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얼어붙은 강의 기억을 찾아서

기자 2023. 3.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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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바람이 바다와 만나는 곳, 그곳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강이 있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에 나오는 자장가다.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특별한 강 아토할란에는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가 찾아 헤매는 깊고 진실한 답이 남겨져 있다. 이 강은 얼어붙어 있지만, 과거의 비밀스러운 모든 진실을 품고 있다. 물은 구름에서 빗물이 되어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 더욱 낮은 곳을 찾아 그리고 더 넓은 강을 이루며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그리고 바다에서 다시 빗물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순환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이해하면 이 여정에 담긴 특별한 강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연기반해법’이라고 불린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유엔은 2023년 3월22일 세계 물의날을 맞아 전 세계 시민들에게 물 정책의 변화속도를 높일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기후위기가 가뭄과 홍수의 얼굴로 우리에게 찾아오고, 생물다양성의 붕괴가 담수 생태계에서 가장 심각하다는 점에서 변화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물 정책에서 자연기반해법이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은 <겨울왕국>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댐을 철거하는 수형학적 복원 사업이다. 미국은 최근 100년 동안 최소 2025개의 댐을 철거했고, 2023년에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클라마스강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생물다양성 협약 등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의 강 정책은 여전히 근대화 시기 토건주의에 사로잡혀 기억도 이성도 단단히 얼어붙어 있다. 강 개발의 신화와 함께 성장해 온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한반도대운하를 추진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덩달아 ‘한강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운하사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15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반도대운하를 추진한 정치세력은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그사이 주름이 깊게 파인 오 시장은 여전히 과거의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 시장은 재선 이후 냉동실에서 오래 묵은 운하 건설사업인 한강르네상스를 다시 꺼내들었다. 오 시장이 해동해놓은 ‘한강르네상스 2.0’ 프로젝트는 이름부터 15년 전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재탕이지만, ‘한강의 회복과 창조’라는 슬로건이 냉동된 시점은 무려 40년 전 전두환 정권 당시 한강종합개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의 변화에 눈감은 운하 건설 사업은 당장 기본계획 조사 용역조차 ‘무응찰’되는 암초를 만났다. 그럼에도 오 시장과 시의회가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붙인다면 착공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최근 환경부마저 환경 보전을 포기하다시피 했으니 어쩌면 한국의 강 정책은 당분간 더욱 뒷걸음칠지도 모른다.

<겨울왕국>에서 난국을 타개한 엔딩을 복기해본다. 주인공 안나는 얼어붙은 강이 간직하고 있던 진실을 마주하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무용하고 거대한 댐을 철거하는 결단을 내렸다. 해피엔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즈니는 그녀를 아렌델 왕국의 새로운 왕으로도 등극시켰다. 한국의 현실이 당장은 <겨울왕국>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겠지만, 거대한 변화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금 강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이는 새로운 세대의 몫이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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