밭의 초록이 점점 사라져갔다. 움푹 팬 마른 흙 위에 마을 고양이들의 발자국만 또렷했다.

농사의 순환에 대해 벗들과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흙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따지기 전에, 우리가 흙을 위해 무엇을 줄 것인지 고민하라고 그랬던가. 나무가 책이 되듯 책도 나무가 돼야 하고, 씨앗이 열매로 자라듯 열매도 씨앗으로 심겨야 한다. 땅심을 기르기 위해 퇴비 서른포대를 옮겼다. 한이랑에 두포대씩 삽으로 골고루 뿌렸다. 검은 퇴비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동네에서 반장만 50년 했다는 어르신께 도움을 청해 트랙터를 빌렸다. 새벽부터 밭으로 들어선 트랙터가 원을 그리며 세번이나 흙을 뒤집었다. 깊게 박힌 풀뿌리들까지 모두 뽑혔다. 그리고 반듯하게 새로 열다섯이랑을 만들었다.

자, 이제 여기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 땅두릅 모종부터 한이랑 우선 심어보기로 했다. 봄은 어떻게 오는가. 새 작물을 심기 위해 밭에 퇴비를 뿌리는, 흙을 갈아엎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발걸음과 함께 온다. 나의 봄은 다시 시작이다.

김탁환 소설가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