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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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나운서는 말 잘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나운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당사자로서 아나운서는 질문을 잘하는 직업이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보다 출연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효율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훨씬 많다.
누군가를 만나면 '밥은 먹었느냐?' '잘 지내느냐?' '어디를 가는 길이냐?' '주말에 무엇을 했느냐?' 등 일상의 질문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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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나운서는 말 잘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나운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당사자로서 아나운서는 질문을 잘하는 직업이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보다 출연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효율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훨씬 많다. 1시간 동안 보통 30개에서 50개의 질문을 한다. 방송 준비는 곧 질문 준비다.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밥은 먹었느냐?’ ‘잘 지내느냐?’ ‘어디를 가는 길이냐?’ ‘주말에 무엇을 했느냐?’ 등 일상의 질문이 쏟아진다. 업무 중에는 ‘보고서를 썼느냐?’ ‘거래처에 연락은 했느냐?’에 이어 매출은 얼마나 나왔는지도 묻게 된다. 자녀들에게도 ‘숙제는 했느냐?’ ‘학교에서 별일은 없었느냐?’ 등을 묻고 심지어 요즘은 학교에서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도 반드시 확인한다. 이렇듯 우리는 질문의 홍수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김미월 작가의 단편소설 <질문들>은 작가 지망생이 신춘문예에 응모할 단편소설을 쓰면서 주인공을 죽일지 살릴지 고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원룸을 얻어 소설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침 결혼을 앞둔 오빠가 제안한다. 원룸 보증금을 빼서 자신에게 빌려주고 고향에 내려가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엉겁결에 그러겠노라고 답했지만 고향에 내려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아 걱정이다.
주인공이 사회에 나와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면접장에 가면 질문으로 압박받고, 식당에서는 재료의 원산지를 묻게 되고, 이성을 소개받을 때는 서로 조건을 탐색하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숱한 시험을 거쳐 사회에 나왔는데도, 여전히 질문은 우리 인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더욱이 주인공은 설문지 조사요원 아르바이트를 한다. 질문으로 가득 찬 종이를 내밀며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작은 선물로 그들의 시간을 사야 하는 일이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이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쓸모 있게 만들어줄 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면 결국은 사람들이 인식을 바꾸고,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설문지 조사요원 주인공의 바람이다. 오빠에게 보증금을 주기 위해 내놓은 원룸을 보러 온 사람들의 질문에 집의 상태를 솔직하게 답하니 집이 도무지 나가지를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오빠에게 보증금을 내줘야 할지, 단편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여야 할지, 이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질문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만 쓸모 있는 답을 준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어지는 질문을 성의 없게 대한다면 우리 삶도 어느덧 대충 흘러가지 않을까? ‘인생은 무엇인가’ 같은 거대한 담론이 아닌 ‘내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만 명쾌해도 우리 삶은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아울러 상대에게 하는 질문에도 정성껏 예의를 갖춘다면 우리의 소통은 훨씬 수월해진다. 하루를 살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쉽게 나왔다. 시계를 보며 스스로 묻는다. ‘지금 몇시일까?’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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