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공감 과잉

2023. 3. 1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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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너무 잘돼서 힘들어요. 친구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감정이 그대로 저한테 옮겨 와요. 그 느낌이 떨쳐지지 않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자요!"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이렇게 호소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돌보느라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타인의 내적 경험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자기감정도 조절할 수 있어야 공감능력이 제대로 작동한다.

공감을 성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이는 타인의 정서에 이렇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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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에 몰입 못 도울 땐 죄책감까지
자기감정도 조절 능력 있어야… ‘거리두기’ 필요
“공감이 너무 잘돼서 힘들어요. 친구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감정이 그대로 저한테 옮겨 와요. 그 느낌이 떨쳐지지 않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자요!”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이렇게 호소했다. 그녀는 타인의 감정이 빨리, 그것도 너무 쉽게 받아들여진다며 괴로워했다. 가족뿐 아니라 직장 동료의 심정을 당사자보다 더 절절하게 느꼈다. 심지어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연예인이 텔레비전에 나와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면 마치 자신이 그 일을 직접 겪은 것처럼 슬퍼했다.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을 경험했던 것이다.

다음 항목에 해당하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과도하게 타인에게 감정 이입할 위험이 크다. ①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②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걸 보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③갈등이 생기면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자책한다. ④나도 힘든 상황인데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희생한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돌보느라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자신에게 그럴 책임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공감을 잘하는 만큼 타인을 도와주지 못했을 때 느끼는 죄책감도 크다. 지나치게 공감해주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탈진에 빠지기도 한다. 공감 피로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타인의 내적 경험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자기감정도 조절할 수 있어야 공감능력이 제대로 작동한다.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안 된다. 슬픈 이야기를 듣고 같이 슬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 타인과 자신의 감정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괴롭겠다”며 반사적으로 애통해하는 게 아니라 “아, 그래서 슬픈 거구나”라고 감정의 맥락을 짚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공감을 성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이는 타인의 정서에 이렇게 반응한다. 이런 능력을 일컬어 메타 감정이라고 한다.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공감 회로를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다면 타인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자기가 힘들다는 하소연만 잔뜩 늘어놓고 공감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면 “오늘은 미안하지만 네 말을 들어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 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네가 느끼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나도 같이 힘들어져서 그래”라고 하면 된다. 상대가 싫어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공감에도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내 고통은 헤아려주지 않고 자기 괴로움만 챙겨달라고 하는 이에게 쓸 만큼 충분하진 않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순교자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맞춰주는 상황을 일컬어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표현한다. 타인의 아픔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람일수록 가스라이팅에 취약하다. 자기 고통을 연극적으로 표출하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당신은 너무 냉정하다.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며 죄책감을 불어넣는 이는 경계하는 게 좋다. 충분히 공감해주고도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뭔가 잘못된 관계라는 신호다.

공감해주는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 악인의 힘을 키워주기도 한다. 사이코패스, 착취적인 고용주, 영리한 선동가는 선량한 사람들의 공감능력을 교묘히 악용하는 데 능하다. “당신에겐 공감해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그들을 좌절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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