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고별의 시간이 내려준 은총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2023. 3. 17.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뜻밖의 부고를 받았다. 나는 급히 스케줄을 조정해서 조문을 갔다. 떠나신 어른의 부인께서 손을 잡으시며 조용히 말씀하신다. “목사님, 오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이에게 웃으며 물었어요. 장례는 누구에게 부탁할까요? 그이가 웃으며 말했어요. 이 목사님께…” 웃으며 말씀을 나누셨다는 이야기에, 벼락이 떨어져도 평상심을 잃지 않으실 것 같았던 분의 마지막 장면이 그려졌다. 그 깊은 슬픔 중에도 잠잠히 말씀하시는 것이 내 마음에 평온을 되찾게 했다. 주치의가 조문을 와서 이런 고백을 남겼다. “회장님께서는 그 어려운 중, 오히려 우리를 배려하시고 염려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봅니다.”

유족은 3일장을 말씀하셨다. 나는 말했다. “조문객이 많이 오실 것이니 3일장으로는 어려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조문 못 한 여러분이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실제로 문상하는 날은 하루뿐입니다!” 가족회의 후 답신이 왔다. 평소 고인의 삶을 생각하며, 아주 조촐히 장례하라고 말씀하셨기에, 3일장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주연 목사 제공

장례를 준비하며 묵상하는 중 고인과 함께 식사했던 손만두집 사람들이 떠올랐다. 주인께 부고를 전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그는 발인하는 아침에도 떠나는 운구차 곁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고인께서는 식당 여직원들도 친딸처럼 대하시고 존대하셨다. 진정한 마음에서 오랫동안 크게 기부해 온 대학교가 떠올랐다. 연락을 받은 총장님은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곧 조문하셨다. 예상대로 조문객이 많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뉴스에 났던 것이다.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고별예배와 하관예식을 집례하며 나의 고백을 드렸다.

함께 산책하던 날 길거리에 앉아 있는 아저씨가 “사모님 더 예뻐지셨네요!” 하자 “아, 그러시냐”고 반갑게 웃으며, “어째 요즘 못 나왔느냐”고 염려해 주셨지요. 어떻게 그렇게 동네 아저씨가 되실 수 있으셨는지요? 신문기자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한마디로 답하셨지요. “인간입니다.” IMF 때는 “함께 살자!”며 직원을 해고하지 않으셨지요. 음악을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카리스마가 대단하셨지만 그보다는 겸손함과 미소가 더 빛났습니다. 어떻게 목재공장에서 클래식 연주회를 시작하였으며, 그것을 30년 한결같이 하실 수 있으셨는지요? IMF 때는 비용이 없어 연주회를 못 연다 하자, 베를린 필에서 비용을 받지 않고 공연을 하겠다 하였으니, 예술로 통하는 사이였군요!

/이주연 목사 제공

어떻게 퇴직하여 떠나셨던 분들도 이 자리에 다시 찾아와 재회케 하시는지요? 저는 어제 처음 공장엘 가보았습니다. 그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보다 회장님이 더 크시다고 하자, 고교 동창이신 부회장님이 그렇다고 하시며, “욕심이 없으셨다” 하시더군요. 솔로몬 군도의 제주도의 2배가 되는 터에 40여 년 전 조림 사업을 하셨다지요. 사업 초기 쿠데타가 일어나 쫓겨나왔을 때에 다른 기업들은 약탈당하고 말았는데, 1년여 후 돌아가 보니 원주민들이 지켜주었다지요.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원주민들의 마음을 산 비밀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한번도 자랑하시는 말씀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2017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고, 칠레와 솔로몬군도에서 국가 최고훈장,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훈장, 독일 몽블랑 문화재단에서 예술후원자상을 받은 것을 비롯, 국내외 문화예술의 발전을 도운 여러 이야기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시간 한 가지 신나게 자랑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모님이 회갑이 되셨을 때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군악대의 연주를 듣다가 나가서 춤추기 시작하니, 광장의 모든 사람이 함께 춤을 추셨다는 것! 자랑은 처음 들었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너무도 행복하게 했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던 두 내외분이 소년소녀처럼 손잡고 해 질 녘 동네 언덕길을 오르던 모습이 오늘도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 이야기를 하는군요. 이 작은 교회 목사에게 마지막을 부탁하신 것도 두고두고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남기신 몸은 흙이니 흙으로 모십니다. 육의 몸도 있으니 부활의 몸도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이생을 빛나고 존귀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