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복잡하구나
부재(不在)도 증거가 된다. 기원전 202년 이전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논어>에는 밀가루 음식 이야기가 단 한마디도 없다. <논어>에는 잘 찧어 지은 밥, 거친 밥, 나물국, 칼질 제대로 한 재료, 제철 먹을거리, 재료에 맞는 장(醬), 생강 등에 얽힌 공자의 식생활이 담겨 있다.
아득한 옛날에도 불량식품은 있었다. <논어>에 따르면 공자는 저잣거리에서 파는 술과 육포를 꺼렸다. 하지만 호병(胡餠: 호떡), 국수, 찐빵, 만두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럴 수밖에. 그때까지 밀과 분식은 아직 중국에 널리 퍼지지 않았으니까. 밀은 춘추시대(기원전 770~403)에 중국에 전해졌다.
분식은 후한(後漢, 25~220) 시대에 이르러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는다. 밀 재배가 처음 시작된 지역은 오늘날의 캅카스, 아르메니아 일대로 추정된다. 분식의 고향 또한 이곳이다. 어느덧 밀은 서쪽으로 가 로마제국의 빵 문화로 꽃핀다. 오늘날 지중해와 유럽의 빵 문화는 그 유산이다. 동쪽으로 가서는 인도 대륙의 난(naan), 중국 대륙의 다채로운 분식이 꽃핀다. 여기 딸린 말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예컨대 ‘분식(粉食)’은 곡물의 가루를 반죽해 만드는 음식과 그것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밀가루는 분식의 핵심 자원이다.
이에 견주어 곡식의 낱알을 부수지 않고 지은 밥과 그것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이 ‘입식(粒食)’이다. 굳이 덧붙이면, 김밥·오뎅·순대는 분식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동아시아 공통의 한문과 한자어의 세계에서 ‘병(餠)’은 오로지 밀가루에서 온 먹을거리만을 가리킨다. 밀가루 외의 곡식 가루로 만든 음식은 ‘이(餌)’이다. 쌀가루 또는 쌀밥에서 비롯한 별식을 가리키는 한자는 ‘고(糕)’이다. 한국인의 떡, 일본인의 모치(もち)는 ‘병’이 아니라 ‘고’에 드는 음식이지만 한국어에서 떡은 ‘병’이고, 일본어 모치의 한자는 ‘병’이다. 한·일의 독특한 일상 감각과 어휘 운용이다.
기독 경전의 ‘오병이어(五餠二魚)’는 어떤가. 이야기의 무대는 빵이 주식으로 자리 잡은 로마제국의 팔레스타인이다.
‘병’을 기술의 측면에서 포착한 기록도 일찍이 등장했다. 분식이 중국에 자리 잡은 후한 시대, 밀의 곡창지대 산동 출신 학자 유희(劉熙)는 자신의 저술 <석명(釋名)>에 반죽의 기술을 이렇게 써 남겼다. “‘병(餠)’은 합병함이니 밀가루를 물에 개 한 덩이로 뭉침이다(餠幷也, 溲麵使合幷也).”
눈치채셨으리라. 인용문 속 ‘밀가루’의 원문은 ‘면(麵)’이다. ‘면’은 워낙에 ‘밀가루’를 뜻하는 말이다. 나아가 밀가루반죽, 밀가루반죽의 덩이 및 피, 밀가루반죽에서 나온 사리, 밀가루국수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원래는 밀가루국수만 ‘면’이다. 밀가루 외의 가루나 전분에서 온 국수는 ‘분(粉)’이다. 예컨대 쌀국수는 미분(米粉) 또는 하분(河粉)이다. 부푼 빵, 납작한 빵, 구운 빵, 찐빵, 만두류 모두 ‘면’의 동아리에 든다. 그래서 한국어 분식에 해당하는 중국어 어휘는 ‘면식(麵食)’이다. 사물의 연대기는 이렇게 그윽하고, 말은 이렇게 복잡하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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