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작가 “아이들 발아래 놓인 개미들 어린시절 놓쳤던 세계 그려”…미아 작가 “양쪽으로 넘기는 책 통해 벤치위 만남과 이별 담아내”
이소연 기자 2023. 3. 17. 03:01
세계 3대 그림책賞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자 2인 인터뷰
픽션 부문 우수상 이지연 작가
개미 움직임 파노라마처럼 표현
수백마리 생김새 모두 다른 형태로
“차기작, 눈에 안 띄는 식물이야기”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 미아 작가
“천편일률적 책 형태 벗어나고파
책 구조 결정… 소재-주제 뒤따라
다음은 겹겹이 접는 형태, 숲 소재”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 김규아 작가의 ‘그림자 극장’과 5unday(글)·윤희대(그림) 작가의 ‘하우스 오브 드라큘라’ 등 한국 작가의 작품 4편이 선정됐다. 라가치상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BIB(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상으로 꼽힌다. 올해 수상작 중 ‘이사 가’의 이지연 작가(46)와 ‘벤치, 슬픔에 관하여’의 미아 작가(32)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고 했다. |
픽션 부문 우수상 이지연 작가
개미 움직임 파노라마처럼 표현
수백마리 생김새 모두 다른 형태로
“차기작, 눈에 안 띄는 식물이야기”
가로로 기다란 그림책에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떼의 움직임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아이의 손길이 닿고 발을 내딛는 곳 아래, 개미들이 꿈틀대며 부단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사 가’(엔씨소프트)의 주인공은 놀이터에서 뛰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들 발아래에 놓인 개미 떼다. 지난해 10월 이 책을 펴낸 이지연 작가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모래놀이터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내가 놓쳤던 개미들의 세상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습관처럼 자신의 걸음이 찍힌 발자국을 뒤돌아보다가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작가는 “어릴 적 따뜻한 햇볕 아래 놀이터 바닥에 앉아 모래를 휘저으며 놀았던 기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순간을 분명 행복하게 기억할 테지만 과연 우리의 발 아래 있던 개미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개미들은 우리 손발이 닿는 곳을 피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 책은 나 때문에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이사를 가야 했던 개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가는 “어린 시절의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됐다”면서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알게 된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책에 그려진 수백 마리의 개미는 모두 생김새가 다르다. 그는 “똑같은 개미를 ‘복붙’(복사 붙여넣기)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사람처럼 개미도 서로 다 같지 않고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른 형태로 손수 그렸다”고 했다.
2015년 펴낸 ‘우리 집에 갈래?’(엔씨소프트)에선 어둑한 골목에 버려진 곰 인형에게, 두 번째 책에선 놀이터 바닥의 개미에게 향한 그의 시선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이 작가는 “차기작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내가 놓쳐온 세상은 없는지 뒤돌아보며 그림을 그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사 가’(엔씨소프트)의 주인공은 놀이터에서 뛰노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들 발아래에 놓인 개미 떼다. 지난해 10월 이 책을 펴낸 이지연 작가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모래놀이터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내가 놓쳤던 개미들의 세상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습관처럼 자신의 걸음이 찍힌 발자국을 뒤돌아보다가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작가는 “어릴 적 따뜻한 햇볕 아래 놀이터 바닥에 앉아 모래를 휘저으며 놀았던 기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순간을 분명 행복하게 기억할 테지만 과연 우리의 발 아래 있던 개미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개미들은 우리 손발이 닿는 곳을 피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 책은 나 때문에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이사를 가야 했던 개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가는 “어린 시절의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됐다”면서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알게 된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책에 그려진 수백 마리의 개미는 모두 생김새가 다르다. 그는 “똑같은 개미를 ‘복붙’(복사 붙여넣기)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사람처럼 개미도 서로 다 같지 않고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른 형태로 손수 그렸다”고 했다.
2015년 펴낸 ‘우리 집에 갈래?’(엔씨소프트)에선 어둑한 골목에 버려진 곰 인형에게, 두 번째 책에선 놀이터 바닥의 개미에게 향한 그의 시선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이 작가는 “차기작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내가 놓쳐온 세상은 없는지 뒤돌아보며 그림을 그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 미아 작가
“천편일률적 책 형태 벗어나고파
책 구조 결정… 소재-주제 뒤따라
다음은 겹겹이 접는 형태, 숲 소재”
“어린 시절 읽은 그림책들은 전부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형태였어요. 천편일률적인 책의 형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신인상 격인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받은 그림책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는 책의 형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이 책을 펴낸 미아(본명 이서연) 작가는 14일 인터뷰에서 “무엇을 그릴지보다 어떻게 넘길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자 소재와 주제는 뒤따라 왔다”고 말했다.
