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 대통령 12년 만의 방일과 日의 유보적 태도

조선일보 2023. 3. 17.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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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85분간 회담했다. 한국 대통령이 다자회의가 아닌 일본 총리와의 양자 회담을 위해 일본을 찾은 것은 12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오늘 만남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일 관계가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도 “미래를 위해 한일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대(對)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4년 만에 해제했다. 한국은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조치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문재인 정부의 파기 선언 이후 조건부 연장 상태였던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도 선언했다. 이로써 2018년 징용 판결 이후 양국 정부의 대응 조치가 대부분 해제돼 표면적으론 한일 관계가 징용 판결 이전으로 회복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한일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의 진전된 입장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징용 해법 발표 직후 발언 그대로다. 1998년 공동선언에 담긴 ‘반성과 사죄’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의 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 표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일본의 호응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과거에만 얽매일 수는 없다.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 양국 정부는 한일 경제안보 협의체와 차관급 전략 대화를 비롯해 분야별 소통 채널을 신설하기로 했다.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한 협력 관계를 전방위로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한일의 경제단체인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피고 기업을 포함한 일본 기업의 참여가 예상되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앞으로도 양국이 자주 연계해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이번 방일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질서의 새판 짜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유엔 안보리가 유명무실화하고 중립국들까지 재무장·군비경쟁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낙오하지 않으려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과 공조해야 한다. 이날 두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빈번하게 상대국을 방문하는 셔틀외교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의 방일은 한일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의 만남이 거듭되고 신뢰가 쌓인다면 과거사를 비롯해 이번에 풀지 못한 현안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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