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농업진흥지역 해제, 득보다 실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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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임시국회의 뇌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초과 생산된 쌀의 '의무 격리'를 놓고 여야가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쌀 문제의 해법을 두고 여야의 생각이 다르지만 양측의 기저에는 '쌀 생산량이 수요량을 한참 웃돈다'는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다.
웬만한 홍수나 가뭄에도 쌀 생산량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주곡만큼은 자립하자'는 국정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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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임시국회의 뇌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초과 생산된 쌀의 ‘의무 격리’를 놓고 여야가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은 쌀값 안정을 주장하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반면 여당은 의무 격리를 법으로 강제하면 공급과잉 구조가 심화할 것이라며 극구 반대하고 있다. 쌀 문제의 해법을 두고 여야의 생각이 다르지만 양측의 기저에는 ‘쌀 생산량이 수요량을 한참 웃돈다’는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정치권과 경제계를 중심으로 “농업진흥지역(이하 진흥지역)을 일부 해제해 쌀 공급량을 조절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농사만 짓도록 한 땅의 규제를 풀어 공장이나 근린생활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진흥지역은 1992년 필지 단위의 옛 절대농지를 권역별로 묶은 우량농지 구역이다. 2021년 기준 전체 농지 154만6000㏊의 절반인 77만4000㏊가 진흥지역 안에 있다. 이곳에선 농업 생산이나 농지 개량과 직접 관련된 행위만 할 수 있다. 수리시설이 잘 정비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경사도가 낮고 집단화돼 기계화에 매우 유리하다. 식량안보의 근간인 셈이다.
이런 알짜배기 농지인 진흥지역은 저절로 조성된 게 아니다. 정부가 지금까지 우량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은 경지 정리 10조8000억원, 용수 개발 9조1000억원, 배수 개선 7조원 등 모두 39조8000억원에 달한다.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1960∼1980년대에도 토지개량사업·농지개량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한 투자가 이어졌다. 웬만한 홍수나 가뭄에도 쌀 생산량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주곡만큼은 자립하자’는 국정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도외시한 채 진흥지역을 해제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음)의 어리석음이 아닌가. 게다가 2016년 정부가 쌀 수급조절 차원에서 진흥지역 해제 절차를 완화한 결과 논 면적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진흥지역 내 밭 면적은 3년 새 12%나 줄었다. 쌀 생산량을 줄이려다 자칫 채소류 자급률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진흥지역 해제는 식량안보도 흔들 수 있다. 국민 1인당 농지 면적은 1970년 7.31a에서 2021년 2.99a로 줄었다. 같은 기간 식량자급률 역시 86.1%에서 40.5%로 하락했다. 2027년 정부의 식량자급률 목표치(55.5%) 달성을 위한 최소 농지 면적은 150만㏊지만, 지금 추세라면 144만2000∼147만6000㏊로 줄 것이란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진흥지역은 우량농지의 무분별한 전용을 막고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현안인 쌀 수급문제는 진흥지역 해제가 아닌 논 타작물재배, 전략작물직불제 활성화 같은 쌀 생산조정제로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밥과 쌀 가공품 소비촉진, 인도적인 대북·해외 쌀 지원 등을 병행해야 한다.
이참에 진흥지역 농지에 대한 보상 수준도 높여야 한다. 진흥지역으로 지정되면 각종 행위가 제한되면서 자산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2021년 기준 진흥지역 내 농지의 평균 공시지가는 3.3㎡(1평)당 8만7000원으로 진흥지역 밖 16만2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기존 공익직불금 차등 지급 외에도 장기보유자에 대한 재산세·양도세·상속세 감면, 농지은행 단가 우대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번 훼손된 농지는 되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탄탄한 농업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김상영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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