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언어 없이도 통하는 ‘그림책 경쟁력’ 확인했죠”

김경애 2023. 3. 16. 23: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짬][짬] 그림책 아트디렉터 이경국 작가
이경국 작가가 지난 3월9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전시장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페이퍼독 제공

“저 자신 어렵사리 그림책 작가의 길을 찾았던 까닭에 젊은 후배들의 입문을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개인 작업과 함께 그림책 강의를 일찍부터 해왔어요. 이번에 5년 만에 다시 가 본 ‘볼로냐 페어’에서 가장 큰 수확은 세계 최고인 유럽의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참신한 신인 작가들을 더 열심히 키워내야겠다는 자극이었어요.”

지난 6~9일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을 다녀온 이경국(56) 작가는 15일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이라는 개인적인 영예보다도 ‘한겨레 그림책 아카데미’ 아트디렉터로서 결의를 더 강조했다.

볼로냐는 이탈리아에서 일곱번째로 큰 도시이자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곳으로 유명하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는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볼로냐 도서전의 대표 행사이자, 1967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볼로냐 그림책 원화 공모전’에서 선정한다. 작품성이 우수한 책을 뽑아서 주는 ‘볼로냐 라가치상’이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면,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일러스트 노벨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 작가는 2008년에 이어 2023년에도 뽑혀 시상식에 참가했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전세계 4500점의 응모작 가운데 79점이 최종 선정됐다. 한국에서는 그를 비롯해 김승연·문정인·신아미 작가 등 4명이 포함됐다. 한국은 올해 ‘라가치상’에서 픽션 부문 이지연, 오페라 프리마 부문 미아, 만화(중등·만 9~12살) 부문 김규아·윤희대 작가 등 4편이 우수상을 받았다.

‘2023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참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
2008년 이어 두번째 선정 ‘유일’

‘한겨레 그림책 아카데미’ 명강사
맞춤지도로 수강생 80프로 ‘출간’
“창의적인 신진 작가 배출 책임감”

지난 3월9일 블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시상식장인 일러스트레이터 카페에서 이경국(두번째줄 왼쪽 둘째) 작가를 비롯한 ‘2023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9명이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페이퍼독 제공

지난 2004년부터 배출된 볼로냐 도서전의 한국 수상자 가운데 두 차례 기록은 이 작가가 유일하다. 2008년 첫 출품한 <바보이반>(여원미디어)으로 뽑힌 그는 15년 만인 올해 <개꿈>(페이퍼독)으로 상을 받았다. ‘바보이반’은 대학원에서 전공한 사진 콜라쥬 기법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면, ‘개꿈’은 평생지기인 부인(이송)이 지난해 창업한 ‘1인 출판사’에서 펴낸 첫 작품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상금이나 상패도 없고, 다만 2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며 ‘수상작 원화 전시’를 열어서 국제 출판계에 이름을 알리는 기회를 줘요. 운이 좋으면 외국 출판사로부터 계약 제안이 오기도 하죠. 그보다 ‘한겨레 그림책 아카데미 수강생’들의 작가 등용문으로 만든 ‘페이퍼독’ 출판사의 가능성을 확인해서 기쁩니다.”

이 작가는 “올해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3년 만에 열린 대면행사여서 전 세계 그림책 종사자들의 축제같았다”며 참가 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작가들의 비중이 날로 커지는 추세는 분명했지만, 여전히 유럽의 강세를 실감했다”고 했다.

“수천명의 출품작 가운데 유럽 작가들의 드로잉 솜씨가 탁월했는데, 자국내 경쟁이 치열해 출판 기회를 얻기가 바늘 구멍이라고들 호소했어요. 전세계적인 디지털화로 종이 매체의 쇠퇴 현상도 뚜렷해서 그림책 시장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데 공감했고요.”

이 작가는 “그럴수록 언어(텍스트) 없이도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의 국제적인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확신도 들었다”며 드로잉 솜씨와 더불어 독창적인 자기 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신진 작가 배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3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시상식장에서 이경국(맨 앞) 작가와 부인인 이송 페이퍼독 대표, 두 딸이 다함께 축하하고 있다. 페이퍼독 제공
이걍극 작가의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인 그림책 <개꿈>과 삽화들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시상식장에 전시되어 있다. 페이퍼독 제공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넉넉찮은 가정 형편으로 직접 학원비를 벌며 미대 진학을 준비했다. 홍대 미대 입학 때도 순수미술 대신 취업 가능성이 높은 목공예(가구)를 전공했다. 그런데 ‘알바’로 했던 일러스트 작업을 인정받아 1994년 한국출판미술가협회 ‘신인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 덕분에 1995년 졸업 뒤 출판사에서 일하며 광고·영화 콘티·사보 삽화 등등 다양한 매체의 그림 경험을 쌓았다. 그는 토론식 독서논술 교재인 <주니어 플라톤>(한솔)이 스테디셀러로 ‘대박’이 나면서 그림책 작가로 안착하게 됐다.

“그림책 작업은 결혼에 이어 두 딸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해온 일러스트 강의를 2010년께부터 ‘그림책 아카데미’로 확장시켰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 50기에 이르렀네요.”

실제로 아트디렉터로서 그의 강점은 그림 지도에만 그치지 않고 비전공 수강생들도 3개월 강의에 이어 3개월 무료 개인교습을 통해 직접 책을 완성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강생의 80% 정도가 실제로 출간까지 해냈고, 180명 중 100명의 작품이 순수 창작품이었어요. 때로는 비전공자들의 스토리텔링이나 캐릭터 창작이 더 신선하죠.”

그의 아카데미 출신 그림책 작가들이 출판계에서 속속 인정을 받으면서 최근엔 일본, 홍콩 등 국외 한인 학생들도 수강을 하러 올 정도란다.

“결국 독창성의 관건은 스토리텔링인데 아직도 한국은 고전 철학에 기반한 교훈적 이야기나 교과서식 관행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림책은 어린이용이라는 고정관념 탓이 크죠.”

그는 “사고의 틀과 폭을 깨는 수강법을 더 개발해야할 의무감을 느낀다”고 각오를 다졌다.

오는 4월13일부터 6월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22>(전시전문기획사 씨씨오씨 주최)이 열린다.

‘한겨레 그림책 아카데미’ 강의와 상담은 누리집(www.hanter21.co.kr)과 (02)3279-0900 참조.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