책은 벤치 끝에 앉은 사람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주쳤다 헤어지는 식으로 구성됐다. 미아 작가는 2020년 ‘벤치…’의 초안을 구상하며 “책장이 양쪽으로 열리는 양문 형태를 가장 먼저 정했다”고 했다. 가로로 긴 책 구조가 결정되자 기다란 벤치가 생각났다. 그는 “책을 양쪽으로 넘기는 구조 자체로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벤치 위에 어떤 얼굴들을 그려 넣느냐’였다. 모르는 얼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로 가득한 가족 앨범을 펼쳤다. 미아 작가는 “사진첩을 보다가 어린 시절 내 곁에 있어준 가족들이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만남과 헤어짐에는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슬픔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빈 벤치에 익숙한 가족의 얼굴을 그려 넣자 슬픔이란 감정이 떠올랐던 것. 책을 채운 푸른색도 그렇게 정해졌다. ‘블루’는 ‘우울한’이란 뜻도 갖고 있다.
그는 “차기작은 겹겹이 접힌 책을 펼쳤다 다시 접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이번에도 책의 형태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숲의 이미지가 생각났다”고 했다.
“숲에선 우리가 걸어 들어간 깊이만큼 다시 빠져나와야 하듯, 독자가 펼친 만큼 다시 접어 닫는 책을 만들려고 해요. 다른 형태를 상상하면 다른 이야기가 나와요. 앞으로도 색다른 형태의 책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2023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신인상 격인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받은 그림책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는 책의 형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이 책을 펴낸 미아(본명 이서연) 작가는 14일 인터뷰에서 “무엇을 그릴지보다 어떻게 넘길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자 소재와 주제는 뒤따라 왔다”고 말했다.
책은 벤치 끝에 앉은 사람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주쳤다 헤어지는 식으로 구성됐다. 미아 작가는 2020년 ‘벤치…’의 초안을 구상하며 “책장이 양쪽으로 열리는 양문 형태를 가장 먼저 정했다”고 했다. 가로로 긴 책 구조가 결정되자 기다란 벤치가 생각났다. 그는 “책을 양쪽으로 넘기는 구조 자체로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문제는 ‘벤치 위에 어떤 얼굴들을 그려 넣느냐’였다. 모르는 얼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로 가득한 가족 앨범을 펼쳤다. 미아 작가는 “사진첩을 보다가 어린 시절 내 곁에 있어준 가족들이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런 만남과 헤어짐에는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슬픔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빈 벤치에 익숙한 가족의 얼굴을 그려 넣자 슬픔이란 감정이 떠올랐던 것. 책을 채운 푸른색도 그렇게 정해졌다. ‘블루’는 ‘우울한’이란 뜻도 갖고 있다.
그는 “차기작은 겹겹이 접힌 책을 펼쳤다 다시 접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이번에도 책의 형태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숲의 이미지가 생각났다”고 했다.
“숲에선 우리가 걸어 들어간 깊이만큼 다시 빠져나와야 하듯, 독자가 펼친 만큼 다시 접어 닫는 책을 만들려고 해요. 다른 형태를 상상하면 다른 이야기가 나와요. 앞으로도 색다른 형태의 책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신진 그림책 작가 발굴한 숨은 조력자들
스튜디오 움, 지망생에 무료 수업
엔씨소프트, 李작가 재능 알아봐
신진 작가들의 그림책이 2023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데에는 이들의 진가를 미리 알아본 이들의 덕도 컸다.
미아 작가의 ‘벤치, 슬픔에 관하여’를 펴낸 독립출판사 ‘스튜디오 움’은 2020년부터 작가를 발굴해 출판을 지원하고 있다. 5∼10명의 작가 지망생이 모여 수개월 동안 그림책을 준비한다. 스튜디오 움의 손서란 대표(60)는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수업한다”고 했다. 미아 작가는 2021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첫 그림책인 ‘벤치…’를 펴냈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도 2015년부터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이지연 작가도 이를 통해 처음 책을 냈다. 이 작가는 “당시 내가 가진 건 그림 5장뿐이었지만 그때 내 속의 이야기를 알아봐 준 덕분에 계속 그림책을 그려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까지 작가 12명을 발굴해 그림책 12권을 펴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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