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1700만원 횡령’ 윤미향 의원이 지은 가장 큰 죄
반세기 여성운동 신뢰 추락시키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국민 관심 떨어뜨린 게 더 큰 죄
1998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이 윤미향씨를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무국장이던 윤씨가 위안부 피해자들 이름을 팔아 빌딩을 샀다고 했다. 무혐의로 처리됐지만, 윤씨는 배신감에 4년간 정대협을 떠나 있었다. 그는 “이분들은 험난하게 세상을 살아와 누구도 믿으면 안 된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머리빗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자기 것을 탐내 훔쳐 갈 것이라 의심한다”고 했다. 윤씨가 수요 집회 22주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정대협의 ‘돈벌이’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1997년엔 일본 민간 단체에서 500만엔을 받기로 해 논란이 된 할머니가 “우리를 돕겠다며 거둔 성금은 어디로 갔나. 따뜻한 말 한번 안 해주던 정부나 정신대 관련 단체들이 일본 돈을 받아라 말아라 할 자격이 없다”고 해 도마에 올랐다. 2004년엔 심미자 할머니 등 13명이 ‘모금 금지 소송’을 냈다. “피해 당사자도 아닌 정대협이 위안부 후원 명목으로 자기들 배만 불리고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논란이 일 때마다 정대협은 회계장부를 살피는 대신 친일 프레임으로 대응했다. “일본이 노리는 것이 돈으로 정대협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이간질하는 것이다.” 2020년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씨의 기부금 회계 부정을 폭로했을 때도 이들은 “친일 세력의 공격”이라 맞서며 “정대협의 긴 활동 중 회계 부정이라는 생경한 상황에 접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생경하고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은 결국 유죄로 드러났다.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은 윤미향씨가 정의연 대표 시절 기부금 등 1700여 만원을 애견 호텔 결제, 마사지 숍 결제에 사용하는 등 업무상 횡령을 했다고 판결했다. 다만 보기 드물게 너그러운 ‘벌금형’을 선고했다. 사기업보다 회계 처리가 더 투명해야 할 시민 단체에 “(영수증) 증빙이 없더라도 정대협 활동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며 지출 증빙이 되지 않은 수많은 용처에 면죄부를 줬다.
판결보다 더욱 해괴한 건 윤미향씨의 행보다.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의 ‘사과 릴레이’에 힘을 얻었는지, 1700만원 횡령은 죄도 아니라는 듯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 4일엔 촛불 집회 단상에 올라 “전투기 폭격, 미사일이 쏟아지는 한반도가 되지 않도록 온몸으로 달려가겠다” 외치더니, 세계여성의날이던 8일엔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시위에 나타나 “지난 3년간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대협 초창기 활동가인 한 여성학자는 “정치판에 들어가면 다 저렇게 괴물이 되느냐”며 개탄했다. “시민 단체의 힘은 1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 도덕성에서 나오는데, 함께 일해온 활동가들 얼굴에 똥칠을 한 장본인으로 최소한 사죄의 말부터 해야 하지 않나.”
돈과 권력이 운동의 대의를 그르칠 거라 우려했던 이는 정대협 초대 대표였던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그는 “1992년 시작된 수요 집회 초창기만 해도 모금 활동은 없었다. 기부는 고마운 일이지만 단체가 먼저 나서서 돈을 모금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모금 규모는 점점 커졌고 억대 정부 지원금까지 받으면서 정대협은 초심을 잃기 시작했다.
이를 가장 먼저 할머니들이 감지했다. 그들이 분노한 시점이 정대협 리더들이 정계로 진출한 때와 일치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지은희, 이미경이 노무현 정부에 입성할 때, 윤미향이 문재인 정권의 여당 의원으로 들어갈 때 할머니들은 “결국 당신들 출세를 위해 우리를 이용한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재판부는 1700만원 횡령만 죄라고 했으나, 윤미향 의원이 지은 진짜 죄는 따로 있다. 반세기 한국 여성운동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킨 것,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관심을 사그라들게 한 것이다.
지난 15일에도 수요 시위는 어김없이 열렸다. 대통령 방일을 하루 앞둔 날이라 취재진은 북적였으나 참가자는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뒤편에선 수요 시위에 반대하는 이들이 ‘젊은 그대’를 부르며 춤을 추고, ‘반일행동’이란 단체는 “매국노 윤석열 물러가라”며 악을 썼다. 한복을 입고 경복궁으로 가던 외국인들은 이 해괴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신기해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인근 직장인은 “부끄럽다”며 혀를 찼다. 이날 집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단 한 분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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